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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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터’를 바꾸는 문예활동을 위하여

'지역 없는 지역특성화' 사업에 대한 고민과 성찰

진행ㆍ정리 : 채효정 / 참석 : 이가영, 황지영, ’18.3月

지역특성화 사업 심사에 2년째 참가하면서 참가 단체나 기획자들의 의식 속에 왜 이토록 ‘지역’이 없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물론 지역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지역은 구체적인 지역 주민들의 삶의 자리라기보다는 지리학적 인구통계학적으로 종종 이해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거의 모든 기획서에 나오는 대상 지역 소개가 대부분 그렇다. 지리적 위치, 거주민의 특징, 인구통계, 자연환경과 인문환경 등등에 대한 이해. 마치 구글 어쓰(google earth)의 관점에서 사업수행지역을 바라 보는듯한 이런 객관화된 서술을 대할 때마다 나는 “지역특성화에서 지역을 제발 지오그래피(geography)가 아니라 로컬리티(locality)로 이해해주세요.”라고 부탁하곤 한다. 지리적 대상이 아니라 구체적 장소성으로 이해해달라는 이 말은 과연 실제로 사업을 운영할 운영주체들에겐 어떻게 닿고 있을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다가가고 그 삶 속에 스며있는 문화적 전통과 양식들을 배우고 새로운 문화양식으로 창조해내는 일, 그 일을 통해서 다시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에서 무언가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고,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일상적 삶터의 진부함 속에서 특별한 의미가 탄생하는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 지역특성화 사업의 취지와 목표는 대체로 그러한데 말이다. 그래서 지역특성화 기획공모 연속지원 사업 운영단체로 선정된 두 단체의 기획자들과 좀 더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리드해 봄’은 춘천에 소재한 단체로 양구 정림리 노인회관에서 지역의 주거주민인 노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는 사이’는 홍천 지역에 거주하면서 동네 이웃주민들, 특히 어린이와 지역 주부들과 함께 ‘그림 활동’을 하는 단체다. 세 가지의 물음으로 우리의 대화를 이끌어갈 길을 열어보았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 문화예술활동가에 대한 물음, 즉 ‘주체’에 대한 물음이다. 기획자로 강사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고민 속에 예술가로서의 자기정체성과 교육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이 부딪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 사업은 예술가를 지원 육성하는 사업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예술 ‘교육’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대부분 교육주체로 참여하는 강사와 기획자들은 예술가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 부딪침 속에서 이 분들은 어떻게 자기의 길을 찾아가고 있을까.

“내가 예술가인가, 교육가인가를 늘 고민해요. 제 재능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하다보면 정작 저 자신의 창작 작업을 소홀하게 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도 순수미술을 전공했는데 생활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교육을 하게 되었어요. 아이들 미술교육을 하다보니까 저 자신이 자꾸 정체되는 느낌도 들고 그랬죠. 그래도 늘 예술가는 진짜 교육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황지영)

“저도 작품활동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경제활동을 위해 밖에 나와서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이 내가 배운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교육’이었어요.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수업하고 그걸로 재료비 충당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방식에 대해 좀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언제든 내 작품과 내 작업을 할 수 있으면 나는 예술가라고. 교육 프로그램을 할 때 잘 하려고 하지 않아요. 과정에서 즐기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하죠. 그런 역할이 문화예술교육에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요.”(이가영)

“예술도 교육도, 대상자의 우위에 서서 시혜적 관점에서 베풀어준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한 것 같아요. 그럼 문화적 우열관계가 생겨버리죠. 교육활동을 봉사의 관점에서 보면 안되는데 계속 봉사의 관점이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로 문화적 우위에 있는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소외되거나 열등한 집단에 대해 무언가를 베풀어준다는 관념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대상 수준을 낮게 보기 때문에 자꾸 프로그램들이 자꾸 유아화 되는 경향도 그런 관점 속에서 나오는 결과인 것 같고요. 그러면 ‘서로 배움’이라고 하는 교육적 가치, 지역 안에 이미 내재해 있는 문화적 토양을 다시 북돋우고 살려낸다는 의미의 지역특성화라는 의미가 사라져버리죠. 대상과 예술적 기능 밖에 남지 않아요. 저는 예술과 교육을 잘 결합시킬 수 있는 매개 개념이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교육이란 것 자체가 나와 너의 만남을 통해 서로 변하는 활동이고, 그렇게 사람을 바꾸고 삶터를 바꾸어 나가는 활동을,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게 문화예술교육이니까요. 그래서 ‘문예활동가’라는 이 정체성은 예술가로서의 혹은 교육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모순 없이 함께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문화예술 활동가’라는 이름을 좋아해요.”(채효정)

내가 무엇이냐는 물음,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은 내가 하는 활동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물음일 것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물음을 던져보았다. 여러분은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이 활동을 왜 하시는가?

