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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에서 씨앗까지

씨앗에서 씨앗까지

김 수 진/ 토종씨앗지킴이,′19,7月

아이들에게는 딴 짓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수만 참여하는 일회성의 프로그램 보다는

일상적으로 언제든지 참여 할 수 있는 체계와 공간, 흥미로운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게는 딴 짓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수만 참여하는 일회성의 프로그램 보다는 일상적으로 언제든지 참여 할 수 있는 체계와 공간, 흥미로운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씨앗에서 씨앗까지!

생태 텃밭 활동으로 1년 동안 만날 초등학생 아이들과의 목표를 ‘씨앗에서 씨앗까지’로 정했다. 우리가 먹는 쌀, 콩, 땅콩이 생명을 품고 있는 씨앗이라고 들려주면 놀라워하는 눈빛을 발사하는 아이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데 아이들은 씨앗 콩과 먹는 콩을 별개라고 생각한다. 씨앗을 심어서 다시 씨앗을 받는 것, ‘씨앗에서 씨앗까지’가 2019년 올해의 텃밭 활동 목표다.

생태 텃밭 활동 첫 시간 첫 번째 씨앗

하얀 이면지 위에 아이들 손톱만한 씨앗 서너 알을 올려주고 무엇인지 물으면 돌, 열매, 곡식이라는 답과 함께 ‘똥’이라는 대답도 나온다. ‘이게 똥이라고?’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똥’이라……. 그 중에는 ‘햄스터 밥이요!’라고 대답하는 아이도 있다. 맞다. 햄스터 밥. 바로 해바라기 씨앗이다. 해바라기는 해바라기인데 무슨 해바라기냐 하면 ‘토종 외대 해바라기’되시겠다. 칠판에 크게 ‘토종 외대 해바라기’라고 쓰고 뒤 단어부터 알아본다. ‘해바라기’는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그‘해바라기’맞고.
“‘외대’는 뭘까요?”
‘외국어 대학교’라고 답하거나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다.
“외롭다고 할 때 혼자 있는 걸까? 여럿이 함께 있는 걸까?”
단박에“혼자 있는 거요”라고 대답한다.
“맞아! 그 ‘외롭다’의 ‘외’에서 따온‘외대’, 그럼 줄기(대)가 하나일까요 둘이나 여럿일까요?”
“줄기가 하나요!”라고 소리친다. 그럼 ‘외대 해바라기’까지는 이해했고, 다음으로 “‘토종’은 뭘까요?”
“우리 꺼요, 우리 땅이요, 흙이요”
라고 제법 흙 토(土)까지 생각해내서 대답한다.

맞다 맞아! 우리 흙에서 자라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키워 오신 대대로 대물림하고 나눔 하셨던 그 씨앗들, 그것을 ‘토종’이라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씨앗 중에서도 실하고 좋은 씨앗들만 골라(나름 자연스런 육종법을 터득하셨다) 다음해 씨앗으로 남겼던 손에서 손으로 이어오신 해바라기.‘외대 해바라기’,‘키 큰 해바라기’라고도 불리는‘토종 외대 해바라기’는 키가 2m이상 자라고 잘 키운 꽃 한 송이가 웬만한 프라이팬만 하다. 요즘 개량종의 해바라기는 키를 낮추고 줄기가 여러 갈래이며 작은 꽃이 갈래마다 달려있다. 개량종 해바라기 중 씨앗에서 다음해에 해바라기가 나오지 않는 종이 있다. 다음세대를 품지 못하는 일회용 해바라기 씨앗이다.

두 번째 씨앗

해바라기 씨앗 옆에 깍지를 까지 않은 땅콩 몇 알을 주고 살펴보게 한다. 먼저 모양을 살펴보게 한 후 몇 알이 들어있을지 물으면 땅콩 생긴 모양을 유심히 살핀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두 개요!”. 그럼 이 땅콩은 어디에 달리는 지 땅 속인지, 땅 밖인지 물으면 또 한참을 고민하다가 저마다 “땅 속인가?”, “땅 위인가?”,“땅콩이니까 땅 속인가?”라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피땅콩을 흔들어 보고 만져보고 냄새 맡아본 후에 드디어 껍질을 깐다. 바싹 잘 마른 겉껍질은 ‘바스락 바지직’소리를 내며 아이들 손에서 쪼개지고 속살을 드러낸 땅콩은 조그마한 것이 날 땅콩 그대로다. 아이들은 손바닥에 땅콩을 놓고 신기해하기도 하고 속껍질을 까기도 하고 쪼개보기도 하며 날 쳐다본다. 그럼 이때다 싶어 나는 “그럼 손바닥 위 땅콩을 먹어요! 맛 봐요!”라고 소리치면 아이들은 ‘이걸 먹어? 날 것으로?’라는 반신반의의 표정으로 쳐다보다 누군가 입안에 넣고 ‘고소하네’‘비리네’하면 너도 나도 맛을 본다.

세 번째 씨앗

얼룩덜룩 무늬가 있는 콩알 세 알을 나눠주고 살펴본다. 앞서 두 종류의 씨앗들의 이름, 생김새, 맛을 봤으니 세 번째 씨앗은 직접 이름 맞추기다.
“이 콩의 특징이 뭘까요?”
“얼룩무늬요”라고 바로 소리친다.
“그럼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그 위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 무늬를 보고 어떤 동물을 떠올리며 이름을 지으셨을까요?”
“얼룩말이요!”, “얼룩소”, “젖소요”, “치타요”
“ 아니, 할머니 할아버지 그 위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 위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실 때는 얼룩말도 없고 젖소도 없었지! 어떤 동물일까요? 우리나라에 살았던 얼룩무늬를 가진 커다란 동물인데?”
“아, 호랑이!”
그렇다. 이 씨앗의 이름은 ‘호랑이 울타리 콩’. 넝쿨 강낭콩, 호랑이 콩, 울타리 콩 등 지역마다 조금씩 이름을 달리 부르는 ‘토종 호랑이 울타리 콩’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호랑이 울타리 콩’은 울타리라는 지지대가 필요한 덩굴성 작물이다.

