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생각과 마음을 잇다 생각을 잇다

자연을 닮은 학교를 만들어 볼까

임 종 길/ 안산 양지고등학교 교사,′19,7月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을 작은 꽃 앞에

허리 숙여 관심을 갖는 학생을 볼 때 기분 좋은 미소가 생긴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을 작은 꽃 앞에 허리 숙여 관심을 갖는 학생을 볼 때 기분 좋은 미소가 생긴다.

학교에서

초롱꽃이 숨어 피어 있다. 초롱꽃도 번식력이 만만치 않은 식물인데 무더기로 자라고 있는 일월 비비추에 치어 기세가 눌려 있다. 절정을 지난 일월 비비추꽃은 시든 꽃들이 더 많아졌다. 그 사이로 백합과 참나리가 긴 줄기를 밀어 올려 꽃대를 몇 개 만들었다. 주변으로 모란과 인동 덩굴, 생강나무가 이웃하고 있다. 넓지 않은 화단에 여러 꽃들이 살다보니 경쟁이 치열하다. 바로 옆 연못가에는 부처꽃이 분홍 꽃송이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부처꽃은 물속에 잠겨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꽃창포와 함께 자란다. 꽃창포는 이미 꽃이 지고 실한 꼬투리를 매달고 있다.

노랑꽃창포 꼬투리가 제일 길고 크다. 너무 묵직해서 벼가 고개를 숙이듯 옆으로 쓰러지거나 기울어져있다. 그에 비해 보라색 꽃창포는 엄지손가락 정도의 단단한 꼬투리가 꼿꼿하게 서 있다. 바람이 살짝 불어오자 갈대 무더기가 물결처럼 춤을 춘다. 봄에 꽃창포와 수련, 연 주변으로 올라오는 갈대를 뽑거나 잘라주었지만 워낙 번식력이 좋아 한 번 더 갈대를 솎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얀 수련꽃이 푸른 잎들 사이에서 빛나 보인다. 노랑 어리연이 작지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몇 송이 꽃을 피웠다. 노랑 어리연보다 조금 작고 꽃모양도 다른 노란색 통발꽃은 뿌리 없이 물에 떠서 자라는데 줄기에 달린 작은 통발 같은 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는 벌레를 잡아 소화시키는 식충식물이다. 직박구리 두 마리가 목욕을 하러 왔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따라 머루포도 덩굴 터널을 만들었는데 물속으로 뛰어들어 한바탕 목욕을 하고 포도덩굴 위로 올라가 몸을 흔들어 물을 털고 털 고르기를 한다. 머루 포도는 아직 덜 익은 녹색이지만 머지않아 포도알이 익어 가면 제대로 다 익기도 전에 직박구리의 간식거리로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목욕을 끝낸 직박구리는 연못 옆 온실을 넘어 파도 곡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오색버들 흰 잎이 꽃처럼 반짝인다. 연못 주변으로 네 종류의 버드나무가 살고 있다. 오색버들과 흑버들은 6년 전 학교 선생님 몇 분과 천리수목원을 다녀오며 사온 모종인데 지금은 내 키보다 크게 자랐다.

연못 옆으로는 큰 화분이 줄지어 서있다. 천사의 나팔, 애니시다, 금화귀, 라벤더, 로즈마리, 피라칸사스, 유럽스, 비파나무. 이 비파나무는 5년 전 제주에서 온 비파를 먹고 씨를 화분에 심었는데 이제 2미터쯤 자랐다. 평소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면 연못 주변은 학생들로 분주했는데 시험기간이라 오전 시험을 마치고 모두 귀가해서 조용하고 여유롭다. 학생들이 연못에 사는 물고기와 거북에게 먹이를 주거나 꽃 냄새를 맡고 연못 옆 파라솔 의자에 마주앉아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는 풍경도 정겹지만 이렇게 한가하게 연못과 주변 꽃들을 살피는 것도 참 좋다.

