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사람과 현장이 있다 | 현장이 있다

홍천에서 __하게 살아가기

김소리 / 극단북새통 문화예술교육팀장, ’18.11月

30년 넘게 도시생활을 하다가 강원도 홍천에 이주해서 터를 잡고 산지 이제 겨우 20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나에겐 그동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일이 일어났고, 홍천으로의 이주는 내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중에서 가장 스펙타클하고, 변화무쌍하고. 엄청난 20개월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나의 홍천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홍천에 오게 된 이유부터 이야기해보자.
결혼 전, 남편과 나는 아이를 낳으면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키우자고 약속했었다. 그래서 괴산, 상주, 보은, 해남, 문경 등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어디에서 살지, 어떤 사람들과 살지, 어떻게 살지 고민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빈집 있으면 꼭 연락주세요.” 라고 부탁했는데 딱히 연락이 온 곳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지역으로 이주한다는 게 막연하기도 했고, ‘내가 진짜 도시를 떠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둘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건강이 안 좋아지니까 정말 진지하게 앞으로 내 삶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도시를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다. 2017년 2월,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시점에 맞추어 우리 가족은 홍천으로 이사를 왔다. 사실 홍천에서의 삶이 여유롭고 낭만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정반대이다. 오히려 내 삶은 두 세배 더 바빠졌다. 일주일에 세 번은 서울을 오가면서 강의와 공연을 하고, 홍천에 있는 날은 남편과 함께 열심히 우리 집을 짓고, 짬나는 시간은 마을사람들과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서 이것저것 작당 모의하는 것까지 눈 코 뜰 새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게다가 올 4월에 낳은 셋째 아이는 마실 나갈 때마다 어르신들 사랑을 독차지하니, 덕분에 온 동네 인사 다니느라 바쁘다. 자, 이제 그럼 풋내기 홍천댁의 사는 이야기 슬슬 풀어볼까?

집짓는 이야기

내 남편은 집을 짓는 목수다. 그것도 한옥을 짓는 목수다. 홍천에 이사 오면서 남편은 ‘내 손으로 내 집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엔 집짓기는 남편이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새 우리 가족 모두가 집짓기를 함께 하고 있다. 나무를 사서 건조시키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치고, 나무를 옮기고, 곰팡이 핀 나무에 곰팡이 제거제를 바르고, 남편의 바심질이 끝난 부재에 오일스테인 칠하고, 천장 페인트 칠하고, 남편과 같이 일하는 동료 목수들의 숙소정리와 식사 담당까지. 1년 가까이 집짓는 동안 내가 한 일이다. 더 놀라운 건 아직도 집이 완공되지 않았다는 점. 십년감수(十年減壽)라는 말이 있다. 몹시 놀라거나 위험한 상황에 접했을 때 사용하는 말인데, 집짓기에도 이 말을 쓴다. 우리 집을 손수 지어보니 노동도 고되지만, 집 지을 때 여러 가지 신경 쓸 일이 정말 많은데, 남편 얼굴이 10년이 아니라 20년은 더 늙어진 것 같다.
도시에서 나는 아파트에 살았었다. 그때 나에게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의 의미보다는 ‘돈으로 사는 것’의 의미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아랫집이나 윗집이나 똑같은 구조를 가진 아파트에서는 부엌의 동선이나 방의 크기, 화장실 위치나 창문 크기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지어진 대로, 집에 맞춰서 나의 모든 것을 맞췄다. 그런데 우리 집을 지으면서 나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해야했다. ‘우리 가족 구성원에 맞는 공간 배치는 무엇일까?’ 에서부터 ‘내가 사용하기 편리하려면 세면대의 위치는 어디로 하는 게 좋을까?’ 까지. 우리 가족의 품이 들어가서 우리 집이고, 우리 가족의 생각이 들어가서 우리 집이었다. 집짓기는 결국 우리 가족과 우리 가족이 살아갈 공간이 관계를 맺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을 지으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참 재미있다. 사람이 많이 필요한 일에는 동네 형님들이 품앗이를 해주었는데, 함께 땀 흘리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많이 알게 되었다. 집 짓는 데 기초공사가 가장 중요하다는데, 우리는 집을 지으면서 동네 분들과 관계의 기초 다지기는 제대로 한 것 같다. 또, 첫째 아이가 다니는 속초초등학교의 전교생이 집 짓는 현장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뒤에 이야기할 마을교육공동체 ‘새끼줄’에서 진행하는 학부모연계수업 중 하나였는데, 아이들이 한옥의 집짓는 과정을 듣고, 부재를 배우고, 연장도 만져보고, 직접 대패질도 해보았다. 삶의 현장이 가장 생생한 교육의 현장임을 경험할 수 있는 수업이었다. 아이들에게 우리 집 이름이 ‘놀다家’라고 했더니, 집이 지어지면 매일 매일 놀러오겠단다.
한옥은 나무와 나무를 잇고 맞추어 구조를 만든다. 목수는 나무가 어디로 휘어졌고 어디로 갈라질지, 어느 부분이 강하고 약한지 그 성질을 잘 파악해서 나무끼리 싸우지 않게 잘 잇고 맞춰야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지을 수 있다. 집을 짓는 일이 사람을 짓는 일이고, 인생을 짓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새끼줄 이야기

