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사람과 현장이 이곳에 있다 이곳에 있다

속초는 그래도 속초다

김도연 / 기획자 / 예술공간 영주맨션, ’19.7月

시인의 집 입구에 피어 있는 노란 나리꽃 세 송이가

소포의 내용물이 궁금한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시인의 집 입구에 피어 있는 노란 나리꽃 세 송이가 소포의 내용물이 궁금한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속초를 한자로 쓰면 묶을 속(束)에 풀 초(草)다. 묶을 속자는 약속할, 언약할 속자이기도 하다고 사전에 나온다. 풀은 거친 풀, 잡초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거친 풀이나 잡초를 묶는 곳, 그것들과 약속을 하는 곳이라고 해석을 하니 왠지 마음 한쪽에서 짠한 물살이 천천히 번져오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7번 국도를 타고 동해안을 거슬러 속초로 간다는 것은 그 풀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란 생각을 하곤 했다. 청호동 아바이마을, 쇠줄에 끌어당겨 청초호를 오가는 갯배, 실향민, 속초역. 투박한 함경도 사투리들을 묶어버린 곳, 그것 들과 언약을 한 곳…… 매번 조금씩 다른 일로 속초를 찾아가지만 내 마음 속의 속초는 언제나 그 바탕에 애틋한 정서가 담겨 있는 곳이다.

속초는 수복지구(收復地區)다. 휴전협정 이듬해인 1954년에 남한 땅이 되었다. 속초뿐만이 아니다. 강원도의 철원, 김화의 일부, 그리고 화천, 양구, 인제, 양양, 고성이 모두 그렇다. 38선이 그어진 뒤부터 북한 땅이었다가 한국전쟁 이후 남한 땅이 된 곳이 바로 수복지구다. 아…… 네 땅, 내 땅, 우리 땅을 가르느라 피어났던 피비린내는 잠시 묻어 두자. 전쟁 이전의 속초는 양양군 속초면 이었는데 전쟁 이후 함경도 실향민들이 북쪽의 고향과 가까운 곳에 대거 터를 잡으면서 급속도로 커져 지금의 속초시가 되었다. 그러니까 속초는 북한 땅이었던 속초 사람들과 피난 내려온 함경도 사람들의 애환이 한데 섞여서 새롭게 만들어진 도시인 것이다. 한때는 북한 사람이었다가 전쟁의 소용돌이 이후 남한 사람이 된 아바이, 어머이들이 모여서 사는 곳, 내게 있어 속초는 그 역사의 질곡을 속 깊은 곳에 감춘 채 쓰러졌다가도 일어나기를 되풀이하는 풀들의 땅이었다.

지난 시절 나는 이러저러한 일들로 꽤 자주 속초를 드나들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속초가 내 마음 속에 처음 자리를 잡은 것은 설악산 여행을 다녀 온 형이 마른오징어와 함께 사 온 관광사진첩 덕분이었다. 그 안에는 설악산과 속초의 명승지를 담은 천연색 사진들로 가득했는데 그 중 인상적인 것은 바랑을 짊어진 스님이 단풍 가득한 산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이었다. 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스님이 깊은 산속에 자리한 암자를 찾아가고 있다는 걸 사진 아래에 붙은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스님이 되어 사진첩 속을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는데 과연 방학이 끝나자 아껴둔 마른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친구들에게 진짜로 설악산을 여행하고 돌아온 것처럼 떠들 수 있게 되었다. 혹시라도 거짓말이 들통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지만 산골의 초등학교 아이들은 내가 들려준 설악산과 절, 스님, 바다 이야기에 거의 넋을 놓고 있었다. 나의 첫 속초 여행은 엉뚱하기 그지없는 거짓말로 시작되었는데 그게 속초와의 질긴 인연으로 엮어질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속초, 고성에서 갑작스런 연락이 온 것은 지난 사월 초순의 저녁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을 벌겋게 물들이는 건 다름 아닌 산불이었다. 설악산 미시령 아래 56번 도로변에서 발화된 불은 봄날의 강풍을 타고 빠른 속도로 속초 시내를 향해 번지고 있다는 보도였다. 미시령 아래에는 시를 쓰는 친구가 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인의 집은 불길에 휩싸였고 부부는 하늘로 휭휭 날아가는 불똥을 피해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안타까움과 안도가 어지럽게 교차되는 밤이었다. 화면 속의 불은 무시무시했다. 한 마디로 미친 불, 화마였다. 도로를 질주하고 집과 나무들을 일시에 삼켜버린 뒤 다시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다음 먹잇감을 찾아 탐욕스런 눈을 희번덕거렸다. 봄날의 동해안 강풍을 등에 업은 산불을 인력으로 잡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밤이어서 소방헬기가 뜰 수도 없는 상황인데 화마는 속초 시내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는 밤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설상가상 산불은 속초, 고성뿐만이 아니라 인제와 강릉에서도 발생했으니……

