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사람과 현장이 있다 | 현장이 있다

이기적 이상주의를 넘기 위해 시대정신을 거부하라!

전통시장과 청년의 만남

채효정 /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18.7月

대체 청년의 희망이란 어디서 생겨날 수 있을까. 낡은 것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키고 그렇게 나이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젊은 세대에 주지 못하는 사회에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춘천 육림고개에는 육림시장이란 곳이 있다. 아니 이제는 ‘시장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고갯길에 시장이라니… 그런데 시장이 어디 있다는 거지?’ 나는 연신 갸우뚱거리며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만큼 쇠락의 흔적으로만 남은 시장. 지금도 곳곳에 ‘보증금 1000에 월세30’같은 글귀가 나붙은 빈 점포가 눈에 띈다. 시장의 활기는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법인데 평일 낮 시간엔 행인들의 발걸음을 찾아보기 힘들다. 파리채를 쥐고 앉아 있는 시장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주말에나 좀 찾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흑백영화 같은 낡고 초라해진 이 고갯길에 어울리지 않는 색감으로 중간 중간 툭툭 튀어나오는 가게들이 있다. 육림객잔, 블루스스튜디오, 구스타프케이크, 불란서 홍차, 디어줄리엣, 베러댄잼, 플로티, 루 노스탤지어, 프로이데 등등의 낯선 간판들이 올챙이국수집과 일미기름집, 양순네보신탕과 강냉이 튀깁니다 같은 오래된 간판들 사이에 섞여있다. 청년몰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육림고개에 새로 입점한 청년 점포들이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여기도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풍경.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어째서 시장(市場)은 청년을 좋아하는 것일까.

재래시장에 청년점포를 입점 시켜 쇠퇴해가는 시장과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아이디어는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의 성공에서 시작되었다. 남부시장 역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대형마트들에게 손님들을 뺏기고 큰 화재사고까지 나면서 거의 몰락해가고 있던 재래시장이었다. 그러던 중 ‘이음’이라는 사회적 기업이 2011년 문체부에서 공모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2012년에 남부시장 6동 2층을 청년 창업 인큐베이팅 공간으로 설계한 것이 ‘시장-청년몰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재래시장과 청년점포의 결합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시장 갤러리나 일일야시장 등 청년들이 펼친 프로젝트는 신선하고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여 사람들의 발길을 다시 시장으로 이끌었다. 남부시장이 전주의 핫플레이스로 되살아나고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유명세를 떨치자 전국의 지자체와 전통시장 상인회는 이곳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고, 이 프로젝트는 전통시장 쇠락과 청년 실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대안으로 각광 받았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전국적으로 어느 도시든 재래시장마다 청년몰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시장은 청년들이 창업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구로 ‘영플라자’, 수원 영동시장 내 28개의 청년 점포 ‘28청춘’, 부산 국제시장 ‘609청년몰’, 경주 ‘욜로몰’, 강화 중앙시장 청년몰 ‘개벽 2333’ 등 알려진 청년몰만 해도 꽤 된다. 그러나 속사정은 신통치 않다.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청년몰 이야기도 별로 들려오지 않는다. 최근 뉴스에 보도되었던 인천 용현시장 내 청년 드림몰은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지원이 끊기자 10개 점포 중 한 곳만 살아남았다. 인근의 동인천 중앙시장 내 청년몰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는 않다. 전주 남부시장은 상권이 되살아나자 임대료가 올랐고, 초기 시장 부흥을 위해 함께 협력했던 상인회와 갈등이 생겼다. 도시재생사업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이 여기서도 나타났다. 시장에서 장사하며 살아왔던 오래된 상인들과 원주민들, 자산 없이 열정으로 시작했던 청년 창업가들은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시장을 떠나야 했다. 안되면 안되는 대로, 잘되면 잘되는 대로, 청년들의 진입로는 좁아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2017년 250억을 들여 전국 16개 전통시장에 340개의 청년점포를 세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부 예산이 풀리는 곳에서 호황을 누리는 것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창업 컨설팅 회사들과 건축, 재개발, 인테리어 사업자들뿐이 아닌가 싶다.

청년몰의 현주소는 개점휴업?

