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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숨겨진 예술적 감성을 발견하다

정해선 / 동해광희고등학교 교사, ’18.11月

교사의 한마디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뀐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서 있는 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주변의 것들을 기웃거리는 근성이 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궁금하고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까지 문학과 합창을 좋아하여 오랫동안 기웃거려왔다. 물론 잘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를 통해 내 삶이 풍요로워졌으며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화학교사이지만 낯선 다른 영역을 기웃거림으로써 왠지 내 안에 틈들이 채워짐을 느꼈다. 마치 벽돌로 성을 쌓을 때 틈 사이에 질퍽하게 이긴 시멘트 반죽을 꼭꼭 다져 넣어야 견고해지듯 나에게 예술은 마치 인생의 성을 쌓는 벽돌 사이를 채워주는 시멘트 반죽 같다. 예술이 있어야 삶의 틈을 채워주고 삶이 알차고 풍요로운 것 같다. 이번 연수도 기웃거림의 대상이 되어 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했다. 나는 참새였고 연수는 방앗간이었다.

올 여름 춘천에서 진행된 문화예술교육 직무연수 ‘내 안에 숨겨진 예술 감성’에 참가했다. 이번 연수는 내게 봄에 새싹을 돋게 하는 생명의 봄비 같은 시간들이었다. 내 안에 깊은 겨울잠을 자고 있었던 감성을 깨웠기 때문이다. 내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니 마치 오랜 가뭄 속에 시들해진 마른 나무 같았다. 지난 시간은 산바람에 못 이겨 금방이라도 ‘뚝!’ 하고 부러질 것 같은 삭정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번 연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예술 감성을 찾게 했으니 새봄에 봄비 같은 시간들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 마음 한편, 부끄러운 얘기지만 소심함 때문에 연수 신청할 때 사실 많이 머뭇거렸다. 그 이유는 낯선 무용 때문이었다. 왠지 무용이라면 ‘탈선’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마음 한 편에는 꼭 한번 배우고 싶다는 생각과 다른 한편에서는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따가운 시선이 동시에 의식되었다. “늦은 나이에 이런 걸 배워도 되나?” 라는 생각에 왠지 당당하지 못했고 왠지 외도하는 기분 같았다. 금남의 집을 남자가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지금 내가 TV 드라마에 나오는 불륜의 남자처럼 외도의 길로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가족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다가 문득 “이번에 이 연수를 못 받으면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어 가자”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고민 끝에 신청했다. 가족에게는 강원문화재단에서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직무연수’ 라고 우아한 말로 넘기고 참여했다. 어떤 책이 금서로, 어떤 노래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 왠지 그것이 더 궁금해지듯, 뭔가 경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궁금증과 떨림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번 연수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신청했을까도 궁금했다. 나중에 연수대상자 명단을 봤는데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남녀의 비가 7:11이었다. 남자가 좀 적은 편이지만 극단적으로 편중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연수를 받으면서 “그래, 이번에 나의 판단은 현명했어!” 라고 마음속으로 자화자찬하며 나 자신에게 칭찬의 박수를 힘차게 보냈다.
한동안 문학에 관심이 많아 시를 써보겠다고 도전했던 적이 있었다. 시는 어려웠다. 아내가 보기에 시가 제대로 써지지 않아 괴로워하는 내가 너무 딱해 보였는지 한 마디 던졌다.
“당신은 뭘 그런 걸로 절망해? 그리고 당신은 왜 남의 영역까지 침범하려고 해, 안 쓴다고 누가 뭐라고 해? 그러다 당신 병나,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왜 그렇게 살아, 그리고 당신은 가지가 너무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봐! 지금 당신은 욕심이 너무 많아, 나니까 이런 말 해주는 거야!”
아내의 말에 너무 부끄러워 아무 대꾸도 못했다. 나의 내면을 너무 속속히 잘 들여다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내가 나에게 한 말이 위로의 말인지 아닌지 구분이 잘 안 되었다. 아내의 말대로 내게는 가지가 많다. 그런데 아직도 과욕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지를 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방랑자로 살 것 같다.
그러나 시를 써보겠다는 경험을 통해 시인의 마음이 얼마나 깊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가끔 가슴을 울리는 시 한 구절을 만나게 되면 지금도 질투가 난다. 그리고 이 시인을 검색하면서 “어떻게 이 나이에 이런 글이 나올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연수 내용을 살펴보니 나의 몸과 타인의 몸 사이를 경험하기, 나로부터 출발하여 타인과 소통하는 예술의 기호 경험하기, 몸의 공간으로 이야기 발생 경험하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뭔가 알 듯 말 듯했다. 그러나 내용들을 하나하나 실습을 통해 배워 나가자 그 내용들의 의미가 느껴졌다.

