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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를 통한 관계성의 회복, 지역에서 축제가 존재하는 방식 - 은평누리축제의 기억들

염 신 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前 은평주민, ′19.10月

적잖은 은평의 시민들에게 누리축제는 단지 구청의 행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걱정해야하는 가을잔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적잖은 은평의 시민들에게 누리축제는 단지 구청의 행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걱정해야하는 가을잔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논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인간은 웬만한 악조건이 주어져도 어떻게든 놀이를 만들어낸다. 사반세기 전, 강원도 전방에서 아직까지도 구타와 가혹행위가 꽤 많이 남아있던 군대 생활을 할 때에 그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험악하고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약간의 틈만 나면 병사들이 뭔가 놀이꺼리를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즐겼다.뭐 대부분 노름에 가까운 놀이들이었지만, 숨 쉴 틈만 생기면 “놀고 있는” 모습들에 가끔 인간에 대한 경이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인간의 문화를 발전의 시각으로 보는 입장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인간의 문화는 놀이와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놀이는 인류의 역사 이전부터 언제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생산이 없는 행위들, 먹고 살기 위함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한 행위들, 아니 아주 넓게 보자면 이것도 인간의 타고난 본능인 생명유지와 종족 번식을 위한 일련의 과정과 무관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인간이 삶의 양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추적하다보면 발견되는 이 불가해한 무 쓸모의 즐거움이 생존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상상하고 규명해가는 것은 사실 문화연구와 문화인류학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

인간이 갖고 있는 놀이 본능의 집단적 발현은 축제라는 형태로 양식화 되었다. 삶의 총체성이 좀 더 긴밀하게 작동되고 있던 시기, 그러니까 인간의 노동과 일상이 지금처럼 분리되기 이전의 놀이와 축제는 삶의 바로 옆에 존재했다. 노동이 삶과 분리되지 않은 세계에서의 축제에는 제의적 신성함과 본능적 쾌락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 시절에 인간이 스스로의 세계를 설명했던 서사체계인 신화에서 인간들은 인격화된 신성에 자신들의 욕망을 담았고 이것을 기원하고 재현하는 장으로 축제를 만들었다.
인간은 스스로 안에서 발현된 감정을 신화를 통해 표현했고 그 신화를 축제로 재현했다. 구조주의 문화연구자 레비스트로스가 신화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문화를 설명하려 했던 것은 그가 제시한 신화소(mythmes, 신화의 요소들을 구조주의적으로 분석하여 최소단위의 의미로 나눠놓은 것)가 집단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문화적 담론체계에서 반복되는 구조라고 봤기 때문인데, 축제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집단의 무의식이 지향하는 어떤 소망이나 기원과 결코 동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축제를 만나 즐겁고, 해방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그 축제의 양식이나 내용이 내면에 있는, 어떤 의식 저편의 억압된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잘 된 축제는 규율화 된 사회의 일상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일탈을 잠시나마 체험하게 해주고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조건들로부터 개인을 일시적으로 해방시킨다. 노동조건이 극도로 떨어지는 중남미 국가들에 강렬한 일탈의 축제들이 존재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해석되곤 한다. 카니발이 벌어지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열대의 날씨에 사탕수수밭에서 장시간 고된 노동을 하는 비루한 ‘내’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며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내’가 된다.

