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삶 속 문화가 핀다

예술의 자격

영화 '웨이스트 랜드(WAST LAND)'를 보고

민병은 / 지혜로운봄 대표, ’18.3月

‘할 수 있다’는 말은 ‘할 수 없는’ 한계 상황을 도드라지게 드러낸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몸이 아파서’ , ‘졸려서’ , ‘배가 고파서’와 같은 놓여진 어떤 상황이라 해도 모두 변명이자 극복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극복 이후에야 그 노력했음이 인정된다. 가능성을 담는 말 ‘할 수 있다’는 말은 ‘~임에도 불구하고’를 달고 다닌다. 그래서 가능함을 말할 때 불가능함이 더 극명해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외부의 개입이다.

영화 ‘웨이스트 랜드 WAST LAND’는 작가 Vik Muniz가 브라질 그라마초 지역 재활용 현장에서 7명의 카타도르(재활용품을 줍는 사람들)와 2년 동안 작업한 과정의 기록을 재구성한 다큐영화다.
Vik Muniz 사진 작가도 브라질의 한 마트에서 쓰레기 처리작업을 하던 브라질 사람이다. 우연한 기획에 미국 여행객을 돕게 되고 그 사례금으로 뉴욕에 건너가 작가가 된 매우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영화초반에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게 대표작품을 소개해 준다. The Brazilian photogfaper Vik Muniz로 뉴욕 현대미술관 사진전시에 초대되는 등 세간의 주목을 끌며 그의 인생을 바꾼 작품은 ‘슈거 칠드런(설탕 아이들)’이다.
캐러비안세인트 키츠 섬의 아이들을 설탕으로 그린 후 사진으로 찍은 작품이다. 작품 속의 아이들은 농장 일꾼들의 아들, 딸들로 ‘행복했던 아이들’이 왜 ‘서글픈 어른’이 되는지, 사탕수수밭에서 16시간씩 일하는 부모들의 찌든 삶의 모습을 설탕이라는 물질이 갖는 중의적 의미로 표현되어있다.

“순수예술의 영역을 조금 벗어나보려고요. 무척이나 배타적이고 제한적인 예술이잖아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 제가 진정 원하는 것이죠
예술의 과정에서 보면 변화란 건 소재와 그 개념까지 포함하죠. 어떤 소재를 사용할지 정하게 되면 거기에 맞는 작품의 개념을 찾아가게 되는 거죠.”

물질은 존재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을 작품에 표현해왔던 그가 주목한 것은 쓰레기였다. 웨이스트랜드 영화의 주된 전개는 그라마초에서의 작업이다.

“예술과 사회적 과제를 결합하는 데 있어서 저의 가장 주된 일은 사람들을 떠나게 하는 거예요 단 2분간이라도 다른 세상과 사람들을 볼 수 있도록. 그들의 터전도 떨어져 볼 수 있게요. 그럼 모든 것이 바뀌어요. 예술이 사람을 바꾸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죠. 변화를 일굴 수있을까요?”

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2분을 위해 6명 - 7명의 카타도르와 작업을 진행했으나 도중에 한 분이 사망하면서 그와의 에피소드는 간략한 소개에 그친다 - 의 카타도르와 작업한 시간은 2년이다. 그리고 작업의 결과는 사진 한 장이다. 그러나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놓여진 수많은 쓰레기 양 만큼이나 그들의 사연도 각양각색이었다.

티앙은 그라마초 카타도르 협회장이다. 카타도르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 애쓰는 인물이며, 쓰레기장에 흘러들어오는 많은 책들을 섭렵, 국부론을 읽고 협회장 역할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 협회 창립자다. 당시 협회설립에 트집잡은 사람들은 카타도르들이었다며 빅 무니즈 작업을 이해하고 적극 협업하게 된다. 왠지 니체가 좋다는 그는 유쾌하고 진중하고 이해력이 뛰어난 리더다.

