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생각과 마음을 잇다 마음을 잇다

우리는 책을 읽습니다

금·독·모/ ‘19.12月

큰 사건 이후에 그 시대를 공감하는 글이 쏟아져 나오고

그 창작물 하나하나에 모두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한다.

그 글을 통해 공감을 하고, 생각의 폭을 넓힌다.

큰 사건 이후에 그 시대를 공감하는 글이 쏟아져 나오고 그 창작물 하나하나에 모두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한다. 그 글을 통해 공감을 하고, 생각의 폭을 넓힌다.

(* 요청에 의해 이 글의 집필자는 단체명으로 대신합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저녁, 각자의 책을 가지고 모여 앉는다. 각자의 불타는 금요일은 잠시 미룬다. 책을 찾거나 추천을 받거나, 책표지를 들춰보는 것은 흔한 일일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책을 모두 읽고, 내용을 곱씹어 자신의 생각을 입힌다. 소소한 운명의 책을 만나기 위해 서점이나 도서관을 방문하는 이, 틈이 나는 대로 페이지를 만지작거리는 이, 연필을 들고 떠오른 생각을 옮겨 적는 이, 모임에 함께하는 사람 모두 다른 제목이 적힌 책 한 권을 들고 서로 얼굴을 맞대 마주 앉는다. 그리고는 떠들어댄다. 그 책이 최고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책을 읽고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 떠들고 싶은 그 어떤 것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이 글을 쓰며 왜 우리는 최고의 책(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만 추구하지 않는지, 그 떠들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힘을 만들어내는지 말하고 싶다.

1. 책 시장에 상업화가 침투했다.

“상업화는 나쁜 것일까?” 우리는 질문했다. ‘책의 상업화’를 떠올리면 많은 생각이 스친다.
출판업자를 보호하고, 정당한 책 소비를 위해 시행되는 우리나라의 도서정가제도는 우리와 같은 소비자의 불편도 불편이지만, 신진 작가들이 책을 출판하기 어려워진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종이책을 내고 싶은 작가들은 문턱에 가로막히고, 우리 소비자들은 그 광경을 그저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프랑스는 출판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도서를 할인할 수 있도록 한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책을 구매하는 문턱이 낮아지며, 그들은 관심 있는 책을 단시간에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읽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책을 읽는 습관은 책의 가격과 그다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행하는 책이 휘몰아치고, 비슷한 내용의 책이 상당수를 차지해 소비자의 시야를 흐리게 한다면 그것은 책을 읽는 습관에 있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다른 모든 영역과 마찬가지로 도서 생태계에도 상업 요소들이 유입되는 것은 당연하기에, 책시장의 출판사와 작가는 물론 소비자 또한 이 생태계를 유심히 지켜봐야 할 존재이다. 대부분 소비자는 출판사가 새로운 책을 기획하고, 획기적인 책을 만드는 모험을 해주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도서정가제가 큰 장애물로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물론 기본에 충실한 짜임새 있는 책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또 다른 ‘어떤’ 작가와, ‘어떤’ 내용을 기다린다. 하지만 출판사는 그 모험 뒤의 ‘재고’가 두렵다. 특히 ‘악성 재고’가 많이 발생하면 출판사에서 금전적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규모 출판사라면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서점에 한 번이라도 가서 방대한 양의 책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이 책들이 다 안 팔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팔리지 않는 책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거지?’라고 말이다.
또 다른 의견은 ‘굿즈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책을 구매하면 그 책과 관련 있는 기념이 될 만한 물품이 따라온다. 잡지에 붙여주던 사은품이 발전한 형태인 현재의 ‘굿즈’ 말이다. 초창기에는 정말 구매 욕구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만한 표지가 인쇄된 손거울, 책갈피 정도였다면, 요즘은 굿즈 때문에 책을 구매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훌륭한 퀄리티가 느껴진다. 그 종류도 상당히 다양해져 허밍버드 모빌, 심지어 커피 원두까지 도서 굿즈로 나서 책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어차피 책을 사야 한다면 예쁘고, 아기자기한 굿즈를 함께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그런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굿즈들의 대부분은 소비자가 어떠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되는 시스템이다. 굿즈를 받으려면 가지고 싶지 않은 불필요한 책을 구매하거나, 가지고 싶은 책이더라도 기준 금액 이상을 채우기 위해 소비를 추가해야 한다. 책은 굿즈의 사은품이 되어 책장을 예쁘게 장식하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의견이 오가며 다시 우리가 처음에 했던 질문으로 돌아왔다. ‘상업화는 나쁜 것일까?’ 우리가 도서 시장에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상업화를 아예 없애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제한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지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상의 추천도서들이 자본의 추천인지, 정말 이를 감명 깊게 읽은 누군가의 추천인지 알 수 없다. 주요 영화들이 스크린을 독점하여 선택의 폭을 제한한다는 영화계의 문제가 비단 영화계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서점에 가면 어느 출입문으로 들어가든 가장 먼저 보이는 책이, 선 자리에서 후루룩 넘길 수 있는 흥미 위주의 시선 끌기용 책이라면, 그 책을 정말 인기도서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염려는 스스로 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오는 취향의 고착화도 있지만, 그에 앞서 책을 선정하는 선택권 자체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데 있다. 소위 다른 ‘전문가’가 정한 잘 팔릴 것 같은 책만 손쉽게 접할 수 있다든지, 흥미 위주의 비슷한 책들이 표지만 바뀌어 관상용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2. 목적 지향적 독서에 대하여