세 가지 씨앗을 살핀 후 땅 속 식물은, 덩굴성 식물은, 줄기가 하나인 외대 식물이 무엇인지 물으면 우도 땅콩, 호랑이 울타리 콩, 토종 외대 해바라기를 외친다. 작은 씨앗들을 자세히 살피고 만지고 소리 듣고(겉껍질을 까기 전에 반드시 흔들어 본 후 껍질 속 씨앗을 상상하도록 하고 소리 듣게 한다. 바짝 잘 말린 씨앗의 상태를 확인시켜 주는 과정이다) 맛보며 새롭게 씨앗의 세계로 들어간다. 맛을 본 씨앗들이 흙에서 길러졌다면 다시 해바라기로 땅콩으로 호랑이 콩으로 우리 손에 되돌아 올 수 있는 생명임을 이야기 하면 아이들의 표정이 숙연해지기도 하고 놀라워하기도 한다. 씨앗이 씨앗이라고 알려줬을 뿐인데 아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잘 받아들일까?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아이들은 씨앗과 키우는 방법들을 이해하고 내년에 씨앗 뿌릴 생각에 공책에 이름과 키우는 방법을 적느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는 씨앗들을 작은 봉투나 종이에 넣어 조심히 접어 넣는다.

그 외 샛노란 토종 노란 방울 토마토, 옥수수 알갱이가 쥐이빨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뻥튀기용 쥐이빨 옥수수, 흰 솜이 멋진 토종 목화, 아삭하고 물이 많은 토종 오이, 밑에서 단내가 날 때 따서 먹는다는 깐치 참외 등 씨앗들을 살펴보고 원하는 씨앗들로 텃밭을 키워낸다.

날이 너무 더워서, 비가 와서, 바람이 불어서, 추워서, 눈이 와서, 체험학습 가느라 텃밭 활동이 쉽지 않지만 첫 시간 살폈던 씨앗들에 대한 기억과 흙을 뚫고 나오는 새싹을 본 아이들은 텃밭 활동에 강한 애착을 갖는다. 수업 시간 중에 일부러 교실에 더 머물라치면 아이들이 어서 텃밭으로 가서 해바라기를 확인하자고, 단호박 떡잎이 나왔는지 보자고, 네 거는 죽었던데 내 거는 살았는지 보자고 아우성이다.

반듯하게 길러진 딸기, 블루베리, 사과 수확 체험은 많다. 달콤하고 쉬운 결과물만 취하는 체험활동이 아니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햇빛과 비를 살피며 손으로 풀 뽑고, 뽑은 풀로 키우는 작물 주위를 덮어주는(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다) 토종 생태 텃밭 활동을 하는 아이들. 자연은 모기도 뱀도 진딧물도 무당벌레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자연에 기대어 키우는 일 년 농사 활동을 해 내는 아이들은 곧 씨앗이다.

오래된 보물 토종 씨앗이 품고 있는 100년의 기억, 1000년의 기억들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도록 씨앗들이 저장고에 냉장고에 보관창고에 잠들어 있지 않고 밭에서 흙에서 여기저기에서 살아 숨 쉬면 좋겠다. 그래야만 100년에 한번 온다는 폭염, 홍수, 가뭄을 이겨낸 기억들이 씨앗 속에 고스란히 남아 기후이탈¹⁾이 예상되는 2040년 이후를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씨앗은 자라는 지역의 흙, 물, 공기, 햇빛을 기억하고 길러내는 농민을 살게 하고, 그 지역의 음식으로 자리 잡는다. 그 음식은 아련한 기억 속에 언젠가 다시 찾는 그 맛으로 기억된다. 밭에서 직접 딴 옥수수를 바로 쪄서 맛을 본 아이라면 반드시 그 옥수수를 다시 찾을 것이다. 따서 바로 쪄 낸 옥수수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부드럽고 고소하고 달달한 옥수수 향과 맛을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옥수수 맛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1) 지구 온난화로 인해 우리가 아는 기후와는 전혀 다른, 예측이 어려운 기후 상태

씨앗 같은 아이들이 강원도 인제에서 키운 쥐이빨 옥수수로 뻥튀기를 해 먹고, 토종 메밀로 막국수를 말아 먹고, 우리가 키운 토종 감자로 감자전을 부쳐 먹는 활동은 내년쯤 해봐야겠다. 올해는 열심히 키워서 내년에 뿌릴 씨앗들을 거두고 그 씨앗들을 널리 퍼트려 씨앗이 세대를 이어주는 끈이 되길 바란다. 아이들이 거둬들인 토종 씨앗들이 학교 텃밭을 넘고 담장을 넘어 이웃 학교 텃밭에서도 길러지고 중학교, 고등학교에도 심어지고 면사무소, 군청에도 심어지면 좋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 낸 오래된 보물 씨앗들을 2019해의 아이들이 키우고 씨앗 같은 아이들이 다음 씨앗 같은 아이들에게 오래된 보물을 나눠주길 원한다. 내 씨앗이 우리의 씨앗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