남인우 연출가를 비롯한 강사들에게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예술교육의 사례도 듣고, 나와 타인의 관계를 이해하고 서로의 마음을 열기 위한 여러 가지 놀이들을 했지만 그 중 인간 고리 만들기 체험을 할 때에는 마치 내가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인간 고리를 만들 때 처음에는 자신만 생각하다가 점차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로 스스로 변했다. 다음 사람이 접근하기 쉽게 연이어 고리를 만들어 예술적 감성을 익혔다. 다양한 창의력을 발휘하여 타인의 몸짓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도 배우고 익혔다.
실습 사이사이에 나의 몸을 만지며 푸는 프로그램 또한 색다른 체험이었다. 발가락 마디부터 시작해서 가슴까지 이어지는 온 몸 풀기를 배우며 자기를 돌아보았다. 자기를 긍정하며 대화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익혔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한동안 멍 때리며 쉼을 얻는 편안한 시간도 경험했다. 몸을 푸는 것은 감성 개발 활동을 위해 가장 기초가 되는 준비 단계였다.
그리고 두 명씩 짝을 이루어 인사를 한 후 음악에 맞춰 한 사람은 눈을 감고 다른 한 사람은 눈을 뜬다. 이어 눈을 감은 파트너가 행복한 여행이 되도록 눈뜬 사람이 적극적으로 이끌며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안무 활동도 인상 깊었다. 왈츠 리듬에 맞춰 자연스럽게 사뿐사뿐 춤사위를 추며 환상 속의 여행으로 이끌려 가는 행복한 얼굴 표정들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서로 눈을 뜨고 마주본다면 어색하고 불편했을 텐데, 여행하는 사람은 눈을 감으니 시선이 신경이 쓰이지 않아 자기표현에 있어 자연스러웠다.
누구나 기쁘고 신나면 웃고 어깨춤을 추며 콧노랠 부른다. 이건 학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예술적 본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무용은 전문 무용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 같은 사람과는 거리가 먼 영역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번 연수를 통해 무용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아니 춤이 이렇게 쉬울 수가! 아니 나 같은 사람도 되네!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이건 몸치냐 아니냐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이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 행복했고 누군가에게 꼭 이 연수를 추천하고 싶다. 연수 시간도 언제 갔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갔다. 모든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그런지 너무 집중력이 높고 적극적이었다. 가르치는 강사님들 역시 모두 열정적이었다.

남인우 연출가가 연극을 하게 된 이야기는 지금도 선명하다.
“저를 연극의 길로 이끈 것은 고등학교 때 첫 발령받은 한 동아리 담당 선생님 때문이었어요. 연극을 할 때마다 그분은 지칠 줄 모르고 그냥 쫓아다니면서 늘 챙겨주시고 뒤에서 환호하고 박수치며 응원해 주셨어요. 전공도 연극과 무관한 지구과학 선생님이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 연극 공연이 잘 안됐어요. 그때에도 그 선생님은 우리를 위해 무대 뒤에서 조명 기구를 작동하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저는 그 선생님 앞에서 저도 모르게 저 자신이 싫었는지 눈시울을 붉히며 무례하게 화를 쏟아낸 적이 있었어요. 제가 예전에 그런 사람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너무 죄송하고 그 은사님이 너무 보고 싶어요!”
교사의 한마디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뀐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서 있는 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라는 정현종의 ‘방문객’ 시 구절이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

이번에는 무엇보다 아꼈던 제자 교사를 만났다.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았던 어린 고등학생, 지적 호기심을 갖고 항상 열심을 보였던 이미지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그가 했던 질문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가 어엿한 초등교사가 되어 속초에서 뜻을 같이 하는 교사들과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내 안에 잠재되어있는 예술적 감성을 발견했다며 마냥 행복하게 교직생활을 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같이 활동하는 선배 교사들이 제자를 극진히 아끼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왠지 내가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정년을 몇 년 앞둔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삶을 관조해 보기도 하며, 봄의 새싹처럼 갓 교단에 선 파릇파릇한 후배교사들의 밝은 미소와 열정에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했다. 룸메이트였던 춘천의 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직 생활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배운 것들을 조금이라도 학교 현장에 적용하여 아이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싶다. 어떤 것들은 아직 내 안에서 좀 더 숙성이 필요한 것들도 있다. 때가 되면 익혀 나오리라 믿고 내 속에 흔들리는 자침을 가진 나침판을 하나 두었다. 흔들리긴 하지만 없어지지 않을 예술적 감성을 지키고 싶다.

연수 마지막 시간에는 문득 지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그들의 당당한 얼굴과 눈빛에 존경을 표한다. 돈보다는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본 기사는 재단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