연못 전문가

내가 지금의 학교로 온 2012년, 20여 평 남짓한 연못은 시멘트 바닥을 드러낸 채 텅 비어있었다. 양쪽 구석으로 바닥에 깔려 있던 둥근 자갈이 낮은 무덤처럼 쌓여있었다. 바닥에 자갈을 깔고 수중 펌프를 이용해서 물을 순환시키는 시멘트로 만든 연못이었는데, 물이끼가 끼고 탁해질 때마다 물을 빼고 청소를 해 주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몇 번 연못을 없애고 학생들을 위한 운동시설을 설치하려 했지만 교육청에서는 학교를 세울 당시의 목적에 맞게 잘 관리해보라며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물을 빼버린 연못은 바닥을 드러낸 채 흉물처럼 2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내가 이 학교로 발령을 받았을 때 ‘연못 전문가’가 간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물론 나는 연못 전문가가 아니었다. 다만 학교에서 화단을 만들거나 몇 번 작은 생태연못을 만들어 유지 관리해 본 경험이 있었고 누군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고 학교에 전달한 모양이었다.

자연을 닮은 학교

내가 자연을 닮은 생태적인 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여 년 전, 당시 나는 우리 야생화에 푹 빠져서 틈나는 대로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 우리 들꽃들을 만나게 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었다. 그러던 중 수원에 있는 한 신설학교로 가게 되었다. 신입생을 맞이하는 첫 날,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진행하는 동안 문제가 발생했다. 몇몇 신입생이 운동장에 빠져 운동화를 잃어버린 것이다. 급하게 개교하면서 운동장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에 수렁이 생긴 탓이었다. 결국 학교 기사님이 흙 속에서 운동화를 캐서(?) 현관 앞에 늘어놓았는데 그 장면이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자는 시간을 뺀다면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그렇다면 굳이 학생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자연을 만나게 할 것이 아니라 학교를 자연을 닮은 곳으로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래서 틈 날 때마다 우리 들꽃들을 캐서 학교에 옮겨 심었다. 요즘은 화원에서 우리 들꽃들을 많이 팔고 있지만 당시에는 우리 들꽃을 파는 화원은 없었다. 이후 학교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학교에서도 되도록 많은 우리 들꽃을 가꾸고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 리모델링

2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연못은 내게는 반가운 존재였다. 경험해보니 물을 일부러 순환시키지 않아도 바닥에 흙을 깔고 식물이 자란다면 물은 건강함을 유지했다. 그러니 큰 비용이 없어도 시멘트 바닥에 흙을 깔고 식물을 심으면 연못은 살아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연못을 위한 적지 않은 예산도 있어서 연못 주변에 데크도 설치하고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놓는 큰 공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핵심은 바닥에 흙을 채우는 것이었다. 연못에 갈대, 부들, 연, 수련, 꽃창포, 부처꽃, 노랑어리연, 왜개연. 마름 같은 식물을 심었다. 이제 연못은 8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한 번도 물을 빼거나 순환하지 않고 단지 물을 보충해 주는 것만으로 잘 유지 되고 있다.

물론 작은 문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명을 키우면서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 다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연못이 있으면 생기는 모기 발생 문제는 송사리와 구피를 키우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송사리는 미꾸라지보다 모기 유충을 잘 잡아먹고 구피(열대어)는 내가 실험한 결과 송사리보다 모기유충을 더 잘 잡아먹었다. 구피는 번식력이 좋고 수면 가까이 다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연못을 즐겨 찾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날 수 없기 때문에 늦가을 추위가 오기 전 잡아 실내에서 월동시켜 봄에 다시 풀어 놓는다. 단지 모기 때문이라면 송사리를 키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진짜 전문가가 그린 이상한 연못 설계도

얼마 전 우연히 진짜 전문가가 그린 연못 설계도를 보게 되었다. 학교 내 연못이 제 기능을 못한다며 나에게 자문을 요청해 왔기에 방문했던 한 학교에서 시공한 생태 연못 설계도였다. ‘생태연못’이란 이름 때문인지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방수를 하고 바닥에 황토를 까는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흙 위에 조경용 자갈을 얹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아마도 토목 설계를 하는 전문가이지만 연못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상상으로 그린 설계도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시공된 연못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수중 펌프가 고장 나거나 하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해 방치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도심의 학교는 숨터