근대 이후 한국 사회는 축제가 부족한 사회였다.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고 난 이후의 한국은 노동집약적 생산성을 중심으로 한 산업화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분업화된 노동 시스템에 최적화되어 작동하는 근면성실하고 매우 규율화 된 육체와 정신을 요구했다. 산업화 사회의 사업장들이 노동자들에게 조회와 규격화 된 체조를 권장했다는 것은 단지 일제강점기의 잔재와 군사주의 문화로만 설명할 수 없다. 심신일원론적 관점에서 그 시절의 국가 사회는 육체의 통제를 통해 장시간의 노동으로 인한 불평불만을 최소화하며 감당할 수 있는 인격을 요구했던 셈이다. 여기에 일체의 흥청망청이 개입될 여지는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과거로부터 존재했던 축제는 억압되었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잘 보이지 않는, 하지만 개개인에게는 거대한 힘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권위에 대해 경의를 바치는 형태로 제시된 대규모 “행사”였다. 일사불란한 마스게임과 질서정연한 행렬, 그것을 높은 단상에서 내려다보는 (대중 입장에서는 너무 멀리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위정자. 이미 그런 시대로부터 한참 멀리 왔음에도 우리의 무의식 속에 통치기구가 주도하는 관제 행사에 대한 불편함이 남아있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문화가 그런 문화적 관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산업화 초창기의 사회적 조건이 자연발생적 축제를 관제 행사로 대체했다면 1970년대 이후부터는 새로운 양식이 축제의 자리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텔레비전 등 매스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대리된 쾌락의 이벤트가 등장한 것이다. 영상매체의 엔터테인먼트는 우리 문화생활의 대부분을 우리 스스로 노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며 대리만족하게 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1990년대부터 등장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매우 노골적으로 놀이의 외주화, 대리만족을 부추겨 왔다.
우리도 이제 스스로 놀아보자는 관점에서 시작한 축제에 대한 고민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초창기 이런 흐름이 등장한 것은 지방자치제도 실시에 따른 지역분권화, 욕구의 다양화, 일상의 공동체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자구적 노력의 필요성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화를 통해 축적된 경제 성장이 만든 사회적 여력이 스스로 놀고 싶은 대중들을 다시 움직이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은평누리축제도 그런 자생적인 놀이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된 축제이다.


우리도 이제 스스로 놀아보자는 관점에서 시작한 축제에 대한 고민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초창기 이런 흐름이 등장한 것은 지방자치제도 실시에 따른 지역분권화, 욕구의 다양화, 일상의 공동체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자구적 노력의 필요성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화를 통해 축적된 경제 성장이 만든 사회적 여력이 스스로 놀고 싶은 대중들을 다시 움직이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은평누리축제도 그런 자생적인 놀이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된 축제이다.

올해 10회째 열린 누리축제는 공식적으로 2010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지역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끼리라도 놀고 싶었던 자발적 집단들의 작은 모임과 소규모 축제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이런 욕구의 출발점은 결핍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970년대 후반 서대문구로부터 분리된 은평구는 서울시 서북쪽 맨 끝에 있다. 분리된 행정구역이 유사하게 갖는 공통점인데 인구가 과밀한 것에 비해 문화 시설이나 가시적인 자원이 매우 부족한 지역이다. 게다가 서울 및 수도권의 발전이 주로 한강 이남에 치우쳤고 특히 은평구에서 연결된 지역인 고양시와 파주시는 전통적으로 군사지역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은평구도 역시 그런 연장선에서 고립감이 매우 강하게 작동해온 지역이다.
은평구는 서울에서 거의 가장 집을 싸게 구할 수 있는 동네이며 비교적 주거환경을 해치는 시설이 적다는 점, 북한산 자락에 자리하여 자연환경이 나쁘지 않다는 점에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문화예술인들이나 NGO활동가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게 특징적이다. 실제 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인 활동 증명 기록에 따르면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다섯 번째로 예술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인적 문화자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지역 내 문화예술 활동의 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아왔기 때문에 지역민들에게는 문화 불모지라는 이미지가 오랫동안 자리잡아왔다. 거주 환경으로 보자면 평지가 많지 않은 편이라 나중에 인공적 단지로 외각에 조성된 은평뉴타운 이전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거의 발달하지 않았었고 노후화된 단독주택과 빌라, 다세대 주택이 언덕을 끼고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다. 덕분에 서울에서는 점점 드물어져 가는 옛날식 골목이 무척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다.