홍천에 이사 온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아이들 때문이었다. 도시에서 학원 몇 개씩 다니면서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고 성적 스트레스 받는 대신, 자연에서 충분히 뛰어놀고 다양한 감각을 깨우면서 자라나게 하고 싶었다. 다행히 내가 살고 있는 홍천군 동면에는 나와 같은 생각으로 귀촌한 젊은 가정들이 많았다. 그리고 올해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학부모들이 모여서 “새끼줄”이라는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었다. 우리는 먼저 학교 선생님들을 만났다. 교실 공간이 아닌 마을의 생태정원과 한옥현장에서 진행되는 수업, 정해진 교과 내용이 아닌 아이들이 스스로 경험할 수 있는 수업, 한 명의 교사가 아닌 마을 선생님과 학부모 선생님들의 팀 티칭으로 이루어진 수업을 제안했다. 학교에서는 흔쾌히 교과과정 안에서 ‘학부모 연계 수업’이 진행될 수 있게 해주었고, 이를 시작으로 새끼줄은 학교와 마을을, 아이들과 마을 주민들을 하나하나 엮어 나가고 있다. “모두의 텃밭”에서 수확한 농작물로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피자를 대접해드리기도 하고, “로빈슨 크루소 프로젝트”에서는 1년 동안 아이들이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해보는 실험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또 마을에 사는 젊은 기타리스트 선생님과 함께 가사도 쓰고, 곡도 만들어서 동네방네 버스킹도 다닌다. 새끼줄 덕분에 아이들도 재미있지만 실은 엄마, 아빠들이 더욱 신이 났다. 독서 동아리 ‘영귀미 책마실’의 엄마들은 북콘서트 때 직접 인형을 만들어 인형극 공연을 했는가하면, 아빠들은 동네 락 밴드 ‘일회용’을 결성해서 텃밭콘서트를 열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이들의 초청으로 북 콘서트까지 공연이 이어지자, 밴드 이름을 ‘일회용’에서 ‘재활용’으로 바꾸기도 했다. 아이들을 함께 교육하기 위해서 맺은 관계들이 다양한 사람들이 융합하는 마을 문화 공동체를 꿈꾸게 하고 있다.

삶과 예술, 그 사이에서

홍천의 삶은 이렇듯 분주한데, 신기하게도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쳐버릴 수가 없다. 도시에서는 내가 바쁘면 길가의 풀 한포기,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를 바라볼 여유가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아무리 바빠도 텃밭의 풀은 왜 그리 눈에 잘 띄는지 모르겠다. 텃밭의 풀을 뽑다가도, 잎사귀 틈에 지나가는 애벌레를 보면 잠시 멈추게 되더라. 아이들 학교를 데려다 주는 길에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그냥 한번 따라하게 되고, 외양간의 염소와도 인사하게 되고,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할머니의 안부를 묻게 된다. 도시에 살면서는 감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감각할 수 있는 세포들이 생기게 된 것 같다. 이러한 감각의 확장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그 순간 새롭고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예술은 관계와 사이에서 발생한다. 음과 음의 사이에서 노래가 만들어지고, 내 몸과 타인의 몸 사이에서 춤이 생성된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사람과 세상의 사이에서 의미를 발견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나는 지금 홍천에서 수많은 ‘사이’를 경험하고 있다. 나를 둘러싼 공간과 시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 삶과 교육, 그리고 예술이 함께 공존하는 새로운 배움의 시간들이 찾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홍천에서 지낸 20개월보다 더 스펙타클한 앞으로의 20년, 그 이상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홍천의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