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삶 속 문화가 핀다 문화가 핀다

삶_그 따뜻하고 생경함의 순간들

이봉미 / 기획자 / 예술공간 영주맨션, ’19.4月

순간을 잡아내고 대상을 관찰하는 면밀한 태도는

작가 자신의 메시지로,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결코 가볍지 않는 이야기를 건넨다.

그의 접근은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확대되지만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온다.

순간을 잡아내고 대상을 관찰하는 면밀한 태도는 작가 자신의 메시지로,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결코 가볍지 않는 이야기를 건넨다. 그의 접근은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확대되지만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온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작가 조명전 그 첫 번째로 방정아 기획전이 전시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미 작업세계를 인정받은 방정아 작가의 30년에 다다르는 방대한 양의 작품이 미술사와 미학적 접근을 통해 정리되었다. 또한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여성작가로서 3층 대전시실을 모두 채운 대규모의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처음이라 할 수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회화를 중심으로 조형,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방식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그 동안 일상과 여성으로 대변되던 작가의 작업세계가 확장되어 전시되었다. 전시는 ‘믿을 수 없이 무겁고 엄청나게 미세한’이란 부제 아래 5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부제에서 느껴지듯 방정아 작가의 작품은 친근한 소재와 색감으로 그려져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삶에서 느껴지는 낯선 찰나, 불편한 순간, 일그러진 틈새를 꼬집어 내는 작품들이 따뜻하지만 묵직하게 그러나 재치 있게 그려져 있다. 5개의 섹션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¹⁾’, ‘치열하였다, 그리하였다’, ‘불편하게 다독이는’, ‘있으면 좋구요, 없으면 됐구요’, ‘확장된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 방정아 작가의 작품에는 무제(제목 없음)가 없다.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와 대치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없으면 됐구요>처럼 제목과 그림이 자연스레 스며들며 이야기를 만든다. 그림 속에 녹아든 문학성을 바탕으로 나눠진 전시의 섹션타이틀을 통해 작가의 작업세계를 세밀히 느낄 수 있다.

전시장 일부는 목욕탕으로 연출되어 있는데 작품 <급한 목욕>이나 <위로>처럼 목욕탕을 그린 작품에서 착안되었다. 이 곳에서는 작가가 가진 삶의 인식과 이면을 풀어내는 방식이 회화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노래를 할 수 없었던 노래방 주인이 정체모를 약을 먹고 나서 다시 노래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흔들리는 목소리>는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노래방을 운영하며 노래를 부르는 여성을 그린 <가수협회 등록된 사람>과 연결되며 영상과 회화의 경계를 허문다. 이곳 ‘고요함 속 쓱싹쓱싹²⁾’에서 전시된 애니메이션과 영상을 통해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를 위해 작업하였고 방정아 작가의 작품세계의 종합성을 느낄 수 있는 <그녀가 손을 든 순간>에서는 작품 속 소재가 2차원 평면에서 3차원으로 튀어 나온다. 세상으로 뻗어가는 환경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엿보인다.

1)출처표기_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1980, 문학과지성사
2)<고요함 속 쓱싹쓱싹>은 작품제목이자 목욕탕으로 연출된 공간의 이름(부제)이다.

방정아 작가는 일상과 한국여성의 삶을 위트와 풍자로 풀어내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 전시에서 주목된 지점은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을 대하는 작가의 넓은 시각이었다. 일상에서 사회로, 나무에서 숲으로, 뜰에서 대지로 넓어지는 그의 작품세계는 일상의 카테고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여 나아간 작가의 힘을 보여준다.

첫 섹션인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는 사회와 현실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상에만 머물러 있기에는 “세상이 너무 시끄러웠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삶과 세상을 향해 예민한 감각을 곤두세운다. 작품 <세계1>은 고요한 풍경이다. 날은 따뜻해 보이고 연두와 초록빛은 싱그러운 계절을 나타내는 듯하다. 하지만 나무는 앙상하다. 그리고 저 멀리 사물처럼 사람이 누워있다. ‘세상은 외로운 한 사람의 고통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래서 잔인하다’란 글귀와 함께 따뜻해 보이는 풍경 속에는 고통을 돌아볼 겨를 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차가운 일침을 심어져 있다. 마약을 하고 화장실에서 쓰러져 있는 여인을 그린 <그녀에게 삶은 고통이었을까>, 변심한 동거녀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범행 사건을 그린 <변심한 동거녀에 앙심을 품고>, 멀리 보이는 원전을 풍경삼아 회를 먹고 있는,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들의 <핵헥>, 원전과 일상행위의 병존 <월성>, <꽉>,

남북정상회담 중 두 대표의 대화를 그린 <스프레드 보이스>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작가가 쫓아온 사회에 관한 묵직한 메시지들이 재치 있게 그려져 있다. 작가의 작품 속을 거닐다 보면 문득 발이 멈춰진다. 어쩌면 모르고 지나치고 싶었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이기에 그림 앞에서 쉽게 걸음을 떼지 못한다. 원전이나 고독사 등 사회적인 문제를 스크린 속 뉴스에서 나의 발 바로 앞에 툭 던져놓았다. 움찔하며 멈춰진 그 곳에서 삶의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작품이 있었다.

