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사람과 현장이 있다 | 현장이 있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법

노만의 / 판부문화의집 사무국장, ‘18.9月

드넓은 논 옆 잘 뻗은 신작로와 도랑을 옆에 끼고 한참 들어가면 익숙한 동네가 하나 있다. 여름 내내 지속된 폭염을 한 번에 해갈해주려는 듯 며칠째 시원한 비가 내리고 있던 어느 날, 산자락에 위치한 흥대마을을 찾았다. 오후의 흥대마을 흥업3리 마을회관에서는 어르신과 아이들이 널찍한 상을 두고 마주 앉아있는 낯선 풍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한 마을이 어린이 세대, 청장년세대, 어르신 세대로 나뉘어있다면 중간자 역할을 하는 청장년세대는 사회 활동을 위해 마을을 떠나기 십상이다. 때문에 마을에 남은 어르신 세대와 어린이 세대의 교류가 쉽지 않다. 각자의 세대에서 고립되어 지낼 수 있는 문제점을 누군가는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만다라AT연구소(김성인 대표)의 활동은 의미 있다. 마을의 세대 간 단절로 인한 수직적인 문제점을 문화예술교육으로 풀어 세대 간의 소통을 이끌어 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흥대마을 의 세대 간, 이웃 간 소통 사업을 시작했는데 표면적인 목표는 잘 이뤘지만 다른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지역 어르신들과의 유대관계가 좋아질 때 쯤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할머니들 간에 오래된 갈등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죠.”(김성인)

만다라AT연구소의 초기 목표는 마을 안에 고립된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함께 이야기하고 활동하면서 세대 간 갈등을 풀어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깊숙하게 깔려있는 다른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김성인 대표는 새롭고 의미 있는 목표를 세웠다.

오래된 마을은 어르신들 간에 갈등이 생기면 드러내기보다는 마을의 평화를 위해 조용히 삭히는 쪽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을 곳곳에는 그 마음들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지뢰처럼 산재 되어 있었던 것 같다.
흥대마을의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김성인 대표는 마을 구석구석 역사와 추억을 더듬어 옛날의 관계를 함께 추억하고 좋았던 관계를 되찾고 안 좋았던 관계를 청산하며 현재를 돌아보고 함께 어우러지도록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로 이어진 이런 활동은 온 마을이 하나임을 복기한다.

흥대마을 마을회관 2층 방에 오늘도 마을사람들이 약속된 시간에 모여 있었다. 낡은 옷, 좋은 옷, 잘 차려입은 옷, 집 앞으로 마실 나오듯 입은 옷 등 다양한 옷을 입은 어르신들과 해맑은 아이들이 마을회관 방안에 모여앉아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이룬다. 허리가 아파서 높게 앉은 할머니, 벽에 등을 기댄 할머니, 낮은 의자에 앉은 할머니들을 보니 오랜 시간 농사일로 인해 지친 몸을 다시금 보게 된다.

넓은 상위에 도화지를 놓고 그 위에 다양한 크기의 건물 모형을 올려놓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하늘에서 바라보듯이 재현해 보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알고 있는 마을 모습이라 어르신과 아이들 모두 관심이 많다.

집과 집 사이에 길을 그리고 각자 생각한 마을의 구조물을 표시하니 진짜 마을이 완성되었다.

“누구 집에 가고 싶어요?”

모두가 조용해진다. 아마 한 번도 가보지 않아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집이나 자주가 다가 못 가던 집일 수도 있지만 다들 마음속으로 대문 앞에 서있는 듯했다.

한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전 김** 할머니 집에 가고 싶어요.”
“할머니, **가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뭐라고 하실 거예요?”

할머니는 갑자기 찾아온 마을에 어린 손님이 신기한 듯 말이 없었다.
그러시다가 수줍게 “밥은 먹었냐?” 하신다.

“아니요”
“그럼 맛있는 거 줄 테니 올라와라”

할머니와 손자뻘 아이의 대화는 자연스러워졌다. 뭐라도 주고 싶은 할머니 마음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순간이다.

“그다음 이**은 누구 집에 가고 싶어요?”
또다시 모두가 숨을 죽였다. 선택 받고 싶은, 아니면 선택 하고 싶은 사람이 다들 한 두 명 씩 있는 듯이 할머니들은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난 갈 데가 없어….”
“에이, 왜 갈 데가 없어. 여기 집이 이렇게 많은데”
옷을 잘 차려입은 할머니가 참견을 놓았다.

종국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열정적으로 ‘마실가기’ 놀이에 심취해 여기저기 마을을 놀러 다녔다.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이 많았는지 ‘마실가기’가 한창이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무렵, 할머니들은 무척이나 흡족해 하셨다. 할머니들과 아이들이 둘러앉아 마을을 그리고 서로 어느 집에 놀러갈지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실제로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집에 놀러가고 맞이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뒤에 걸려있는 플랜카드의 문구처럼 <추억따라 마실수다>가 할머니와 아이들, 서로서로에게 좋은 작용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평화는 분쟁이나 일체의 갈등 없는 평온함이 아니라 복작복작하고 시끌벅적한 일상을 ‘함께’ 하고 서로 도와 헤쳐 나가는 모든 과정에서 각자의 입장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지고 그 길을 통해 서로에게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