이지스는 3살 아들의 죽음 이후 남편이 딸을 데리고 나가버려 혼자 된 여성이다.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으나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슬픔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다.
줌비는 부모를 따라 그라마초 빈민촌에서 유년시절부터 생활해온 협회이사다. 쓰레기 트럭 문이 떨어져 덮치면서 부상을 당했으나 카타도르들의 수혈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혈액은행이 꽉 차는 행운을 병원이 가져갔다며 웃는 그는 쓰레기장에 들어오는 모든 책을 모은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책 다빈치코드와 손자병법은 이미 읽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에 주민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이르마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파라솔로 하늘을 가린 식당을 운영하면서 그라마초 카타도르들의 식사를 책임진다. 빅의 작업에 참여는 했으나 작품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그녀지만 갤러리 전시 오픈식에서 가장 감격에 겨워했던 수줍음 많은 나이 많은 여성이다.
마그나는 남편의 실직으로 그라마초가 부부의 일자리가 되었다. 일마치고 돌아가는 버스에서 찡그리는 승객들에게 쓰레기장에서 일한다고 떳떳히 말하는 그녀. 코타카바나에서 매춘하는 것보다 정직하며 고귀한 일이라고, 냄새는 샤워하면 없어진다고 말하는 여성

수아렝은 매맞는 엄마와 집을 나왔다. 7살 때부터 그라마초에서 일했고 지금은 18살이다. 쓰레기장에서 먹을 것을 구해 살았으며 인생 망치지 않기 위해 마약 밀거래하는 남편과 헤어져 사는 두 아이의 엄마다. 버려진 죽은 아이를 비닐 봉지 안에서 발견했던 순간을 두려움에 떨며 얘기하는 그녀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무척 좋아한다. 그녀는 탁아소를 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말한다. “세상엔 아이들이 많으니까요”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생존을 위해 쓰레기의 땅 그라마초로 왔다는 것, 그리고 쓰레기 더미 속을 헤집고 재활용 될 만한 물건을 주워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약 밀매도 아니고 매춘도 아닌, 더럽고 냄새나지만 땀 흘려 돈을 번다는 떳떳함에 억눌린 자기 욕망이 숨어있다. 분명한 건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이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빅과의 작업이 진행되면서 이러한 욕망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라마초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쏟아내는 이지스의 주체 못 할 눈물은 안타까움과 아슬아슬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생각해보라 누군가의 삶에 개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이겠는가? 저 눈물이 갖는 간절함은 또 어찌할 것인가? 이들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스탭들의 회의가 진행되었다. 빅의 아내는 이들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는 설전을 벌인다. 그의 대답은 단순하다. 다른 현실을 봐야 생각의 방식도 달라지는 거라고, 그리고 덧붙여 말한다. 내가 카타도르고 누군가 와서 2주간 같이 작업하고 외국에 다녀와서 다시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면, 무조건 그렇게 한다고 했을 것이라고. 예전의 삶을 거부하는 것이 안 좋은 거냐고. 그들이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해도 벗어날 계획을 세울 거라고.
빅과 티앙은 런던의 미술 경매회사 필립스 드 퓨리앤 컴퍼니(PHILLIPS de PURY & COMPANY)로 향한다. 마라의 죽음을 쓰레기로 이미지화 한 티앙의 초상사진은 2만 8천 파운드에 낙찰된다.

‘예전에는 현대예술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는데?’
‘흠...쓰레기!?’

런던에서 돌아와 다시 들러본 작업장에서 빅 무니즈와 티앙은 박장대소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경매장 갤러리에서 본 장 바스키야의 그림이 맘에 든다던 그는 현대미술이 쓰레기처럼 보였으나 이제 쓰레기는 현대미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비사회가 만든 쓰레기 랜드. 소비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살기 위해 주워야 하는 재활용품. 그 중에서도 모든 것이라고 할 만큼 많은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PVC 쓰레기로 스스로의 초상화를 만들어갔던 6명의 카타도르. 초상 이미지에는 그들이 희망하는 삶의 모습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수엘렝의 연출된 사진은 흡사 천사 아이들을 품고 있는 엄마 성모 같은 이미지였다. 2년 작업은 자기 삶을 2분 동안만이라도 관찰자로 바라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시작되었다. 2분을 위한 작업은 6명의 삶을 다르게 바꾸어 놓았다.