두 번째 섹션인 ‘치열하였다, 그리하였다’에서는 90년대부터의 ‘삶의 궤적’을 풀어놓았다. ‘삶의 궤적’은 시대 순으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20대였던 <87세대>부터 거울을 보며 렌즈를 끼는 <선보는 날>, 아이를 낳고 나서의 <얼떨떨했어요>, 출산 후 여성의 몸의 변화를 드러내는 <튼 살>, 베란다에서 빨래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봄이 왔음을 깨닫는 <춘래불사춘>, 줄을 잡고 위태로이 바위를 건너는 모습을 그린 <왜 거길 가려는 건지> 등 작업을 놓지 않았던 작가이자 여성으로서 삶을 보여준다. 작업이란건 전시되지 않아도 구상을 하거나 뭔가를 그리거나 만들면서 계속 진행된다. 우리는 완성된 작품만 마주한다. 엄마이자 아내였을 작가가 이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추면서 작업을 한다는 건 누군가가 보기에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상당히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계속 되어야 했을 작업, 이를 메우기 위해 가정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여성으로서 작가. 아이를 낳고 물감작업을 하기 힘들어서 드로잉만을 계속한 시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작업과 육아, 두 가지 일을 수행 한다는 건,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했다는 사실은 전시를 보았던 누군가의 말처럼 어딘가 ‘울컥’ 하게 만든다. 그가 대면한 세계는 보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여성에만 국한되어 있는 건 아니다. 구구절절 풀어내지 않아도 아이를 안고 있는 <얼떨떨했어요>를 마주하면 모두가 느끼는 지점을 읽을 수 있다. 던져진 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품고 길러내고 배워야 비로소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들, 처음 무언가를 시작하면 다가오는 생경함, 그 얼떨떨하지만 소중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집값이 싼 구로공단 근처에 살며 아침에 출근하는 여성들을 보았다고 했다. 아침 일찍 말간 얼굴로 구로공단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그들을 작가는 놓치지 않고 그려냈다. <아침버스를 기다리는 구로공단의 여성들>에서 당연히 치부되어버린 노동의 역사들, 속된말로 공돌이 공순이들의 삶, 집으로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새벽부터 움직인 곤한 얼굴에서 피어오른 하얀 입김은 그네들의 삶을 기억하게 한다.
맞은 얼굴로 아이를 업고 오뎅꼬지를 들고 있는 <집 나온 여자>, 온 몸에 멍이 든 채 목욕하고 있는 <급한 목욕>등에서 여성은 현재에는 보다 능동적 존재로 읽힌다. 남편에게 매를 맞고 집을 나온 수동적 여성이 아니라 살기위해 아이를 업고 오뎅으로 배를 채우는, 멍을 숨기기 위해 목욕탕 문이 닫기 전 급하게 하는 목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척같은 눈빛으로 목욕을 하는, 삶을 살아내는 능동적인 여성들이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닌 나를 위해 밥을 먹고 몸을 씻는다. 방정아 작업에서 주를 이루며 등장하는 여성은 강인하다. 예전에는 이들을 수동적인 여성으로 해석된 지점이 있었지만 이제 그들은 능동적이고 억척스러운, 생존력 강한 강인한 여성으로 변했다.

세 번째 섹션인 ‘불편하게 다독이는’은 2010년에 진행한 보살시리즈를 볼 수 있다. ‘세상에 보살필 일들이 많다. 그래서 너무 바쁘다. 손발이 모자란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관세음보살’이라고 적힌 글귀가 작품 <바쁜 관세음보살>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보살은 예술가로 광대로 창녀로 나타난다. 어지럽고 혼란스런 세상 속에 고요히 물을 뜨고 수인³⁾(手印)을 드러낸다. 시끄러운 세상을 지긋히 바라보려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하는 듯하다.

