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삶 속 문화가 핀다 문화가 핀다

안녕히 잘들 놀고 계십니까?

양재혁/ 컬쳐커뮤니티 동네 대표,′19.10月

놀이는 수단과 목적으로 나뉘는 행위가 될 수 없다.

이미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더 큰 행위이다. 놀이는 그러므로 놀이이다.

놀이는 수단과 목적으로 나뉘는 행위가 될 수 없다. 이미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더 큰 행위이다. 놀이는 그러므로 놀이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는 중앙시장으로 넘어가는 38번지의 언덕과 그 언덕 옆으로 늘어진 서적산이 있었다. 사실 진짜 이름이 서적산인지도 알 수 없다. 동네 형들이 그렇게 불렀으니 그러려니 기억할 뿐, 정확한 지명 따윈 중요하지도 않았다.

산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자태의 서적산은 겨울이 오면 꽤나 가파르고 위험한 눈썰매장이 되었는데, 눈이 내리면 동네 모든 또래들이 자신의 아빠가 폐목재로 만들어주신 썰매를 하나씩 들고 나타나 누구의 썰매가 가장 잘 미끄러지는지 내기를 하곤 하였다. 그 중 우리 아빠의 썰매는 특출한 손재주와 더불어 썰매 나무 날 가운데 굵은 철사로 한 줄을 덧대어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히게 마찰력을 줄여서 스피드를 즐기게 설계하셨다. 동네 또래들은 우리 아빠의 썰매를 늘 탐을 냈었다. 가끔 그걸 팔아 용돈으로 쓰기도 했을 정도니 말이다.

그렇게 자랑스럽던 아빠의 썰매가 나를 스피드 왕으로 만들어 준 날은 여지없이 온 몸이 눈과 땀으로 흠뻑 젖었고,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은 젖은 옷 속으로 파고들며 시나브로 고뿔의 전조로 이어지곤 했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불을 피워야지! (지나친 불놀이는 잘못된 화를 불러옵니다!)

서적산의 한쪽 귀퉁이에는 쓰레기의 중간 경유지가 있었다. 7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그런 곳에는 항상 ‘넝마’라 불리던 걸인들이 기거하였고, 주거가 불분명한 그들은 땅 속에 임시 토굴을 지어 계절을 나곤 했다. 서적산 역시 그러한 임시 토굴이 하나 있었는데, 겨울만 되면 그곳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했던 주인장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비어있던 토굴은 객인, 우리가 점거하였다. 그 곳에선 아빠의 주머니에서 슬쩍해 온 성냥과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낸 태울 재료들만 있으면 쉽게 불을 피울 수 있었다. 그렇게 몸을 녹이고 젖은 옷가지와 양말을 널어 말리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고, 지금 생각해도 안녕히 잘 논 완벽한 하루의 피날레였다.

그러나... 대충 눈치 채셨겠지만, 그 비밀스럽고 부모님의 눈 밖으로 숨어들 수 있었던 최적의 공간에서 어디 불만 피울 아이들인가? 어른들의 흉내도 내어보아야지! 부모님의 물건에 손을 대는 건 비단 성냥뿐만이 아니었다. 형사 집의 아들 내미는 아버지가 압수해온 불온서적을 들고 오고, 또 누군가는 집에 남겨진 소주 한 병을, 또 다른 친구는 고구마와 김치를, 그렇게 만들어진 어른 체험은 사소한 비밀들로 연결되며 또래의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곤 하였다.

비밀기지 만들기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 유년의 기억은 비밀스러운 공간과 함께한다. 그것은 아마도 유년의 시간 대부분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배워야만 했던 사회화의 과정이었고, 그 속에서 일종의 해방구로 작동했던 비밀스러운 공간들만은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비밀기지 만들기’는 전자에 적어놓은 것처럼 잊고 지내왔던 내 유년의 비밀스러운 유쾌함을 하나씩 꺼내게 만들었다. 이 책의 저자인 ‘오가타 다카히로’는 이름도 생소한 ‘일본 기지학회’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이다.

뭔가 근사할 것만 같은 제목의 이 책은 실은 지극히 단순하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비밀스러운 공간들의 사례와 그것을 제작하는 방식,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 선정들에 대한 다량의 삽화가 포함된 일률적 소개이다. 혹시나 복잡한 사유의 체계를 기대하고 이 책을 접한다면 처음 몇 장을 넘기는 순간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만만하지 않다.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81p)는 문장으로 해석의 여지를 독자에게 오롯이 책임지어 버린다. 이런 영악함이라니!