은평누리축제의 시초는 이런 동네에 들어와 살게 된 지역의 보통 사람들의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집값이 싸고 일터인 마포에서 멀지 않아서 선택한 동네였어요.” 은평구 역촌동에서 수년째 독립서점을 운영 중인 사장님의 얘기다. 본래 출판인으로 살아왔던 사장님은 은평구의 매력을 ‘그래도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꼽았다. “동네에서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을에서 영화제를 주도했던 독립다큐멘터리영화 감독의 얘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지역을 선택한 것은 어떤 문화적 욕구나 활동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이유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을에서 함께 노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시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은평시민신문을 중심으로 하여 지역의 시민사회가 비교적 활성화되어있다는 점도 이들이 자신들의 집이 아닌 마을의 이웃과 접점을 찾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서울이 초거대도시라는 특성상 지역사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몇몇 관성화 된 집단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해 은평구는 경제적 풍요로움이 부족한 대신, 가진 것은 많지 않기 때문에 더불어 살아야한다는 공동체 정서가 드물게 남아있는 곳이란 점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우리끼리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는 모임으로 시작했어요.” 은평에서의 문화적 활동의 시작은 당초에 공공기관의 지원이나 사업에 의존해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동네에서 우연히 모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관계 속에서 포도송이처럼 불어난 모임은 처음에 스스로 모여 자기들끼리 노는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보육을 중심으로 한 어머니들의 공동체가 결합되었고 지역의 생태를 고민하는 모임도 끼어들었다. 어떤 의도나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좋아서 모이기 시작한 모임은 지역에서 프리마켓 형태의 작은 축제를 만들었다. 초창기에는 갈현동에 있는 길마어린이공원과 그 주변이 중심이었다. 그러다가 전임 김우영 구청장 시절인 2010년, 모임들에 속해 있던 지역의 구성원들이 구에 이런 자발적인 잔치들을 주민주도형 축제로 성장시킬 것을 요청하게 된다. 이것이 은평누리축제의 시작이다.

출발이 이렇다보니 다른 지자체 축제와는 상당히 다른 조직구조와 외양을 가지고 있다. 축제의 기획부터 진행까지 시민들의 자생적인 역량으로 치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조직의 측면에서 보면 시민들이 해마다 축제조직위원회를 꾸리고, 구청은 이에 대해 간섭 없는 지원을 하는 전통으로 하고 있으며 축제의 내용 역시 지역의 다양한 문화모임, 보육모임, 생태모임이 자신들이 준비한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은 연예인이 거의 안 오는 지역축제라는 매우 독특한 꼴을 하고 있었다.(폐막행사 정도에 초대 가수 한 명 정도 출연하는 게 전부이다.) 물론 이런 탓에 조금은 심심한 축제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있고, 시민들이 어떤 대가도 없이 거의 전적으로 축제를 준비하다보니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해마다 축제의 폐막 뒤풀이에 가면 “내년부터는 절대 축제 준비에 관여하지 않겠다.” 고 공언하는 시민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재미있게도 그분들이 그 다음해가 되면 지난해의 기억을 모두 망각한 듯 “올해는 축제 준비 시작 안 해요?” 하며 돌아온다는 것이다.

물론 시민주도 축제라는 이상향이 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10년이 흐르다보니 은평누리축제에 대한 지역 내의 고민도 꽤 늘어났고 복잡해졌다.

무엇보다 축제가 예전만큼 재미있지 않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지원도 적고 준비가 더 힘들었지만 우리끼리, 우리들의 힘으로 뭔가를 한다는 거 자체가 재미있었는데 솔직히 요즘은 너무 관성화 된 것 같고 관을 바라보며 일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가 덜해졌어요.” 특히 공식적인 구 대표축제로 자리 잡으면서 축제가 예전의 생생한 느낌보다는 뭔가 관의 행사 같은 느낌이 강해졌다는 불만이다. “축제에 나오는 이들만 나오고 새로운 얼굴들이 보이지 않아요.” 특히 젊은 세대가 공감하고 참여하는 분위기가 잘 조성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걱정도 많다. “뭔가 예전 같은 활기를 되찾으면서 좀 더 세련된 축제를 만들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축제가 이제 시작의 단계를 넘어 10년여의 시간적 축적이 있었음에도 질적 성장이 부족하다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다. 은평누리축제를 함께 했던 이들에게는 사실 주위에서의 칭찬이 반드시 자랑스럽지만은 않다는 걱정이 더 많다. 하지만 이것이 은평누리축제의 자랑이기도 하다. 여전히 미완성이고 부끄러운 구석도 많지만 적잖은 은평의 시민들에게 누리축제는 단지 구청의 행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걱정해야하는 가을잔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축제의 장소가 걱정이고 날씨가 걱정이고 프로그램이 걱정인데 그것이 구청관계자나 은평문화재단 관계자의 걱정이 아니란 얘기다. 은평은 시민 안에 축제를 통한 문화적 관계가 형성된 셈이다.

어떤 시대이건 놀이는 관계에서 출발한다. 은평에서 축제로 시작된 관계는 언제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지역의 시민성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우리의 지역에서의 삶의 개선과 피부에 와 닿는 민주주의 시작도 바로 이런 관계 속에서 시작된다. 은평누리축제를 통한 놀이의 실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이제 관계의 형성기를 지나 그 다음으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