3)모든 불보살과 제천선신의 깨달음의 내용이나 활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시 가운데, 양쪽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모양. 표준국어사전에서 발췌

네 번째 섹션인 ‘없으면 됐고요, 있으면 좋고요’에서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작가가 몸담는 여기, 일상에 집중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담배를 물고 턱 하니 앉아 납세미를 고르는 <납세미 할매>, 회원등록을 하러간 체육관에서 낯선 존재의 등장으로 집중되었던 생경한 순간을 그린 <회원등록>은 새빨간 바닥색과 체육관에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한 여성으로 인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일상에서 문득 피부에 닿았던 낯선 감각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작업은 보편적인 감각을 이끌어낸다. 나만 빼고 모두를 아는 무리 속에 있을 때의 어색함, 익숙한 풍경 속에 낯선 것을 발견하는 등의 누구나 있었을 경험을 재치 있게 끌어주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아무말 하지 않아 좋았어>처럼 편안한 순간을 그린 작품도 있다. 바다 방파제에 앉아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지만 함께한 시간이 길어 별 말 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익숙한 사람 틈에 있을 때의 편안한 감정을 떠오르게 한다.

다섯 번째 섹션인 ‘확장된 세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된 작가의 시선을 볼 수 있다. 작품 <일요일 오후>에서 커다란 바위를 중심으로 그 너머에는 미역을 말리는 여성과 반대편에는 우두커니 앉은 남성의 뒷모습이 있다. 그림 가운데를 기준으로 그려진 바위는 일반적으로 인물이나 중요한 사건을 중심에 두고 그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 작품은 <일요일 오후>라는 제목처럼 편안한 색감과 형태로 표현되었지만 어딘가 어긋난 느낌을 준다. 작품 <세계2-가만히 있어 주시겠습니까>도 인물의 시선보다 그의 뒤편 공간이 더 넓게 그려져 있다. 흔히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시선 앞으로 공간을 넓게 둔다. 이게 어긋나면 어딘가 불편하다. 드넓은 바다 가운데 홀로 서서 무기를 겨누는 그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이다. 무기를 들고 있지만 성난 파도가 삼키면 그는 사라질게 뻔하다. 작품 <복귀>는 부산 송도 앞바다 거북섬의 폐허가 된 횟집이 그려져 있다. 그 어느 날은 번성하고 사람으로 북적거렸겠지만 그마저도 신통치 않게 되었을 때는 모두 떠나가고 폐허가 된 건물이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이 피어나 황량해진 그 곳을 자연이 품었을 것이다.⁴⁾ 거대한 자연은 경쾌한 색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형태와 구도는 어딘가 빗겨나 불안정하다. 이러한 지점은 인간에 대한 경고를 준다. 자연은 거대하고 인간은 무기력하니 작은 애벌레의 삶도 소중히 생각하며 돌아보라고 말하고 있다.

4)<방정아>전 전시글 참조

또 이번 전시에서 눈을 잡는 곳은 15분 남짓한 작가의 인터뷰 영상이다. 특히 ‘물’과 ‘기둥’에 관한 작가의 대답은 전시 마지막 방에 있는 <그녀가 손을 든 순간>에 관한 일말의 힌트를 준다. 2019년 작품 <그녀가 손을 든 순간>에서는 상처가 난 손을 들고 있는 뒷모습의 여성을 중심으로 북한 여성, 예술가, 노인, 수평선과 동물, 절벽, 계단 그리고 분수대 등이 등장한다. 작품 속 그들 사이사이에는 붉은 기둥이 놓여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러한 초현실적 풍경을 받치고 있다. 작가에게 물과 기둥은 대립하는 존재이자 문명적인 요소로 답변된다. 물의 수평선에 대립하는 수직적인 요소, 불안전한 세상을 받치는 존재로서 기둥은 마지막 전시실에서 실제로 드러난다. 관객은 직접 그 기둥사이를 가로지르고 분수대를 지나서 작품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작가의 초현실적인 풍경은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등장하였다. 가상과 실제가 혼재된 이 장소는 낯설고 생경한 느낌을 준다. 삶의 이면을 어슴푸레 펼치던 작가는 이제 눈앞으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모호하지만 생경했던 순간들, 현실의 불안정한 요소들을 감지하게 만들며 ‘불안정한 세상’을 받치는 기둥 사이를 거닐게 한다.

방정아 작가는 삶 그 속에 깔린 낯설고 생경한 풍경을 따뜻하게 담아낸다. 순간을 잡아내고 대상을 관찰하는 면밀한 태도는 작가 자신의 메시지로,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결코 가볍지 않는 이야기를 건넨다. 그의 접근은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확대되지만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온다. 작가가 마주한 세계와의 상호작용은 우리의 세계를 드러낸다. 삶의 생경함을 바라보는 그 따스한 시선은 개인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는다. 낯선 그 찰나를 그려내는 작가의 따스함은 존재들을 단단히 부착시킨다. 소외하지 않게, 활짝 열려있는 있는 그의 시선은 묵직하고 따스하다.

*모든 이미지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