최근 여러 기회로 재래시장에 입점한 청년몰을 현장조사 겸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본 현실은 들은 것보다 더 참담했다. 찾아간 곳 어디서나 손님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개점휴업 상태인 곳도 태반이었다. 가끔 보이는 손님들도 구경만 하고 갈 뿐 선뜻 지갑을 열지는 않았다. 청년몰 어디나 대개 비슷비슷한 아이템을 취급하고 있었다. 수제 비누, 수제 향초, 수제 잼, 수제 청, 수제 쿠키, 수제 맥주, 수제 공예품. 나는 그 ‘수제’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만큼 가슴이 아팠다. 수제란 공산품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과 정성과 품이 들어가야 되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값이 저렴하게 나올 수가 없다. 품과 공력에 비해서는 너무 싸고, 지갑이 얇은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선뜻 살 수 없는 물건들이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누가 이런 다소 비싼 값의 ‘수제품’을 재래시장에서 선뜻 구매할 수 있을까. 청년들 자신도 이미 가성비를 최우선의 구매 기준으로 삼고 있고, 쉽게 사서 쓰고 버리는 값싼 물건들로 가득 찬 ‘다이소’ 같은 매장이 도시나 시골 할 것 없이 목 좋은 곳마다 들어서 있는데 말이다. 청년 장인의 꿈과 시간과 열정의 창조물들 역시 농부의 땀방울인 재래시장의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대형마트의 ‘가격’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경쟁 상대는 재벌기업의 마트의 물건들만이 아니다.

‘청년’은 ‘청년’과 경쟁한다. 청년몰의 상품들은 초창기에는 이색적이었고 눈길을 끌었지만 비슷비슷한 청년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금새 소비자들에게 진부해져버린 것들이 되었다. 청년창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어떻게 경쟁해야 할까. 새로움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은 스토리를 판다. 취급하는 품목 자체에서 차별성이 생기지 않으니, 그 물건에 담긴 이야기로 차별성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청년의 창조물은 그 청년의 특별한 인생을 말해주는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 손님들의 눈길과 발길을 끌기 위해서는 그 넓고 넓은 시장 공간 안에서도 돋보일 수 있는 자기의 인생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자소서 인생’이라 자조하던 청년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대입 준비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그렇게 힘들었거든요. 대학에 와서도 그랬어요. 자소서가 화려해질 때마다 왜 진짜 나는 초라하게 느껴지는 걸까.” 세상에 특별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다들 고만고만한 비슷비슷하게 살아온 삶인데 세상은 자꾸만 비교불가한 자기만의 독창성을 요구한다. 최근 돌아본 재래시장 청년몰의 트렌드는 융합형 점포였다. 맥주와 옷, 꽃과 커피, 차와 장신구, 식당과 사진관 등 서로 다른 이질적 상품들을 같은 장소에서 뒤섞여 파는 것이다. 신선한 관점과 시도지만 사업적 돌파구가 될 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에 금방 밀려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교훈이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출구전략을 짠다

각종 지원정책들은 실패할 때마다 실패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 해결을 모색하기보다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출구전략을 짠다. 그때마다 청년들은 늘 ‘새로운 새로움’을 찾아야 한다.
육림시장은 어떨까. 수제 체리케이크와 유기농 얼그레이티는 아주 맛있었지만, 낡은 옆집 반찬 가게에서 파는 계란 한판보다 값이 비쌌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독일 유학파 사장님이 직접 만드는 장신구는 작품값 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싸서 가격을 물어본 내가 속이 상할 정도였지만, 옆집 뻥튀기 몇 개를 팔아야 살 수 있을까. 그들의 열정과 노력과 창조의 결실을 계란 값이나 양파 값 혹은 감자 값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웃 상점들과의 이 부조화를 쉽게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 시장에서 전성기와 쇠락기를 모두 함께한 오랜 이웃 상인들은 어떻게 될까. 깨끗하고 반짝이는 가게들이 보기 좋다고 했지만 이미 그들의 존재는 그 반짝거림 속에서 지저분하고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이 거리가 번성하면 번성할수록 점점 더 그들은 여기에서 사라져야할 존재가 되어갈 것이다. 그러나 시장과 함께 쇠락해진 나이든 상인들은 청년들을 걱정한다. “우린 이미 망했으니까, 젊은 사람들이라도 잘되었으면 좋겠는데.” 쓴 소리도 조심스럽게 들려온다. “아 저 가게들은 시에서 지원을 해줘서 저렇게 고쳐준다고요? 우리는 여태 십 원 하나 받은 거 없어요. 우리 가게는 여기도 부서졌고, 여기도 수리해야 하는데...” 인적 뜸한 거리에서 문을 열고 있는 시장 상인들이 떠나지 않고 매일 문을 여는 이유는 아마 아직은 임대료가 싸기 때문일 것이고, 아직은 평생을 만나 의지하며 살아온 이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거리에 한 집 건너 한 집으로 오래된 가게들이 허물어지고, 유럽풍의 인테리어를 한 말쑥한 점포들이 들어서고 있다. 시장은 어떻게 될까.

