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사람과 현장이 이곳에 있다 이곳에 있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책

김 도 연/ 강원일보,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19.12月

마치 지독한 허기에 걸린 사람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책 속의 글자들을, 문장을, 내용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함박눈이 내렸고, 서쪽에서 밀려온 눈보라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지독한 허기에 걸린 사람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책 속의 글자들을, 문장을, 내용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함박눈이 내렸고, 서쪽에서 밀려온 눈보라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0년이 막 시작되는 겨울이었다. 당시 나는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집에 내려와 빈둥거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되는 일이라곤 없던 시절이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으나 소설가가 되지 못했고 산골 고향집까지 짐을 꾸려 내려왔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두 곳의 지역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된 이력이 있었으나 그것을 가지고는 할 수 있는 게 별반 없었다. 소설을 쓰는 족족 중앙일간지와 문예지에 응모를 했지만 십여 년째 낙방만 거듭하고 있었기에 마음은 거의 사막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나이까지 빠트리지 않고 차곡차곡 먹어가고 있었다. 통장 속의 돈도 거의 바닥난 상태라 친구들과 술 한 잔 기분 좋게 마실 수도 없었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였다. 계속 소설을 쓰느냐, 많이 늦었지만 다른 일을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니냐의 기로에 선, 새천년이 시작되는 겨울 한복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보라 날리는 장거리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하릴없이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있는데 도서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도서관이라니! 강원도 산골짜기 진부라는 곳에 도서관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추위와 취기가 동시에 달아나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 내가알던 도서관은 1군 1도서관이었다. 당연히 나는 머리와 옷, 신발에 묻은 눈을 털고 새로 생긴 자그마한 도서관의 첫 번째 문을 열었다. 마치 보물이 가득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듯 잔뜩 긴장한 채 두 번째 문을 밀었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계단을 올라가 2층 서가의 책꽂이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렇다. 당시 나는 하루의 일정 시간 동안 숨을 곳이 필요했다. 사실 시골마을에서 숨을 곳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집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마을에는 어린 시절부터 아는 얼굴들이 지나다니고 장거리 역시 한 다리만 건너도 사돈에 팔촌이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도서관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당시만하더라도 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약했기에 이용객도 거의 없었다. 나는 서가의 책들을 차례차례 살피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어나갔다. 어떤 날은 하루에 네 권의 책을 읽어버리기도 했다. 마치 지독한 허기에 걸린 사람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책 속의 글자들을, 문장을, 내용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함박눈이 내렸고, 서쪽에서 밀려온 눈보라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주 폭설이 내려 도로가 마비되기도 했지만 나는 그 천국의 도서관 방문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천국의 도서관이 아니라 세상 끝에 자리한 도서관이라고 중얼거렸다. 오전 10시쯤 집을 나와 도서관에서 낮 시간을 보낸 뒤 오후 6시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책을 읽고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으면 노트에 적었다. 책의 종류도 가리지 않았다. 낚시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오면 낚시 책을 읽었고 동물에 관한 책이 마음을 당기면 그날은 그 책을 읽었다. 그 책들에는 이런 것들도 숨어 있었다. 물고기는 기억력과 통증이 약해 낚싯바늘에 걸린 사실을 곧 잊어버리고 다시 바늘을 숨긴 미끼를 향해 다가온다고... 프롱혼이라는 초식동물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초원을 달리는데 그 까닭은 지금은 사라진 과거 포식자의 유령을 보고 놀라서 달리는 거라고... 그 모든 것들이 인생의 어떤 비유인 것만 같아 노트에 적어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읽었다. 덕분에 내 노트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두툼해지며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을 건너가고 있었다. 호주머니는 마침내 텅텅 비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도서관을 떠나지 않았다. 여름의 끝자락부터는 노트에 소설 비슷한 것을 누에가 실을 토해내듯 조금씩 끄적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그 소설로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세상 끝에 있는 것만 같았던 진부도서관으로부터 벌써 20년이 흘러왔다. 도서관이 돈 없이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라면 서점은 읽고 싶은 책을 돈을 주고 사는 곳이다. 도서관보다 신간이 훨씬 빨리 들어오는 곳이다. 나 역시 서점을 들락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소년잡지를 사러 들락거렸고(특별부록을 훔치다가 발각된 적도 있다!) 중고등학교 때는 참고서나 문제집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본격적으로 서점을 찾기 시작한 건 당연히 대학시절이다. 오프라인 서점이 한참 호황기를 누리던 그때 나는 서점의 문학 쪽 서가 앞에서 잔뜩 폼을 잡은 채 소설책과 시집을 뒤적거렸다. 마음에 드는 여자들이 어떤 책에 관심이 있는지를 기웃거리며, 슬그머니 다가가 말을 붙이기도 하면서, 고향집에서 보내준 생활비를 쪼개 책을 사고 그 책을 옆구리에 낀 채 포장마차를 찾아가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세월의 여파는 만만찮아 온라인 서점이 오프라인 서점을 밀어버리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자주 이용했던 춘천의 학문사와 청구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느 날은 옷가게로 변한 그 서점 앞에서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춘천의 서점뿐만이 아니었다. 서울의 종로서적도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 까닭이야 많고 많겠지만 하여튼 전국의 서점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러했기에 속초의 동아서점 이야기는 놀랍고 반가웠다. 속초라는 작은 도시에서 삼대에 걸쳐 운영하는 서점이라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나는 그동안 거리에서 서점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만 했지 누가 그 서점을 운영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아는 서점주인은 어린 시절 진부에 있었던 중앙서점이 전부였다. 안다기보다는 방학 때 고향에 가면 가끔 찾아가 꽤 오래 문학 쪽 책들을 살피며 엿본 게 고작이다. 방학이면 딸들이 부모 대신 침침한 서점을 지키고 있었고 서가의 책은 아무리 훑어보아도 선뜻 구입할 만한 게 없었다. 당연히 내게는 서점의 주인보다는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 먼저였기에 그 정도의 관심이 다였다. 동아서점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속초에 갔을 때 한두 번 들어가 본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동안 오래된 서점의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1956년 처음 문을 연 동아서점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과 아내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왠지 모를 잔잔한 감동이 번져왔다.

