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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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살리는 청년, 문화예술교육의 힘

안병근 / 산너머음악공방 대표, ’18.7月

평창에는 고향을 지키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청년커뮤니티 <별난청년들>이 있다. <별난청년들>은 문화예술 분야 외에도 농업, 제과제빵, 외식업, 사회복지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며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고 지역의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평창의 청년 네트워크다.

강원도 평창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나는, 고등학교 밴드동아리 <대일밴드>의 기타 주자로 활동할 만큼 어려서부터 음악과 악기 다루기를 즐겼다. 동아리라고 해봤자 학교 강당 한 편에 있는 창고에서 학생들끼리 독학으로 연습을 이어가던 수준이었지만. 마침 그 때 지역 폐교를 활용한 문화공간 <감자꽃스튜디오>가 생겼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시범사업인 학교문화예술교육 사업을 통해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게 되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사업 대상이 아니었으나, 교장선생님의 관심과 지지로 관악반, 사물놀이 그리고 밴드 동아리까지 지원을 받았다. 더불어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협조 덕에 학생들이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아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사업으로 밴드 동아리 활동을 위한 좋은 시설과 장비, 전문가의 체계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었고 실력도 점차 늘게 되었다. 차츰 학교 분위기도 변하게 되고, 평창의 다양한 축제와 행사에도 지역민의 일원으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평창은 여느 농촌처럼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학교에서 음악과 미술 수업 속에서 예술을 접하거나, 그나마 가정형편이 나은 학생들은 학원에서 교습 받는 게 고작이었다. 그랬던 평창에 예술가들이 들어와 일반적인 강의 수업이 아닌 흥미로운 방식의 수업을 진행했을 때, 단순한 기술 습득 이상의 창의적 즐거움을 맛 볼 수 있었다.

밴드 동아리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나는 기타가 좋아 기타 전공으로 실용음악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진로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 대표님의 조언으로 문화예술경영학과로 재입학했고, 음향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현재는 음향전공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지역에서 음향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작곡도 하고 있다. 2017년에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업을 통해 지역 청소년들과 만나 밴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진행,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연출팀 스태프 등으로 활동하며 바삐 움직였다. 돌아보니 문화예술교육의 수혜자였던 학생에서 이제는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지역민과 나누는 청년이 되어있었다.

이처럼 평창에는 나를 비롯해 고향을 지키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청년커뮤니티 <별난청년들>이 있다. <별난청년들> 은 문화예술 분야 외에도 농업, 제과제빵, 외식업, 사회복지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며 지역의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멤버들은 전공을 살려 새로운 접근과 다양한 시각으로 평창의 문화와 경제에 새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 나도 음악과 목공을 사업모델로 하는 <산너머음악공방>을 열었고, 최지훈은 <베짱이농부>로 농촌관광, 문화기획, 문화예술체험 강의를 하고 있다. 최효주와 최승수 남매는 <브레드메밀>이라는 로컬 베이커리를 전통시장 골목에서 열었고, 최근에는 지역 음료 브랜드인 <평창다반사>를 추가로 만들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김명진은 <어진육화> 라는 식당을 개업해서 지역에서 볼 수 없던 신메뉴와 지역생산 농산물을 활용한 음식을 개발하고, 향토 먹거리를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별난청년들>의 멤버들은 어린 시절부터 문화예술을 접해서인지 축제, 파티, 장터 등에서 판을 펼치고 공연과 전시 등 문화예술기획을 통해 스스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군청, 교육청, 자원봉사센터 등에서 추진하는 사업과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그들의 청소년기 문화예술 놀이터이자 아지트였던 <감자꽃스튜디오>에서 지역문화와 청년활동의 플랫폼 역할을 위한 두 번째 작업에 기획운영 주체로 참여하여 세대교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게다가 지역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발판삼아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청년혁신가 일원으로 타 지역 청년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성장을 꾀하고 있는 참으로 별난 청년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별난 청년들이 될 수 있었을까? 나의 경우, 고등학생 때 접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그것을 전공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길의 전문가로 나아가고 있다. 이 배경에는 문화예술정책 태동기에 평창에서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행운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했던 문화예술의 힘이 작용했다고 본다. 이처럼 나와 같은 농촌의 청소년들에게는 물론,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은 더 많은 꿈과 희망을 품게 하는 중요한 지지대 역할을 한다. 나에게 그 과정이 이후 나에게 큰 자산이 되었으며, 후배들과 지역사회에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여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문화예술교육은 한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준다. 물론 이는 하루아침에 뚝딱 이루어질 수는 없다. 다만, 어려서부터 꾸준히 문화예술을 만날 수 있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평창에는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이 많다. 나와 <별난청년들>은 그 뒤를 묵묵히 지지해주는 지역의 선배로서 최선을 다 할 것이며, 더 많은 곳에서 고향을 지키며 개인의 성장을 이루는 청년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