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삶 속 문화가 핀다 문화가 핀다

책으로 지은 요새,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정다은 / 강원문화재단 문화접근성팀, ′19,12月

하지만 이 책 속의 젊은 저항자들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치유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독재 정권에 맞서는 저항의 패러다임이자 사회적 변화의 시발점이다.

이것은 개인의 치유보다 훨씬 크고 존엄한 가치를 가진다.

어쩌면 사회 전체를 치유한다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젊은 저항자들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치유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독재 정권에 맞서는 저항의 패러다임이자 사회적 변화의 시발점이다. 이것은 개인의 치유보다 훨씬 크고 존엄한 가치를 가진다. 어쩌면 사회 전체를 치유한다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먹고 사는 일이 대개 그렇겠지만,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일하다 야근까지 하고 퇴근해 늦은 밤에야 비로소 혼자 침대에 누우면 내 삶이 쳇바퀴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나의 삶의 주체가 아닌 느낌, 사는 것이 아니라 떠밀려 살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무언가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지곤 한다. 그럴 때 집히는 대로 뭐든 꺼내 읽게 되는데, 오롯이 그 책에 집중하고 그 책 속 세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나를 느끼는 것이 쳇바퀴 같던 하루를 상쇄하는 나만의 방식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고영직 문학평론가가 「북매거진 나비,2015」에 투고한<너와 나의 안녕한 마음생태학을 위하여> 라는 글에서 언급한 손택수 시인과의 일화가 생각난다. 201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분 예심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손 시인의 말에 의하면 그 해 안산시 고잔동에서 투고된 작품만 서른 건이 넘었다고 한다. 안산시 고잔동은 4.16 세월호 참사의 한가운데 있던 단원고등학교가 위치한 동네이다. 손 시인은 “한 지역에서 이만큼 많은 작품이 나왔다는 건 특이한 일이다. 문학을 통해 자기 치유를 하고 있는 듯하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4.16 참사의 혹독한 후유증을 앓던 고잔동 사람들이 왜 글을 써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내가 쳇바퀴 같았던 내 하루를 떨쳐내고 내 인생의 주체가 나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무언가 읽어야 했던 이유와 닿아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임을 안다 해도, 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본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음이 내 집 문 앞에 서 있는’)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책을 모으고, 도서관을 세우고,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시리아 내전 속 젊은 저항자들의 이야기는 경이롭게까지 느껴진다.

이 이야기는 이 책의 작가 ‘델핀 미누이’가 우연히 보게 된 수수께끼 같은 단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책의 본문에서는 제시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그 사진을 접할 수 있었는데 나역시 작가가 느꼈을 자석 같은 끌림을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그 사진이 주는 생경함은 누구라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책이 빼곡하게 들어찬 벽에 둘러싸여 책을 읽고 있는 두 젊은 남자가 담긴 그 사진은 얼핏 보기엔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그 사진이 찍힌 곳이 끔찍한 전쟁의 한가운데 있는 시리아, 그중에서도 반군의 거점지라는 이유로 식량도 의료품도 제공받지 못한 채 정부군에 의해 봉쇄된 작은 도시 ‘다라야’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총알과 폭탄이 매일 같이 빗발치는 그곳에서 지하에 은밀히 건설한 요새가 도서관이라는 것은 처음엔 정말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반군의 군사 훈련소도 아니고 도서관이라니?!

그 곳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은 모두들 저마다의 이유로 책을 읽는다. 전쟁 한복판에서 책이라니, ‘사람 목숨도 구해내지 못하는 마당에 책을 찾아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람?’ 그들도 처음엔 그런 의문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지식의 문이 열리는 전율을 맛보았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전쟁이라는 대치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는 정신적 도피를 통해 긴장감을 내려놓기도 했다. 모든 것이 쓰러지고 무너져 내리는 물리적 상황 속에서도 도서관을 만들고 책이라는 지식의 보고들을 지켜 내는 것은 ‘우리들은 여전히 바로 세우고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저항의 표현이기도 했으며, 참혹한 현실로부터 도망치듯 책속으로 빠져들며 해방감을 느끼는 통로로 삼기도 했다. 그들에게 독서는 피난처와 같았다. 모든 문이 잠겼을 때,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책의 책장들.

책은 이들에게 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길을 내어주었다. 이 나라의 독재자는 거짓으로 꾸며내어 자신들의 체재를 선전했고 정치사범, 고문을 당한 반대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체제 인사들의 이야기와 같은 진실은 왜곡하고 삭제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책을 읽는 젊은 저항자들은 (비록 그들의 몸은 폐쇄된 마을에 갇혀 있을지언정) 더 이상 그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들은 책이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수단이자 영원히 무지를 몰아내는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

다시금 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쳇바퀴 같던 나의 현실을 잊기 위해,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는 상실감을 극복하고 나를 되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은 나에게도 역시 치유이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젊은 저항자들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치유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독재 정권에 맞서는 저항의 패러다임이자 사회적 변화의 시발점이다. 이것은 개인의 치유보다 훨씬 크고 존엄한 가치를 가진다. 어쩌면 사회 전체를 치유한다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포탄은 비처럼 쏟아졌고 무차별 생화학 공격들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식량이나 의료품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고 어린 아이들을 포함해 죄 없는 민간인들은 계속해서 희생되었다. 저항 세력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결국 그 곳을 떠나야 했고 ‘다라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그곳에 남은 그 비밀 도서관 역시 완전히 먼지 속에 사라져 버렸다.

이 책의 작가는 책의 서두에서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세상에 나와 그 도서관에 있는 다른 책들과 나란히 놓이게 될 것이라고 약속 했었다. 다라야의 살아 있는 회고록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책으로 지은 요새’는 어디에서든 다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책을 읽는다는 것의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그릇된 것에 반해 총이 아닌 책을 들 수 있는 저항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말이다. 그건 꼭 전쟁의 한가운데가 아니어도 괜찮다. 전쟁만큼이나 참혹한 현실은 어떤 시대에도 존재하니까 말이다.
혐오와 차별, 불신과 대립이 넘쳐나는 오늘날은 어떨까. 책으로 요새를 지어 올리기에 딱 좋은 날씨가 아닌가.

이미지 출처: BBC, CNN, Daraya Media Center, France24, 더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