늦가을 비가 내리는 한낮에 동아서점에 도착해 아들 김영건씨와 만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눴다. 새 건물로 자리를 옮긴 동아서점은 서울의 대형서점 못지않았다. 아니, 대형서점을 아늑하게 압축해놓은 인상이었다. 비록 자리를 옮겼지만 동아서점에는 할아버지 김종록의 시절, 아버지 김일수의 시절, 그리고 아들 김영건의 시절이 고스란히 포개져 그 내공을 은은하게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가을비가 도로와 인도를 적시는 풍경이 보이는 서점의 넓은 창가에 앉아 김영건 씨에게 서점 운영의 즐거움과 고충에 대해 물었다. 그는 먼 타지에서 소문을 듣고 일부러 속초의 서점까지 찾아온 손님 이야기며 진열된 책들 중에서 조금씩 손상된 책들만 골라 구입하는 고마운 손님 이야기를 들려줬다. 또 아버지와 함께 일하다보니 서점이란 공간 안에서 사적인 부분과 공적인 부분의 접점을 찾기까지의 고충도 털어놓았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놀랍게도 자신의 책까지 저술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가 쓴 동아서점 이야기인 <당신에게 말을 건다>를 읽으며 나는 깜짝 놀랐다.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필력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 안에는 그가 서울에서 하던 일을 접고 아버지의 서점을 물려받아 새롭게 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 한 곳의 서점이 이렇게 어렵게 탄생하는구나!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했다.

그 중 신간 배본에 대한 이야기를 옮기면 이렇다. ‘아직도 신간을 직접 주문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리라. 이 맛에, 그러니까 저 수많은 책 중에서 온전히 나의 감각만을 믿고 책을 선택하는 맛에 꿰뚫렸기 때문이겠다. 매주 출간되는 책들을 시시각각 체크하고, 주말엔 주요 일간지 책 지면에 어떤 책들이 소개되었는지 시간을 들여 읽어보고, 그중에 또다시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가 연거푸 고민을 거듭하다 싫증도 나지만, 어찌어찌하여 주문 직전 단계에선 어떤 책을 어디에 몇 권 진열할지 머릿속에 그려보는,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지는 이 모든 일. 하지만 그렇게 심사숙고를 거친 책의 단 한 권 판매만으로도 모든 피곤을 보상받는 일. 이렇게 말하고 나니 새삼 무슨 대도시의 중심부에서 일하는 세일즈맨처럼 비장하다며 그만 웃음이 난다.’

어떤가? 당장이라도 속초의 동아서점으로 달려가 신간 코너를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가? 이런 서점주인 만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아, 그는 서점의 단골손님이었던 분과 결혼까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헤어지기 전 마지막 말은 깨알 같은 아내 자랑이었다.
“의지가 굳어요. 제가 감정적으로 흔들릴 때 기본 가치를 잃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아내 이수현은 <아주 사적인 속초 여행지도>를 그리고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의 경험을 살려 ‘여성의 몸’이란 테마로 관련 책들을 모아 코너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고 귀띔해 주었다. 서점을 나오면서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책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게 팔 줄 아는 사람이었다.

