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사람과 현장이 이곳에 있다 현장이 있다

우리 마을에는 텃밭콘서트가 있다

이 건 상/ 홍천 동면마을 교육공동체 새끼줄,′19.10月

어떤 사색가는 ‘놓여져 이어짐’을 ‘놓잇’ 즉 ‘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땅에 놓여져 이어져 있는 우리는 놀고 있는 중입니다.

어떤 사색가는 ‘놓여져 이어짐’을 ‘놓잇’ 즉 ‘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땅에 놓여져 이어져 있는 우리는 놀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도 텃밭에 나가 봅니다.

옥수수, 상추, 고추, 토마토, 고구마가 땅, 하늘, 바람 그리고 잡초들과 어우러져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말없이 아름답습니다.

홍천군 동면에는 텃밭콘서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2018년부터 시작하였으니 올해로 두 번째입니다. 그 시작은 마을교육공동체
<새끼줄>에서 진행하는 텃밭 수업에서 아이들이 직접 심고 가꾼 텃밭 식물들에게 잘 자라기를 기원하며 노래를 불러 주자는 취지로 기획 하였는데, 진행이 될수록 아기자기한 생각들이 모아지면서 마을 행사로 커졌습니다.
첫 해에는 아이들이 직접 개사하여 만든 텃밭송을 시작으로, 아빠와 딸의 오카리나 연주, 선생님과 학생의 플롯 연주, 마을선생님의 음악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이 직접 작사·작곡한 동요들, 드럼과 전자 기타의 어설픈 사운드를 자랑하는 밴드 공연을 끝으로,

텃밭 앞의 공터에서 시작된 제1회 텃밭콘서트는 막을 내렸습니다. 미숙하였지만, 어쩌면 미숙하여서 모두 즐거웠습니다.

올해 두 번째를 맞이한 텃밭콘서트는 전년도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더욱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장소는 동면 사람이면 누구나 익숙한 면사무소 앞마당이었습니다. 귀촌한 오페라 연출가인 이해동님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동동가족합창단>, 속초초등학교 6학년 학생으로 구성된 아카펠라 동아리 <컨츄리 앨리스>, 학생수 부족으로 해마다 폐교가 논의되는 좌운분교 학생들과 선생님의 리코더 연주,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어진 아빠와 딸의 오카리나 연주, 아이들이 직접 작사·작곡한 동요, 동네 청년으로 이루어진 젊은 밴드 <동네문화살롱> 등 풍성한 무대였습니다.
그 중 인상 깊은 몇 가지를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라라페밀리의 얼렁뚱땅쇼

마임이스트 김흥남, 이새롬 가족은 2년 전에 우리 마을로 이사 왔습니다. 햇살이 화창하고, 바람이 포근하게 불던 어느 날, 사랑이 많은(?) 두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고, 태명을 ‘포근이’라고 지었습니다. 엄마 배속에서 무럭무럭 자란 포근이는 열 달 뒤 세상에 태어났고, 마을 입구에 축하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김흥남, 이새롬님의 둘째 포근이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마을 분들은 이색 현수막을 보고 마음속으로는 축하하였지만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김흥남, 이새롬, 포근이의 정체에 대하여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아무도 못 알아보는 유명인이 되었답니다.
텃밭콘서트의 시작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포근이의 마을 신고식이었습니다. 이 땅에 첫발 내딛는 생명과 저 땅으로 걸어가고 있는 생명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경쾌한 음악 속에 흥남씨가 유쾌한 마임극을 펼치고, 첫째 라엘이는 커다란 종이에 라라 가족의 그림을 그리면서 드로잉쇼가 펼쳐졌습니다. 얼렁뚱땅쇼가 무르익을 무렵, 엄마 등에 업혀있던 포근이 라임이가 꿀벌 옷을 입고, 아빠의 손에 안겨 객석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답니다. 동네 어르신들의 박수와 웃음소리가 넘쳐났고, 어떤 할머니께서는 무대로 직접 나오셔서 바지춤에 넣어두셨던 네 겹으로 접힌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 갓난아기의 옷자락에 넣어 주셨답니다.



마을 어르신의 무대

김종기 할머니는 노인회관에서 인정하는 소리꾼이십니다. 할머니의 애창곡은 ‘여옥의 노래’인데, 젊은 나이에 혼인하자마자 입대한 남편을 그리워하며 옆집 언니가 알려줘서 불렀던 노래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제목도 모르고 부르셨던 노래였는데 콘서트 준비과정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1960년대 영화 ‘산유화’에 삽입된 영화의 주제곡임을 알았습니다. 노래의 제목을 이제서 알게 되신거죠.