이 영화는 못 배우고 가난한 이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는 구원으로서의 예술이나 신비한 예술의 힘 따위의 관념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빅 무니즈가 이전에 쓰레기 처리 노동자로서의 동질성을 같고 있다는 출신 성분(?)이 우선 그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예술을 ‘저 쪽‘에 있는 범접 불가능한 영역의 것이거나 ’사회통합을 위한 아름다운 수단‘으로가 아니라 삶이 사유와 실천이 함께 일어난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태도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는 스스로 만들기 만만치 않다. ’~임에도 불구하고‘가 붙는 ’할 수 있다‘의 가능성은 외부와의 조응이 필요하다. 누군들 쓰레기 줍기를 하고 싶어서 하겠는가. 소비사회는 ’~에도 불구하고‘가 쉽사리 작동되기 어려운 사회구조를 더 확고히 하고 있다. 회광반조(回光返照)는 외부의 개입이 필요한 일이다.

밖에서 나를 바라본다는 의미의 회광반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0년 전쯤 인문학 수업에서였다. 감정에 대해 알아보는 특이한 강의여서 참여했다. 인간은 이성이 아닌 감정의 동물이라는 것. 내 감정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요지였다. 회광반조로 시작한 강의에서 만난 나를 포함한 몇 명의 동네 아줌마들은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내가 운영을 맡고 있던 문화공간에서 그 모임이 이어졌다. 쉬운 고전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 그때 내가 기획했던 몸을 쓰는 생활목공활동까지 같이 하게 되었고 소풍을 겸한 워크숍까지 함께 다녔다. 뭔가를 크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2,3년이 지나면서 이들의 삶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리고 10여년 만에 만난 작년 여름, 두 분의 그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옛날 매일 울던 젊은 동생 주부와 말없이 듣고만 있던 나이든 언니 주부의 사연을 앞뒤로 꿸 수 있었다. 자기의 처지를 감당하기 어려워 매일 울었던 동생주부는 감정의 흐름을 요가로 풀어가게 되었고 지금은 요가선생님이 되었다. 동생 뒷바라지로 배우지 못한 미천한 학력이 뽀롱(?)날까봐 말을 아껴야 했던 언니 주부는 부부가 같이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했고 남편은 두 개째 전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변화의 실마리는 회광반조로 시작했던 10여 년 전부터였다.

나는 누군가의 울고 싶은 심정을 혹은 말하고 싶으나 말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준다는 것. 더불어 함께 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그녀의 삶에 개입하고 있음을 아주아주 늦게 알았다. 이 이야기를 여기에 사족처럼 붙이는 것은 유명한 작가 빅 무니즈가 아니더라도, 작정된 2년의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어쩌면 나의 소소한 지금의 활동이 나와 누군가의 변화에 가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만난 씩씩한 이 두 여성은 이제 나를 흔든다. “이제 네 얘기 좀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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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k Muniz

1961년,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출생,
현재 뉴욕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활동 중.
1989년을 시작으로 Medusa Marinara(1997), The Creation of Adam, After Michelangelo(2011), Obama aus Pictures of magazine 2(2012) 등 다양한 솔로·그룹전시 및 프로젝트 진행

출처 : http://vikmuniz.net/b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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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웨이스트 랜드Waste Land> 는 2010년, 루시 워커(Lucy Walker)감독의 브라질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 영화는 리우데자이네루 외곽에 있는 세계 최대의 쓰레기 매립지에서 재활용품을 주워 생활하는 카타도르(Catadores)와 빅 무니즈(Vic Muniz)의 공동작업을 조명한다. 빅 무니즈는 브라질에서 태어나 뉴욕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이다. 1990년대부터 사진, 무대미술, 설치 예술 등으로 주목 받아왔으며 특히 쓰레기, 철사, 설탕, 잼과 피넛 버터 등 업사이클 아트로 주목받았다(남수영, 2014 : 61). 영화 <웨이스트 랜드>에서는 쓰레기 매립지에서 주운 각종 쓰레기로 카타도르들의 거대한 초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Waste_Land_(film),
남수영 “일상의 초상, 그리고 쓰레기의 정치학 : <웨이스트 랜드>와 무니스의 작품을 중심으로” 『비교문학』 2014, 64, pp. 5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