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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춘천”: 국민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책 읽기

송 승 철/ 한림대학교 명예교수, ‘19.12月

일반적으로 시민들 모임의 수명이 짧은 이유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서인데,

책춘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첫 모임에 마흔 명 정도 참석했지만 이후 참석자가 점차 늘어

도서관 1층 라운지가 좁을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시민들 모임의 수명이 짧은 이유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서인데, 책춘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첫 모임에 마흔 명 정도 참석했지만 이후 참석자가 점차 늘어 도서관 1층 라운지가 좁을 정도였다.

2013년 11월에 출범했으니 6년을 꼬박 채우고 이제 7년째로 접어들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월례독회는 매월 첫째 주 화요일 춘천 효자동에 있는 ‘담작은도서관’에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진행한다. 독회 ‘책 읽는 춘천’을 시작할 때 나는 한림대 교수였고 춘천에 살고 있었다. 중간에 뜬금없이 도공무원이 되어 주문진에 있는 강원도립대학으로 옮겨 거기서 4년간 학교를 책임지다 올해 7월 퇴직했다. 주문진 시절에도 독회 때 처음에는 조기퇴근 신청을 하고 직접 운전해서 달려왔다. 나중 생각해 보니 독서운동가로서 시민들과 책 읽는 활동이 공무원의 본분과 어긋날 것도 없다 싶어 관용차를 타고 춘천으로 왔다. 주문진에 있을 때조차 매달 꼬박꼬박 진행했는데 지난여름 퇴직한 직후 한 번 건너뛰었다. 다시 춘천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조직정비와 운영개선을 위해 회원들을 만나 이런저런 논의가 필요하다고 둘러댔지만 실은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 개인적으로 피곤이 누적된 탓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딱 한 번 쉬었으니 웬만큼은 한 셈이다.

첫 번째 독회 때 고른 저작은 철학자 에드워드 스키델스키와 경제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함께 쓴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How Much Is Enough?)이다. 첫 독회 때의 책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이 출발이 ‘책 읽는 춘천’의 성격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책춘’—회원들은 이렇게 줄여서 부른다.—은 인문학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세속의 일을 함께 고민하는 시민들의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따라서 달착지근한 자기 위안을 주는 책이나, 실은 처세술이지만 자기개발이란 이름으로 위장한 책, 심지어 철학적 고담준론이라도 오늘의 현실과 관계가 없는 책은 고르지 않는다. 대신, 오늘날의 사회적 의제에 대해 인문학적 통찰을 담은 책을 찾으려 노력한다.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경제학자 케인즈의 생애에 대해 세 권짜리 두터운 결정판 전기를 썼고 그 공적으로 작위까지 받았다. 아들 에드워드는 고전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아담 스미스 이후 ‘정통’ 경제학은 윤리적 문제를 괄호 속에 넣었고 이 경향은 서구 경제학에서 스미스 이후 과학과 중립성의 이념 아래 강화된다. 철학은 어떨까? 최근 강단 철학서는 지독히 난해한 데다 내용도 한결같이 급진적이라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이런 교착 상태에서 경제학자와 철학자가 함께 현재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어떻게 ‘좋은 삶’이 가능한가, 남을 배려하고 또 남으로부터 배려를 받는 ‘윤리적 삶’ 또한 어떻게 가능할까를 탐색하고 있다.

책춘을 운영하면서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시민들 모임의 수명이 짧은 이유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서인데, 책춘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첫 모임에 마흔 명 정도 참석했지만 이후 참석자가 점차 늘어 도서관 1층 라운지가 좁을 정도였다. 의자에 끼인 상태로 두 시간 앉아있기 힘들다는 불평까지 나왔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후 참석자가 줄어들었다.
또 하나 어려움은 재정적 난관이었다. 책춘은 처음부터 성인들의 독서를 지향했다. 그래서 시간을 저녁 7시로 잡았는데, 우리나라 직장 분위기로는 6시 칼퇴근하고 밥 먹고 7시 참석이 쉽지 않은 법이라 샌드위치를 준비했다(진짜 맛있는 샌드위치입니다!). 또한 책읽기는 커피와 함께 해야 제 맛인데 이왕이면 커피만큼은 춘천 최고의 맛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잘 아는 라르고의 선우 사장께 부탁하니, 사흘 전 로스팅한 원두로 현장에서 직접 내려준다(의심나면, 한번 와서 맛보시라!). 재정은 한림과학원 프로그램으로 등록하여 지원받고 있지만 시민단체 운영이란 것이 공적 지원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바디텍 최의열 사장을 비롯해 여러 분들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그런데, 회원관리나 재정 지원보다 더 어려운 게 책 선정이다. 책춘을 시작하고 발견한 점인데 우리나라 시민들의 독서 근육이 심각할 정도로 약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백만 부 이상 팔렸다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만 하더라도 일반 독자를 위한 교양서적인데 혼자서 읽기 어렵다는 소회가 많았다. 시민을 폄하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이 대학 강단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만큼 우리 대학교육의 실패를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OECD에서는 회원국 시민들의 ‘문해력’ 수준을 정기적으로 비교·조사하는데 한국은 가장 특이한 사례로 등장한다. 영국 독자의 경우 20대부터 50대까지 큰 변화 없이 일정한 수준의 문해력을 보이는 반면, 우리나라 독자들은 10대, 20대는 세계 최정상급에 속하지만, 30대부터 점차 하강하다가 50대에 이르면 OECD 최하 수준에 이른다. 따라서 매달 독회 책을 선정할 때 길이가 삼백 쪽을 넘거나, 내용이 좋아도 학술용어가 난무하거나 하면 고를 수가 없기 때문에 다섯 권, 여섯 권 훑어봐야 적당한 책을 고를 수 있다.