여옥의 노래

불러도 대답 없는 님의 모습 찾아서 외로이 가는 길에 낙엽이 날립니다.

들국화 송이송이 그리운 마음 사람은 말 없구나 어디매 계시온지

거니는 발자욱 자욱마다 넘치는 이 마음 그리움을 내 어이 전하리까 …

(이하 생략)



노래는 반주 없이 목소리만으로 부르셨습니다. 가을의 한들 바람처럼 가녀렸지만 힘이 있었고, 연륜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울림에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활용밴드

재활용밴드는 작년 1회 텃밭콘서트를 구상하던 중 이왕이면 밴드 공연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여 호떡집에 불 난 듯이 급하게 만든 밴드입니다. 마을 드럼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은성씨가 드럼을, 평소에도 연주를 즐겨하는 먹방골 강형이 베이스를 맡았고, 새끼줄 사무국장의 남편은 노래방에서 쫌 놀아봤다는 이유로 보컬로 추천되었으며, 영문도 모르고 강형집에 진돗개 새끼 두 마리를 분양 받으러 온 윤호씨는 교회에서 통기타를 쳐봤다는 이유로 실력 불문하고 기타를 떠맡으며 4인조 밴드가 탄생하였습니다.

밴드의 이름은 이번 한번만 공연하고 즐겁게 회식하자는 취지로 ‘일회용밴드’라고 하였는데, 이후 마을의 젊은 청년, 프로페셔널 기타리스트 윤두형님이 합류하고, 음악을 들으면 맥주가 당기고, 맥주를 마시면 음악이 나오는 봄바람님이 나도 끼워 달라면서 6인조가 되었고, 은근슬쩍 유명세를 탄 일회용밴드는 여기저기재활용이 되며 ‘재활용밴드’로 거듭났습니다.
우리가 모이는 곳은 중고 밴드악기로 세팅 되어 있는 강형집 창고인데, 그곳을 ‘늙은말스튜디오’라 부르며, 맥주와 함께 밴드 연습도 하고, 때로는 어부인들의 노래 반주도 하고, 술이 얼큰해지면 밤새 노래를 부르면서 놉니다.



작은 곳에서 빛나는 사람들

텃밭콘서트는 아이들과 마을 분들이 출연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축제입니다. 그래서 잘 드러나지 않는 작은 곳곳에 빛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연의 연출은 아이디어 뱅크인 마임이스트 흥남씨가, 무대감독은 한옥 목수인 상원씨가, 촬영감독은 마을방송국을 이끌고 있는 윤호씨가, 음악감독은 기타리스트 두형씨가, 사회는 연극인 소리씨가, 기획은 공연기획 경험이 있는 효숙씨가 힘을 보탰으며, 안전도우미, 상차림, 사진 촬영, 의전까지 모두 마을 사람들이 한 자리씩 역할을 맡아 콘서트를 빛냈습니다.
공연 장소, 의자 등 여러 물품은 면사무소에서 기꺼이 내주셨고, 공연장 한편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제공해주신 팝콘 기계와 재료로 초등 친구들은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묵묵히 팝콘을 튀겨내어 동네 분들께 골고루 나누어 드렸고, 백 여개의 객석 의자는 아이들의 손길로 하나하나 옮겨졌으며, 중학교 마을 방송국 팀원 12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콘서트의 현장을 촬영하여 실황중계를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일손이 필요할 때마다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동네 삼촌 이모들, 목소리 높여 응원해주시고 박수쳐주시는 동네 어르신들, 텃밭콘서트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모두가 손을 보탰고, 모두가 행복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놀고 싶다.

우리는 공간 속에 ‘놓여져’ 있고, 다른 이들과 ‘이어져’ 있습니다. 놓여져 있음을 존재(存在)라고도 하고, 이어져 있음을 관계(關係)라고도 합니다. 어떤 사색가는 ‘놓여져 이어짐’을 ‘놓잇’ 즉 ‘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땅에 놓여져 이어져 있는 우리는 놀고 있는 중입니다.
‘어떻게 놀고 있는가’는 ‘어떻게 사는가’를 말해 줍니다.
그러나 생각이 부풀려지고 과도한 목표가 생겨서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 놀이는 일이 되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고 건강과 관계를 해칩니다.
‘우리의 놀이가 빠른가, 아니면 적당한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되묻습니다. 우리 마을의 텃밭콘서트는 급하지 않게 이어졌으면, 그리고 재미있게 이어졌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오늘도 텃밭에 나가봅니다. 자기의 속도와 자기의 모습으로 놓여져 이어 있는 텃밭의 생명들이 눈부십니다.

*사진: 이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