수단과 목적으로 길들여진 놀이

우리는 흔히 놀이를 행하는 것에 있어 수단과 목적으로 나누어 구분한다. 예를 들자면 ‘신체활동놀이’를 수단삼아 ‘건강의 유지’를 목적으로, ‘예술놀이’를 수단삼아 ‘창의력과 상상력 확장’을 목적으로 하듯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서 목적은 예시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목적이 정해진 행위들은 대부분 사회가 원하는 방향성을 향하게 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경험이나 다양성들의 가치를 흐리게 만들어, 결국 사회가 제시해놓은 표준화를 따르게 만드는 행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놀이들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표준화 되어가고 있다. 동네마다, 지역마다 다양하던 놀이들은 발전적 공유라는 미명하에 룰과 방식이 통합되고 데이터로 구축되어 교과목으로, 사학으로 변질되었다. 아이들의 신체활동 유지를 위해 교과목에 포함된 줄넘기는 이미 돈벌이 잘되는 학원으로 성장(?)하였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운다는 예술 놀이들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경제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굳이 지면을 할애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정말 놀이는 수단과 목적으로 나뉘어져 있는가? 아기 고양이들이 서로를 뒹굴며 물고 뜯으면서 ‘내가 다음에 쥐를 잘 사냥하기 위해서는 이 놀이가 꼭 필요해!’라는 생각으로 놀고 있을까? 꼭꼭 숨어버린 친구를 찾으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석구석 살펴보고 있는 아이의 두 눈은 ‘나에게는 공간을 해석하는 미시적 시선을 키우기 위해 숨바꼭질이 필요해!’라는 생각으로 반짝이는 것일까? 아니다! 이와 같은 숙련들은 놀이의 과정 속에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경험이지 우리가 그것을 목적으로 놀이를 행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놀이는 수단과 목적으로 나뉘는 행위가 될 수 없다. 이미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더 큰 행위이다. 놀이는 그러므로 놀이이다.

표준화의 그늘 속에서 주체를 잃어버린 사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표준화의 영향력에 발가벗겨져 살고 있다.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의 경험과 기호가 누적되어있는 ‘맛’, 그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감각은 오늘날 과연 오롯이 나의 주체가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당신의 단골 맛집은 요식업계의 대부 백종원 대표가 제시해주고 있지는 않은가? 백종원 대표의 방송에 소개된 음식점 문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은 충분히 이러한 의심을 합리화시킨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감각 중에서 가장 보수적(정치적 언어로서의 보수가 아님을 적극적으로 밝힌다.)이라는 미각조차도 맛을 느끼는 주체의 것이라 확언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비밀기지 만들기’에서 제시되는 수많은 비밀기지들은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놀이 공간이다. 때문에 비밀기지를 만들어가는 누군가의 경험과 성격, 기호와 필요가 곁들여진 지극히 개인적이며, 다양한 구축 주체의 판단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러므로 이 공간 속에서 ‘표준’은 존재하지 못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이러한 공간에서 안정을 느낀다. 다시 말하자면 공동체의 표준화가 개입되지 못하는 공간 속에서 오롯이 자신의 주체를 확인하는 잉여의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조금 더 유추해보자면 공동체의 원활한 유지를 위해 진행되는 표준화의 과정은, 정작 구성원인 각 개인에게 과잉된 피로로 누적된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주체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표준화에 대한 저항’일지도 모른다.

안녕히 잘들 놀고 계십니까?

공동체를 살아가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희로애락도 이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다만 아쉬운 것은 표준화가 가속되어가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는 표피적이고 계약적인 관계가 많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관계 속에서 우리의 주체는 쉽게 흔들리고 상처받는다. 때문에 유행처럼 번지는 ‘힐링’이라는 자기 치유의 최면이 달리 보면 주체를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라 표현하는 것을 과장된 해석이라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겐 그 어느 때보다도 비밀스러운 기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일률적인 가치만을 강요받는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다양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공간, 흥분되고 짜릿한 음모(陰謀)의 즐거움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 손가락질을 개의치 않고 편히 치기어린 행위를 나눌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 말이다.

만약 이와 같은 공간에 마음이 맞는 동무를 초청하여 함께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만들어지는 관계들은 더욱 끈끈하고 친밀한 관계로 발전될 수 있으리라. 그런 관계들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의 입가에 항상 장착되어진 ‘비즈니스 스마일’이 필요 없는 관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여러분의 휴식은 어떠한가?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위해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위를 애써 휴식이라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인싸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며 따라 하기 바쁘지는 않은가? 정말 안녕히 잘들 놀고 계시는가?

이렇게 수많은 질문들의 나열 속에서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책의 제목처럼 각자의 마음 속에 숨겨놓은 비밀기지가 아닐까.

*이미지 출처: 출판사 propaganda 제공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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