책춘에서 읽는 책들은 원래부터 정평이 난 고전 급 저작일 수도 있고 그때그때 시의에 맞게 고르기도 한다. 당연히 혼자 읽기 버거운 책들이 적지 않은데, 따라서 책춘은 대부분의 경우 저자를, 번역서인 경우는 역자나 관련 분야 전문가를 초빙하여 강연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예를 들면,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빈번하게 제기된 질문 가운데 하나가 교육문제였다. 학생들은 왜 탈출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기다리다 죽음을 맞이했는가? 그때 아만다 리플리가 쓴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를 읽었는데, 한국, 핀란드, 폴란드, 미국 네 나라의 교육제도를 교환학생들의 체험을 통해 비교·분석한 글이다. 번역서이기 때문에 당시 양구 교육청 장학사였던 최광익 선생—지금은 베트남 소재 한국국제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이 발제를 하고 한국 교육의 문제를 토론했다.

2014년 12월에 서울시와 서울시 교육청에서 주도했던 인권조례 제정이 사회적 논란으로 부상했는데 이때 페미니스트 필자로 유명한 정희진 씨를 초청해 그의 저작 『페미니즘의 도전』을 함께 읽으면서 ‘양성평등’이란 용어 자체가 가진 문제점부터 시작하여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든 불평등에 대해 논의할 기회를 가졌다. 해리 덴트의 『2018 인구 절벽이 온다』를 읽은 것도 우리 시대의 출생률 감소와 노령화 사회의 대두가 우리의 삶에 미칠 영향 때문이었는데, 그 즈음부터 ‘인구절벽’이란 용어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시월에는 전방욱 교수가 쓴 『크리스퍼 베이비』를 읽었다. 최근 중국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인간 배아세포를 편집하여 세 명의 유전자 변형 아이가 탄생한 일이 있었다. 유전공학이 치료의 명목하에 인간의 증강을 꾀한 사례인데, 이를 과학자 집단에게 맡겨서 될 문제인지 저자를 초빙해 토론했다.

그 외에도 스테파노 자마니의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정우의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 김찬호의 『모멸감』, 이태호의 『미술, 세상을 바꾸다』, 로버트 라이쉬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 등을 읽었다. 그런가 하면 우리시대의 공론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잡지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다. 지식인 사회는 물론이고 일반적 여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창작과 비평』과 『녹색평론』에 대해 발행인인 백낙청 교수와 김종철 교수를 직접 초빙해 한 호씩 읽었다. 『창작과 비평』의 경우는 이날 독회를 계기로 ‘창비 읽기 모임’이 생겨났고, 지금까지 1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하는 독자적 독회로 분기했다.

늘 이렇게 머리 지끈지끈한 책들만 읽지는 않는다. 인문학 책모임이지 않은가. 한국 시문학사에서 가장 대중성이 높은 백석의 시집을 편집자인 이동순 시인의 발제로 읽었고, 부르주아 청년의 사회적 고민과 사랑을 다룬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임홍배 교수가 번역했는데, 번역자의 직접 소개로 함께 읽었다. 수년 전 작가 신경숙 씨의 표절 문제가 불거져 문단에서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외딴방』을 읽었는데, 표절 문제도 중요하지만 작가 신경숙의 문제의식과 역량을 느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도 역시 번역자이자 전공자인 설준규 교수와 윤지관 교수가 직접 해설을 맡고 토론을 진행했다.

2015년에 『밤이 선생이다』를 읽었는데 작가이자 비평가인 황현산 교수가 내려왔다.

독회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40여 명이 모였는데, 그때부터 참석자가 갑자기 늘어나, 담작은도서관 1층 로비에 좌석이 모자라 바닥에 앉아서 들었다. 황 선생은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갔는데 몇 년 후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한없이 아쉬운 일이다. (다음 카페의 ‘(사)책읽는춘천’을 검색하면 지금까지 읽은 책의 목록이 포스터 형식으로 실려 있다.) 물론, 꼭 외부에서만 발제를 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발제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으니 이 또한 반가운 일이다.

지난 12월 독회 때 읽은 책은 정은귀 교수의 『바람이 부는 시간』이다. 한해가 저무는 연말인데 시절도 하 수상하니 이런 때는 시를 읽어야 하는 법이다. 정은귀 교수는 시인들보다 시를 더 좋아하고 일반 독자에게 시를 정말 맛깔나게 해석해 준다.

연말이기도 하니 그날 읽은 여러 편 가운데 크리스토퍼 로그의 시를 원문과 소개하며 이 글을 끝내련다.

벼랑 끝으로 와.
떨어질지 몰라요.
벼랑 끝으로 와.
너무 높아요.
벼랑 끝으로 오라고!
그러자 그들이 왔고,
우리는 밀었고,
그러자 그들은 날아올랐다.

Come to the edge.
We might fall.
Come to the edge.
It's too high!
COME TO THE EDGE!
And they came,
and we pushed,
And they flew.

― Christopher Logue 『Come to the E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