다음날 나는 속초로 향했다. 도로에는 전국에서 강원도로 향하는 소방차들로 북적거렸다. 인제를 지날 때 먼 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소양호에서 물을 푸는 소방헬기를 만났다. 다행히 강풍은 수그러든 상태였다. 미시령을 빠져나와 속초로 접어들자 풍경이 돌변했다. 검게 탄 소나무들, 지붕이 무너져 내린 집들, 한쪽 벽만 남은 집들, 아예 주저앉은 집들…… 할머니 한 분이 불타버린 집 앞에서 통곡을 하고 계셨다. 시인의 집은 창고가 녹아내렸고 집안은 온통 연기와 열기에 그을려 있었다. 불이 지나간 자리에서 피어나는 냄새에 나는 계속해서 기침을 토해내야만 했다. 시인은 불이 날아다니던 전날 저녁, 집으로 들어가 원고가 저장된 노트북 하나만 챙겨 나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 신기하게도 시인의 서재만 불과 연기로부터 무사했다. 안채와 이어진 연결통로가 없어서였겠지만 신기한 것은 사실이었다. 바짝 마른입 속으로 생수를 들이켜며 나는 물었다. 똑같은 일이 내게 벌어진다면 나는 불타는 집에서 무엇을 가지고 나올까를.

속초 고성에 산불이 지나간 지 세 달이 흘러갔다. 그동안 우리는 언론에서 보도되는 산불 이후의 소식들을 들었다. 까맣게 타버린 폐차장, 화상을 입고 일어나지 못하는 가축들, 하룻밤 사이에 살던 터전을 잃고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생활을 하는 이재민들, 화재지역을 방문하는 정치인들, 화재의 원인을 놓고 왈가불가하는 사람들…… 예상했던 대로 시인의 집은 골조만 남겨놓고 모두 철거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나는 휴대폰의 지도를 펼쳐놓고 산불이 휩쓸고 간 지역들을 살폈다. 원암, 성천, 인흥, 장천, 용촌, 봉포, 장사동, 영랑호 일대…… 불이 달려간 길을 더듬었다. 미시령에서 영랑호까지 이어진 야산의 능선, 미시령에서 원암 인흥을 지나 봉포항까지 이어진 능선,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자그마한 야산들을 타고 달려간 화마는 바다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기세를 잃고 진정된 형국이었다. 만약 바다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때맞춰 들이닥친 무더위를 등에 업고 다시 속초를 향해 차를 몰았다.

어린 시절의 가짜 속초 여행 이후 나이를 들면서 나의 속초행은 점점 잦아졌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방문했던 설악동의 신흥사와 울산바위, 그리고 비선대. 우리들은 까만 교복을 입고 비선대 아래의 너럭바위에 모여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때도 속초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대학시절 친구와 함께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갔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속초에서 유학 온 친구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속초의 슬픔에 대해 접하기 시작했다. 오래전 에 존재하다가 사라진 동해북부선에 대한 이야기도 당연히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 안에는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역들이 가득했는데 불러보면 이렇다. 양양역, 낙산사역, 대포역, 속초역, 천진역, 문암역, 공현진역, 간성역, 거진역, 현내역, 제진역……삼일포역, 외금강역, 장전역……그리고 종착역인 안변역. 나는 아버지가 함경도 사람인 친구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동해북부선의 아름다운 이름들을 상상했고 그 열차를 타고 금강산과 함흥 원산을 오갔을 이들을 떠올리며 취해갔다. 언젠가는 <속초역>이란 제목으로 두툼한 소설 한 권을 쓰겠다고 몰래 다짐하며 근사한 역 하나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시 찾아간 속초는 아직도 화마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미시령 아래에서 속초 시내로 들어가는 56번 도로는 야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졌는데 오른쪽은 시가지고 왼쪽은 주로 관광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도로를 가운데에 놓고 산불과의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산불이 도로를 넘어 시가지로 진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도로 근처에는 폭죽을 저장해놓은 리조트의 창고, 가스 충전소, 주유소가 있었다. 그날 밤 속초의 남쪽 사람들은 북쪽 하늘에서 전쟁이 난 것처럼 벌겋게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잠 한 숨 청하지 못했다고 한다. 통장과 귀중품을 챙긴 채 집을 나와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바람이 혹시라도 길을 바꿀까 전전긍긍해 하며. 속초의 북쪽 사람들이 집 외곽에 물을 뿌리며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동안에. 무너져 내리는 집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에. 어쩌겠는가! 그게 인간의 모습인 것을. 산불이 번져가는 그 시간 우리들 또한 다르지 않았으니……