속초의 늦가을을 적시는 가랑비는 그치지 않았다. 영금정 너머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한 끼를 때울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서점에서 나오면 배가 고픈 게 나만의 생리현상인가? 하여튼 회덮밥과 홍게라면으로 배를 채운 뒤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바로 뒤편에 자리한 작은 서점 ‘완벽한 날들’을 찾았다. 어딘가로 떠나기 전 정차중인 버스들의 꽁무니가 창 너머로 보이는 서점이었다.

첫인상부터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서점이었는데 젊은 주인 최윤복 씨의 표정과도 잘 어울렸다. 터미널, 버스들, 승차장과 하차장, 대합실, 그리고 주차장 모서리와 연결된 작은 서점과 함께 운영하는 이층의 게스트하우스...

종합서점과 달리 작은 서점은 아무래도 책의 선택에서부터 서점주의 취향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윤복 씨는 출판사와 협력하여 그 출판사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판매하고 또 해당 책의 저자를 초청하여 독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고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출입문 옆에 김현 시인의 낭독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더불어 북토크, 독서모임, 인디밴드의 공연, 그림책 원화전시회 등등을 꾸준히 열고 있는데 자비로 강연료와 차비, 식비를 감당하다보니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물어보니 그동안 ‘완벽한 날들’을 다녀간 문인들이 적지 않았다. 박준 시인, 조해진 소설가, 신미나 시인, 김이듬 시인, 김규항 시인... 오, 내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속초가 고향인 최윤복 씨 역시 서울생활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경우였다. 속초터미널 뒤편 방치되었던 건재상 건물을 고쳐 1층은 서점과 찻집으로 이층은 아담한 게스트하우스로 꾸몄다.

어떤 손님은 속초로 여행을 왔으면서도 멀리 가지 않고 며칠 동안 책만 읽다가 돌아간 경우도 있다고 했다. 딱 내가 꿈꾸는 여행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문화공간의 중요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 시민단체 일에도 관여하다가 작은 서점을 열게 되었다. 작은 서점은 서가에 진열된 책을 보면 서점주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가 있다. 대충 훑어보았는데도 그의 아름다운 고집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가능하다면 작가에게 한 달 정도 방을 제공하고 속초에 관한 아무 글이나 쓰게 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고 하였다. 오, 그 역시 내가 소원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부디 자비를 쓰지 말고 적당한 지원을 받아서 그 프로그램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손님이 책 좀 골라달라고 부탁을 해올 때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언젠가 동네 어르신에게 그런 부탁을 받았는데 그는 그분의 관심사와 나이, 성향을 꼼꼼하게 물어본 다음 한 번에 한 권씩 책을 추천했다고 한다. 나는 최윤복씨가 추천한 책이 무엇일까 궁금해 제목을 물어보았다. 그 책은 다름 아닌 작년에 작고한 평론가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대활자본이었다! 음... 옛날 옛적에 나는 황현산 선생님의 가장 못난 제자였다. 속초의 작은 서점 ‘완벽한 날들’에서 다시 만난 스승을 떠올리며 비에 젖은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그해 가을, 우여곡절 끝에 소설가가 된 나는 진부도서관을 떠나지 않고 아예 터를 잡았다. 서가의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소설을 썼다. 가끔 폭설이 내리고 눈보라가 지나가는 창밖을 바라보며 자그마치 15년을 보냈다. 그동안 사서들이 여러 번 바뀌고 이용객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떠나갔다. 그 어느 날 화장실에 갔다가 내 자리로 돌아오니 어여쁜 아가씨 한 분이 내가 펼쳐놓은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처음 진부도서관에 왔다가 아저씨를 봤어요. 그런데 중학생이었을 때도 있었고 고등학생 때에도 여기에 있었어요. 대학생이 되어 가끔 고향집에 왔을 때도 있었고요. 지금은 회사원이에요. 집에 일이 있어 왔다가 잠깐 들렀는데 아저씨가 아직도 계신 거예요. 너무 궁금해서... 도대체 뭐하시는 분이에요?”
그러나 나도 결국 정들었던 진부도서관을 떠나 지금은 세상의 도서관을 전전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에 이런 홍보 문구가 돌아다녔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책의 52페이지를 펼쳐 다섯 번째 문장을 옮기세요. 책 제목은 밝히지 마시고...’ 그래서 나도 내 곁에 놓여 있는 책을 들여다보았다. 속초 동아서점에서 구입한 <당신에게 말을 다> <속초>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 그리고 완벽한 날들에서 구입한 <달몰이> <이안 - 경계를 넘는 스토리텔러> <그리스의 끝 마니>가 지금 내 곁의 책들이다. 자, 어떤 책의 52페이지 다섯 번째 문장을 옮길까?

- 나는 이 여행을 위해 그토록 많은 동반자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