“여긴 이미 오래 전에 망했어요. 살리는 방법? 마트를 없애야지. 여기 오던 사람들 전부 거기 가 있는데.”
시장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인들은 답을 알고 있다. 어쩌면 앞날의 운명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는 이제 끝났어. 사람들이 안와. 여기를 왜 오겠어. 모르지, 저런 거라도 생겨서 사람들이 찾아와서 젊은이들이라도 잘되면 좋지.”
“우리는 어떡하냐고? 우리는 이제 죽어야지 뭐, 하하하”

청년들은 어떻게 될까.

“1년 동안은 임대료를 지원받는다고 해도, 그 다음부터가 걱정이죠. 부끄러운 얘기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며 지난 3개월간 매출이 50만원이었어요. 그런데 더 나아질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아래층에는 청년점포에 선정되고 인테리어를 진행하다가 입점을 포기했어요.”
새로운 점포들이 입점하고 개업 이벤트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또 다른 청년점포의 유리창에는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쉽니다.’라는 종이가 붙어있다. 창업하는 만큼 폐업하고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시장의 청년몰을 돌아보며 제일 가슴이 아팠을 때는 보기에도 정말 뛰어난 청년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때였다. 전화번호만을 남긴 채 문이 닫혀 있는 가게의 쇼윈도 너머로 ‘아, 저건 정말 예술작품이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사진만 찍고 돌아서면서 나는 깨달았다. 어쩌면 이 ‘젊은 거리’의 용도는 결국 사진을 찍기 위한 포토존이 아닐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 누추한 실제의 세계를 대신하는 가상 세계의 포토라이프존이 된지 오래다. 그런 현실에서 서울의 서촌이나 북촌을 벤치마킹한 전국 곳곳의 도시재생 사업지구 역시 그 ‘포토-라이프 세대’를 위한 세트장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낡은 것이 부정되고 새로운 것이 무한히 찬미되는 ‘혁신 자본주의’의 시대에 ‘청년’은 낡은 것을 지우는 새로움의 상징으로 소모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장을 젊게 만든다’는 표현 속에 감추어진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그제서야 나는 ‘왜 시장은 청년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답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아마도 청년이라는 표상이 재래시장이라는 낡고 초라한 장소를 ‘미래, 젊음, 혁신, 활력’과 같은 이미지로 재생시키는데 맞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년이란 상징은 결국 일종의 낡고 초라한 거리의 세척제이자 장식품으로서 소모되는 것은 아닐까.

영원한 젊음과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라는 시대정신을 거부하라.

원래는 청년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부탁받았고 그렇게 써야했다. 그런데 실제로 목격한 청년창업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엊그제는 청년 창업 교육을 오래 해왔고, 그만큼 실패 사례를 많이 보아온 분에게서 청년들에게 주입하는 헛된 희망이야말로 기성세대의 희망고문이요, ‘이기적 이상주의’라는 말을 들었다. ‘이기적으로 이상적’이란 이 모순적 표현이 너무 와 닿았다. ‘청년들을 위해서’라며 ‘이상적인 사업’을 기획하고, 이 자본주의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가 로또 당첨보다 더 희박한 가능성을 꿈과 희망과 의미와 가치로 포장하고 권하면서, 그 경제적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대체 청년의 희망이란 어디서 생겨날 수 있을까. 낡은 것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키고 그렇게 나이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젊은 세대에 주지 못하는 사회에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영원한 젊음과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라는 시대정신은 결국 자본주의적 신상소비의 명령에 다름 아니며, 그러니 그것에 소모되는 청년은 이제 거부하자고 말하고 싶다. 희망은 거기서 시작될 것이다.

[본 기사는 재단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