바다 근처 장사동의 오래된 장칼국수집에서 나는 더위에도 불구하고 땀을 흘리며 뜨거운 칼국수를 먹었다. 국수집 뒤편 야산에도 불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주방에서 나온 주인은 집 뒷마당까지 내려왔던 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불이 올라앉은 소나무는 누렇게 잎이 말랐고 소방차에서 뿌린 물 덕분에 목숨을 건진 소나무는 칠월의 하늘 아래서 초록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른 야산을 통해 바다까지 달려간 불은 한때 손님들로 북적거렸던 카페 ‘나폴리아’를 모두 삼켜버렸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바다를 등진 채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밀랍인형뿐이었는데 기타줄은 불에 녹아 끊어져 있었다. 기타줄 너머의 바다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대로였다.

나는 임시 카페에서 얼음커피를 사들고 다시 길을 떠났다. 산자락 아래 지붕이 녹아버린 집, 주저앉은 창고, 고철이 돼버린 농기구, 농촌 지역의 이재민들이 거주하는 자그마한 조립식 주택들. 이재민들은 새 집을 지을 때까지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

마을을 벗어나자 불에 탄 소나무 숲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산불 이후에 자라난 풀들과의 대비는 기이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논과 밭에서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다는 점이었다. 논에서는 어린 벼가 밭에서는 콩 옥수수 감자 고추 들이 뙤약볕을 맞으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집을 잃은 농민들의 시름 하나를 덜어준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원암리 시인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집터에도 조립식 주택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난 봄 불타버린 집 앞에서 울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반파된 시인의 집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시인의 서재를 들여다보고 나오는데 오토바이를 탄 집배원이 우편함에 소포를 넣고 떠나갔다. 시인의 집 입구에 피어 있는 노란 나리꽃 세 송이가 소포의 내용물이 궁금한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내가 본격적으로 속초를 알게 된 것은 속초의 북쪽에서 삼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하면서부터다. 그때 동해북부선의 그리운 역들이 자리했던 곳을 훔쳐보았고, 또 가끔씩 속초역을 꿈꾸었다. 사라진 속초역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어떤 사람을 떠올렸다. 그때도 봄날이면 어김없이 크고 작은 산불이 속초의 북쪽을 방문했고 겨울이면 폭설이 퍼부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많이 흐른 어느 봄날 나는 토성면 바닷가에 방을 얻어놓고 <속초역>이란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밤이면 쿵쿵거리는 파도소리가 들려오던 방이었다. 하루 한 번씩 장사동 장칼국수집에 가서 배를 채우고 돌아와 소설을 쓰던 방이었다. 갑자기 그 집의 안부가 궁금해 영랑호에서 차를 돌렸다. 그곳은 속초, 고성 산불의 한가운데로 흐르는 용촌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불탔을까? 그대로일까? 그해 봄 나는 그 방에서 <속초역>의 초고를 완성했지만 그 원고는 책이란 얼굴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속초역을 안다고 여겼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만든 속초역은 파도가 치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래역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 방은 내가 쓴 소설처럼 힘없이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속초의 서쪽인 설악산 능선 위에 해가 떠 있는 시간, 나는 일방통행로인 영랑 호반길로 들어섰다. 벚나무의 녹음이 우거진 호수 옆에 자리한 펜션들은 대부분 불에 탄 채 아직 철거되지 않은 채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 봄날의 산불로 실로 많은 것들이 불탔다. 산과 나무와 민가, 창고, 축사, 식당, 개인사업자들의 사무실이 단 하룻밤의 불길에 초토화돼버렸다. 어디 그것들만 불탔겠는가. 거기에 담긴 소중한 꿈마저 타버렸으니. 명태와 양미리를 즐겨 그리던 화가의 작품들이며 오랜 세월 장사동에서 라디오드라마를 집필하던 작가의 집필실도 타버렸다. 속초 극단인 <파‧람‧불>의 장사동 물품창고도 화마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하지만 타버린 숲에서 푸른 잎이 돋고, 꽃이 피듯, 힘든 상황 속에서도 <파‧람‧불>은 주변의 도움으로 올해 대항민국연극제에 참가해 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속초의 먹자거리에서 늦은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먹으며 나는 결국 나를 생각했다. 화마가 축지법을 쓰고 하늘을 날아간 여파에 집이 불타 거리로 내몰린 농부가 그래도 논에 물을 대고 벼를 심듯 나 역시 다시 속초역을 찾아 나서겠다고. 그게 바로 내 마음의 불타버린 황무지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속초의 북쪽 사람들에게 많이 미안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