우리가 내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책을 읽는 목적 자체보다 ‘책 읽는 목적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학입시를 위해 12년간을 준비한다. 초등교육 때에는 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독후감 등을 통해 자기 생각, 느낀 점을 정리하도록 했다. 하지만 국어 시간이 시작되면 그 생각과 느낀 점이 암기로 바뀌었다. 시나 문학작품을 읽으며 끊임없이 밑줄을 치고, 분명 우리의 한글인데 해석을 달아 외워야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작가가 정말 이 글을 쓰며, 이 부분에서 ‘임에 대한 그리움’을 사무치게 느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가능하지 못했을 뿐더러 시간이 지나니 그마저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시험용이 아닌 책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게 하거나, 청소년의 권장 도서도 어른이 모두 정해놓은 것이라는 사실 또한 개의치 않아졌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시험용 지문으로 잘린 반쪽짜리 문학작품을 해석하여 정답을 맞히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작가가 의도한 바가 명확히 정해져 있으며, 그 정답이 아니면 틀린 생각이라고 주입하지만, 정답이 없는 책에서 재미를 느낄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같은 책을 읽고도 이를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속도는 아이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독서 교육은 이 차이를 기다려주거나 이해해 주지 않는다. 책을 흥미롭게 읽으려면 스스로 책을 고르는 과정과 읽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즉, 독서에도 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책을 읽고, 그 책을 통해 나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한다. 기본적으로 내가 왜 책을 읽고 싶은지, 아니면 이 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어떤 정보가 옳은 정보인지, 거짓된 정보에 현혹되어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으로 책을 읽을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하고, 배워야 할 지식은 존재한다. 하지만 목적을 얻기 위해 편리성의 기준으로 매체를 정하는 것보단, 논리적으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독서를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책을 읽으려 하는지, 어떤 내용을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은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은지 생각하는 재미 또한 우리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된다. 그러려면 많은 책을 접하고, 포기하고, 놓았다 다시 쥐어보는 경험을 통해 책을 위한 체력을 길러야 한다.

3. 관 주도의 독서보단 관 지원의 독서

70년대나 80년대에는 금지 도서가 있었다. 작가의 사회적인 성향이나 책의 주제가 기준에 어긋나면 출판에 제한을 두는 형식이다. 지금은 독립출판이나 책의 여러 형태들로 인해 모든 책을 규정하고 제한하기에 어려움이 있고,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는 시기라 그 시대의 풍경을상상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관에서 민간의 독서를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달라졌다. 기준을 정해 그 에 어긋나는 책은 제한하고, 특정 매체만 허용하는 관의 모습에서 벗어나, 개인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위해 모임을 만들거나 여러 독서 취향을 나누기 위한 행동을 지원한다. 독서의 전반적인 흐름으로 보았을 때, 굉장히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는 예전부터 도서관에서 조용히, 발걸음 소리도 용납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였다. 물론 지금도 그러한 취향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이젠 혼자 하는 독서는 ‘공감’의 재미가 없다. 그런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도 물론이지만, 부가적인 장소와 자원이 필요한데, 그런 모임들의 걱정을 덜어주며 또 다른 커뮤니티 형성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함께 공감하는 독서’의 의미가 더욱 대두되는 요즘, 우리의 공감의 재미를 응원하고, 독서와 관련된 다른 문화 경험의 기회도 연계하여 폭을 넓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 여럿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여럿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사실 각자 다르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일상이 너무 무료해서, 집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는 시간조차 치유가 필요해서, 다른 잡념을 잊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해서, 내 전문지식의 향상을 위하여 등등, 하지만 우리가 모여서 책을 나누는 이유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희열감’이다. 단순하게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 책을 읽는 과정에서 어떤 감정이 생겨나는 것을 공유하는 것뿐인데, 우리는 이러한 작은 과정에서 혼자서만 느끼던 감정을 배출하고, 다른 사람이 그에 공감해주었을 때, 비로소 희열감을 느낀다.

또한, 반대로 그 감정의 코드가 아무하고도 안 맞을 때도 있다. 분명 같은 주제로 나는 하나의 생각 밖에 떠올리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니 2차, 3차, 4차적인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하며, 또 다른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책 속의 말이 정말 다 맞는 것인지, 하나의 가설인지 함께 의심해보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생존력과 치유, 안목과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모여 우리의 ‘애정’이 된다.
우리는 흔히 서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경험과 감정이 궁금해진다. 일상의 경험뿐만 아니라 독서는 그 이상의 소소한 정보들, 혹은 깊은 이야기를 쉽게 꺼내놓도록 하는 힘이 있다. 주인공의 연애 이야기, 가족 이야기가 나의 그것과 비슷해 마음이 가고, 그 이야기를 여럿이 터놓게 되면 공감과 애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감의 깊이는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후련하게 하기도 한다.

글은 휘발성이 낮다. 명작인 책은 언제 보아도 공감되고, 마음이 움직인다. 훌륭한 사용법을 익히지 않아도 되고, 방식이 촌스럽지 않을까 시각적인 이미지를 걱정할 필요도 줄어든다. 그저 글씨를 쓰는 단순한 행위로 이루어진다. 글은 일차적인 시작점이다.
글을 읽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큰 사건 이후에 그 시대를 공감하는 글이 쏟아져 나오고 그 창작물 하나하나에 모두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한다. 그 글을 통해 공감을 하고, 생각의 폭을 넓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