“우리 마을에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어느 날 대안학교 미술수업을 하려고 소나무에 그림을 그리는데 한 어르신이 보시고선 관심을 보이시더라고요. 어 우리 동네에 그림 그리는 사람이네? 그러면서 우리를 그려달라, 이 할머니를 그려달라 등 부탁을 하시면서 소문이 났어요. 제가 사는 서석면에서 그림을 배우려면 차로 40분 정도 도심으로 나가야 되거든요. 그런데 동네에서 미술수업이 가능한 걸 알게 되니까 제가 만나는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는 걸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엄마들도 함께 그림을 배우고 그렸죠. 그러다 강원문화재단에서 그런 활동에 지원하는 사업이 있는 걸 보고 지원하게 된 거예요. 뭔가 당위적인 것은 없었고요, 오히려 사업을 하면서 왜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죠.”(황지영)

“저는 지역주민으로부터의 권유를 받은 것이 시작이었어요. 이런 문화재단 지원사업이 있는데 그 단체에서 우리한테 좀 교육을 해주면 어떻겠느냐, 그래서 시작한 것이 원주 임대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자꾸 일에 대한 의미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그곳에서 활동한 후 양구 노인회관으로 옮겨서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 스스로 예술 활동에 대한 경험이 필요한 것 같은데 거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이가영)

‘문화예술교육’이란 이름으로 홍천 서석면에서 일어난 일과 양구 정림리에서 일어난 일, 그건 무엇일까. 거창한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파문이다. 그림을 매개로 서로 만나고 소통하고 무언가를 꼼지락 꼼지락 함께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삶의 방식도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 노인정 기능밖에 하지 않는 마을회관이 새로운 장소성을 가진 곳으로 재탄생하는 것. 지난 해 정림리에 갔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만큼이나 아주 아주 느린 속도로 음표와 박자를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지휘봉을 들고 팔을 힘껏 내저으며 강사 선생님이 가르쳐주지 않은 뽕짝을 신나게 ‘지휘 박자에 맞춰’ 합창했다. 그 생동감이 좋았다. 원래 의도와 달리 이런 배움의 자리와 마을 밥상은 사소한 갈등으로 등 돌리고 눈 흘기는 이웃들을 한 자리에 앉게 했다. 작은 시작이었다. 젊은 예술강사들에게도 노년의 삶의 깊이로부터 배운 무언가 다른 파문이 남겨지길 나는 기대했었다.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조금씩 삶과 주민과 지역의 문화가 변한다. 그 문화는 삶의 문화다. 조용한 동네가 시끄러운 동네로, 냉랭하던 동네가 따뜻한 동네로, 아무도 돌보지 않던 버려진 땅이 무언가 재미난 활동 공간으로 변하는 것. 그러면서 사는 곳에 애착을 갖게 되고 그러면서 거기 사는 사람들이 세계화된 문명, 자본주의적 대중문화와 소비문화 앞에서 ‘문화소외지역’의 주민이 아니라 향토에 대한 긍지와 미학을 갖게 되는 것, 그게 ‘지역특성화’라는 딱딱한 말에 담겨야할 진짜 의미가 아닐까. 우리의 세 번째 물음은 지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저는 기본적으로 같이 살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아요. 지속적이고 생명력 있는 지역 문화예술 교육이 되려면 같이 사는 구조를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업 시간 외에 일상적인 만남을 통해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폭이 큰 것 같거든요. 어느 할머니가 수십 년 동안 토종씨앗을 받아 농사를 지으시는지, 알코올이나 청소년 문제 같은 지역의 구체적 상황들은 삶을 공유해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이죠.”(황지영)

“그런데 때로는 외부인의 존재가 그 마을에 외부인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적절히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이를테면 주민들끼리 갈등이 있을 때 그 안에서 다 풀기는 힘들잖아요. 그런데 외부인이 들어가면 감정이 틀어진 것이 그대로 표출되는 것이 좀 자제되기도 하고, 풀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은가 생각해요. 서로 싫어서 얼굴도 안보고 말도 안 섞으시던 분들도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시거든요. 강사가 때로는 단절된 대화의 매개자가 되기도 하고, 함께 공유하고 협력하는 수업 프로그램에선 같이 만든 것을 서로가 서로에게 나누는 활동도 하고 그러고 있어요.”(이가영)

지역특성화 사업에 대한 대표적 오해가 뭔가 지역을 대표할 만한 컨텐츠를 발굴하거나 없으면 개발이라도 해서 그것을 주제화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 지역의 문화유산이나 관광자원이 있는 경우는 그것을 활용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지역을 대표할 만한 뭐라도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사는 인제에서는 지역 문화콘텐츠를 발굴한다고 한국전쟁 때 인제를 방문한 마릴린 먼로의 동상을 내린천 천변 공원을 조성하면서 그 한 가운데 떡 하니 세워놓았다. 지역특성화의 지역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두 분 대담자의 말에는 다행히 그런 지역에 대한 오해는 없었다. 지역은 ‘삶터’이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구체적 장소다. 그 장소성이 삶터마다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에 그 구체성에 주목하라는 것이 ‘특성화’라는 말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지역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지역에 함께 살면서 문화예술교육을 펼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광범위한 농촌 촌락형 지역에 밀집거주지인 도심이 섬처럼 드문드문 놓여있는 강원도의 지역적 특성에서는 그것이 용이하지 않다.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지역의 문화예술가들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주민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반 즉 지역 문화의 생태적 복원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이 사업은 계속 일종의 도농간 문화예술 프로그램 및 강사 파견 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물음이 시작되었다.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나는 누구이며 왜 하는지, 지금 ‘지역’이란 것이 왜 중요한지.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물음은 이후에도 사업을 통해서 그리고 이 지면을 통해 계속 이어가기로 하고 짧고도 소중했던 만남의 기록은 여기서 접는다.

[본 기사는 재단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