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삶 속 문화가 핀다

인간은 꽃에서 나왔다

김진묵 / 음악평론가, 김진묵트로트밴드 대표, ‘18.9月

화출론(花出論)을 아는가? ‘태초에 인간은 꽃에서 나왔다’는 주장이다. 어처구니없는 억지지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정(假定)인가. 이는 나의 학설(?)로 인간을 아름다운 존재로 파악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 내가 그리스 신화나 성서의 저자였다면 ‘인간은 꽃에서 나왔다’고 썼을 것이다. 꽃에서 나온 인간들은 평화롭게 살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평화’라는 단어가 없다. 평화가 일상이기에 이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 평화를 삶의 본질로 파악하는 이들은 모두 꽃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꽃사람’들은 노래한다. 생명을 찬양하고, 환희의 춤을 춘다.


60년 전, 육이오 전쟁의 황폐함이 남아있는 효창공원. 초등학교 입학한지 며칠 되지 않은 날, 새로 친구가 된 녀석들과 차가운 봄바람이 부는 언덕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황량한 무덤가를 지나는데 맞은편에서 한 녀석이 오고 있었다. 우리는 녀석을 둘러쌓다. 몰매를 가했다. 죄목은 ‘금양초등학교.’ 왜 금양초등학교를 다닌단 말인가, 우리는 효창초등학교를 다니는 데-. 5년 후, 나는 청운 초등학교 철봉 밑 모래밭에서 몇 몇 녀석들에게 둘러싸였다. 방과 후, 텅 빈 운동장-. 이번에는 녀석들이 진리였다. 나는 코피를 흘렸다. 입술도 터졌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경전인 구약성서(타나크: תנ"ך Tanakh)는 이스라엘 민족의 고대사다. 처음 성경을 펼친 이들은 온통 살육의 이야기로 가득 찬 내용에 놀란다. 이상향을 기대하고 안식을 얻기 위해 성경을 펼쳤건만… 진동하는 피비린내에 당혹감을 느낀다. 잔인한 살육은 이스라엘 민족 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겪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살 가치가 없는 생명’(독일어: Lebensunwertes Leben)이라는 생명박탈 프로그램이 있었다. 누군가의 삶을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집단 학살한 프로그램이다. 대상은 정신질환자, 만성질환자, 동성애자, 비협조자, 범죄자, 장애인, 혼혈아,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여호와의 증인, 유대인, 집시, 기타 유색인종 등이었다. 나치가 디자인한 이 프로그램은 나치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구성 요소였다. 이는 ‘우월감’이라는 질병에서 비롯된 범죄였다. 얼마 전 항공사에서 일어난 소요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이들이 만행을 저지르며 ‘옳은 일은 한다’고 생각하는 것. 인류는 약한 초등학교, 약한 마을, 약한 민족, 약한 종교, 나와 다른 음식을 먹는 사람,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육하는 동식물에게 지속적으로 고통을 가하고 있다.


1939년, 2차 대전이 터진다. 이듬해,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 – 1992)은 위생병으로 참전, 포로가 된다. 독일 괴를리츠(Görlitz) 근처 스탈락(Stalag 나치가 만든 포로수용소) 8A동에 수용되었다. 고통과 굶주림에 환청과 환색을 경험한다. 어느 날, 독일군 장교가 그를 불렀다. 장교는 오선지와 연필, 지우개를 내밀었다. ‘작곡가라는 이야기를 들었소. 곡을 쓰시오. 오늘부터 노역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장교는 꽃사람이었다. 이데올로기 따위는 없었다.

메시앙은 차가운 수용소 막사에서 오선지를 채워 내려갔다. 포로 중에는 첼로, 클라리넷, 바이올린 연주자가 있었다. 1941년 1월 15일, 27번 막사에서 독일군과 400여명의 포로가 지켜보는 가운데 ‘첼로, 클라리넷,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세상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Quatuor pour la fin du temps)가 초연 되었다. 메시앙 자신이 피아노를 맡았다.

악보 위에는 묵시록 10장의 구절이 적혀있었다. ‘…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시간이 없으리니(fin du temps)….’ ‘시간의 끝’, 세상의 종말이다. 이 곡은 제목 그대로 <시간(temps)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라고도 한다.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넘어오며 인류는 정착했다. 잉여가 생겼다. 독점하려는 계층에 의해 계급이 생겼다. 부조리가 축적되고 인간 사이에 반목이 생겼다. 결국 오랜 세월 축적된 불만이 폭발했다. 세계는 전쟁터가 된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대량학살 시대가 열렸다. 1차 대전(1914 – 1918)에서 유럽의 젊은이 대부분이 죽었다. 2차 대전(1939 – 1945)에서는 지구상 모든 어머니들이 아들을 잃었다. 그 사이인 1918년부터 1939년까지를 전간기(戰間期)라고 한다. 전쟁과 전쟁 사이의 쉼표였다.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 시간의 끝을 예감했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슬픔과 고통의 감정을 표현했다. 인간의 본질을 직시하는 사실주의(realism), 자칫 유치해 질 수 있는 신비주의(mysticism)도 등장한다.

메시앙도 종말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상상력의 표현이었다. 종말 이후에 오게 될 새로운 시작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한다.​​종말은 역사에서의 탈출이자 도약이었던 것이다. 곡은 메시앙이 평생 매료되었던 새소리를 묘사한 선율로 시작한다. 마지막은 부드러운 피아노의 음과 영원 속으로 사라지는 바이올린 소리로 끝이 난다. 8악장 구성.

<세상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초연 후, 독일군 장교는 메시앙을 프랑스로 돌려보낸다. 메시앙은 파리음악원 교수가 된다. 그는 전쟁 이후 새로움을 찾아 헤매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라오!
좀 더 즐겁고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환희여! 환희여!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
우리 모두 정열에 취해 빛이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자
신성한 그대의 힘은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다시 결합시키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

‘즐겁고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르며 빛이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자.’ 베토벤 <합창교향곡> 4악장 도입부다. 인류 최고 화합의 메시지인 <합창교향곡>은 인류가 남긴 곡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된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다. 쉴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 -1805)의 시를 베토벤이 약간 수정했다.


‘태풍의 눈’은 고요하다. 태양이 빛나고 새들이 날아다닌다. 다음 순간 태풍이 몰아친다. 본질은 무엇인가? 태풍인가? 안식인가? 평화인가? 전쟁인가? 평화란 무엇인가? 전쟁과 전쟁 사이의 휴지기인가?

수용소에서 인류 화합의 메시지가 나오듯 우리 가슴 속 깊은 곳에는 평화가 있다. 나는 ‘평화가 본질’이라고 믿는다. 수용소에서 메시앙에게 펜과 오선지를 준 독일군 장교, 그는 ‘꽃사람’이었다. 소중하게 얻은 남북한 평화무드가 조심스레 성장하고 있다. 민족은 통일을 향해 가고 있다. 민족이 화합하고 미국과 세계가 활짝 웃는 ‘꽃사람’ 시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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