숨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과정을 말한다. ‘숨터’라는 이름으로 자연, 야생, 생명의 가치를 가진 비경 등을 짧게 소개하는 KBS 다큐멘터리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있다. 3분정도 되는 영상 속 숨터를 보다보면 각박하고 바쁜 세상을 살다가 잠시 자연의 푸른 생명의 숨을 내 쉬듯 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늘에서 건물들로 빼곡한 도시를 내려다보면 군데군데 작은 섬처럼 사각형 운동장을 품은 학교를 볼 수 있다. 비좁고 시멘트로 가득한 도시에서 학교는 그런 숨터가 되어야 한다. 학교 안에 살고 있는 사람과 학교를 품고 있는 지역에게도 필요한 숨터.

잡초를 키우는 학교

학교에서 잡초는 없다. 잡초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농작물을 키울 때 원하는 농작물외 자라는 모든 풀은 잡초다. 학교는 수익을 위해 농작물을 키우는 곳이 아니므로 굳이 잡초라고 불러야 할 풀은 없다. 단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화단에 일부러 심은 꽃 중에도 너무 번식을 잘해서 다양성을 위해 제거해주기도 한다. 보도블록 사이에서 허락 없이 자리를 잡은 민들레나 제비꽃도 학생들에게는 소중한 존재일 수 있다. 나는 학교를 둘러보며 그때그때마다 식물 이름표를 달아주기를 좋아한다. 꽃 이름이나 식물의 특징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관련된 짧은 시를 적어 놓을 때도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을 작은 꽃 앞에 허리 숙여 관심을 갖는 학생을 볼 때 기분 좋은 미소가 생긴다.

듀센미소

학교 공간을 되도록 자연과 닮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꽃을 키우면서 이런 환경이 학생들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믿음이 있었지만 객관적인 증거를 갖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듀센미소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꽃을 보면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데 이러한 미소를 ‘듀센미소’라 한다. 1800년대 프랑스의 심리학자 듀센이 관찰한 미소로 그의 이름을 본뜬 명칭이다. 미국의 해빌랜드 교수는 20여년 넘게 미소에 관해 연구했다. 실험자에게 다양한 선물을 건넸을 때 과일을 받은 집단은 90%, 양초를 받은 집단은 77%만이 환한 미소를 지었지만 꽃다발을 받은 사람 100% 듀센미소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화단을 만들고 다양한 꽃을 가꾸는 것은 학생들에게 많은 부분 긍정적인 교육이 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학교 조경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때

오래전 학교 모습을 떠올리면 학교 건물이 있고 그 앞으로 잘 다듬어진 향나무가 나란히 늘어선 모습이 생각난다. 누군가는 그것이 일제의 잔재라고도 한다. 향나무를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의 시각에서 정착한 조경이라는 것이다. 어느 초등학교는 큰돈을 지원받아 학교 조경을 새롭게 했는데 한 그루에 수백만 원이 넘는 큰 소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두 경우 모두 어른들의 시각에서 학교의 조경을 바라본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여러 교육문제와는 별개로 조경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조경이란 식물과 토목재료를 이용해서 쾌적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꾸미는 것을 말한다. 조경의 목적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바뀌어 왔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환경 문제는 그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교육의 목표가 본질적으로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이제 교육의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는 환경교육이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도 학교 공간을 다양한 식물이 살고 있는 생태 공간으로 가꿔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생태 감수성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수성은 우리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고 모든 예술적 행위의 원천이라 할 수 있기에 자연에서 얻는 감수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지금도 학교에 숲이 우거지고 식물이 너무 많으면 단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진 선생님들이 제법 많다. 교실 안, 책에서만 배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이 정말 큰 스승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