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삶 속 문화가 핀다

다만, 다름이 있다

박주환 / 다큐멘터리 감독, ’18.7月

이 영화는 2009년 9월부터 2010년 9월까지, 1년 동안 주인공들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촬영후 편집하여 제작하였다. 9년 전 촬영되었지만 2018년을 살아가는 한국사회 청년들에게도 공감되는 내용으로 이상과 현실, 그리고 자아실현에 대한 고민이 잘 표현되었다. 이 영화를 이후로 <홀리워킹데이>, <파밍보이즈> 등 이국에서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소재로 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지곤 했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현실을 촬영한 다큐멘터리이자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다. 호재, 현학, 하비, 휘는 영화과 동기이다. 그들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상의 대부분을 아르바이트에 할애한다. 그들은 모두 좋은 학점과 사회가 원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 또래들과 경쟁해야 하는 삶에 지쳐간다. 영화 초반 주인공들이 처한 유럽 생활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에서처럼 무기력하고 ‘잉여’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주목한 건 영화에서 호재의 고백이다. “교수님 허락을 받지 않고 영상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구도 강요한적 없지만, 누군가 정한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자유가 그리웠을 것이다.

영화 제목에서부터 주인공들은 자신들을 ‘잉여’라고 표현한다. 필요하지 않은 혹은 남아 있다는 의미의 ‘잉여’를 스스로에게 붙였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명확한 목표와 꿈을 가지고 대학에 진학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바쁘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공부도 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잉여라고 표현한 것. 이는 어쩌면 교수와 선배들이 해주는 취업 걱정을 들으면서도 학점관리, 영어공부, 자격증 취득, 대외활동 등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지 않는 본인들을 ‘잉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 내면에는 무엇을 해야 하겠다는 압박감이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거대한 무기력함으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영화는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다 모으지 못해, 가지고 있는 돈으로 유럽행 비행기를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막막한 현실을 잊고 꿈을 쫒는 새로운 방법을 시작한다.”는 포부로 그들은 출발한다. 계획과 목적은 명확했다. 재능을 이용해 숙박업체 홍보영상을 제작해 주면 숙식을 제공받고 머무른다. 최고의 뮤지션을 발굴해내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이 모든 과정을 영화로 만든다. 스스로 선택으로 시작하고, 인정받고, 꿈을 이루는 계획이다.

처음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한다고 생각한, 각자 다른 재능을 가진 7명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현실 속 고단함에 갈등하고 계획도 뜻대로 실행되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돈도 조금씩 떨어져 불안감이 커진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느끼는 불안과 좌절은 처음 해보는 히치하이킹 성공의 희열로 잠시 잊는다. 점점 요령을 터득하며 배우는 모든 순간이 스스로의 방법으로 극복하는 뿌듯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영화는 여행을 시작한 7명 청년들이 고난을 딛고 성장하는 단순한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는다. 영화중반 쌈바, 미란, 상철, 3명의 디자이너가 중도 하차를 결정하고 떠나게 된다. 감독은 프랑스 믈랭으로 가는 히치하이킹을 위해 조를 나눈 것이 3명이 다른 선택을 하는 계기라고 자책한다. 하지만 중도하차를 결정한 쌈바는 “너희 4명은 우리 3명과 다르게 여행을 완주하도록 만드는 동기와 환경이 있다.”고 말한다. 공동의 목표로 여겼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은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3명의 디자이너에게 현실의 불안과 힘듦을 계속해서 참을만한 동기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쌈바, 미란, 상철 3명의 중도 하차는 인내로 얻을 결과가 자신들에게 큰 의미가 없어서다. 기성세대가 청춘을 위해 쓴 자기계발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제목처럼,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속담처럼, 성공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로써 얻는 결과가 자신들에게 큰 의미가 없거나 노력의 대가만큼 보상과 성취가 없다는 것이 명확해진 그들의 상황에서, 여행을 중단하는 선택은 현명해 보인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고, 앞으로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을 3명에게 다큐멘터리 영화 완성이라는 공동목표를 이루기 위해 참고 견디며 노력한다고 해도 돌아올 이익은 없다는 것이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 성장이 내 삶에 직접적인 혜택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다.

언제부터 한국사회 청년들을 취업, 결혼, 출산 등등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사는 ‘N포 세대’라 부른다. 기업인사담당자들은 책임감과 성실함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저성장, 실업, 비정규직 등 근본적인 시대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보단 무기력한 세대문제로, 더 나아가 노력하지 않는 무능한 개인문제로 치부한다. 대한민국 1인당 GDP는 매년 올라 3만을 넘겼지만 주변에 그 정도의 연봉을 받는 사람은 드물다. 국가와 회사는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구성원들의 삶은 같이 성장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20대 청년 4명이 자신들 재능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찬양할 수도 있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의 새로운 모델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꿈을 위해 노력하고 성공한다.’ 영화 내용 중 언론이 주인공들에게 관심을 두고 보도한 부분도 이 지점이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과 재능은 중요하지만 모든 걸 해결 할 수 없다. 유럽생활 46일 만에 모든 걸 포기하고 한국으로 떠나려는 순간 호재, 현학, 하비, 휘에게 희망이 되어준 건 재능과 노력이 아닌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도움이었다. 무료 숙식을 제공받고, 교통비 없이 이동할 수 있던 히치하이킹이었다. 이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영화 후반부에 감독은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열정이나 노력만이 아니라 자신들을 믿고 신뢰해준 사람들의 호의와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인공들의 재능을 인정받기 전까지, 국적도 나이도 달랐던 여러 사람들이 제공한 도움으로 생활을 이어나가며 버틸 수 있었다.

영화는 어느 순간 감독이 세웠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 제작한 숙박업소 홍보영상은 경력이 되었고, 그들의 재능은 소문이 났다. 더 이상 노숙을 할 필요도, 히치하이킹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식당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밥을 먹을 수 있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편히 앉을 수 있고, 누울 수 있는 환경,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감독의 말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영국에서 뮤지션을 발굴해내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게 된다.

계획이 조금씩 진행되며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같은 일들을 반복하며 조금씩 지쳐간다. 작은 것에 즐거워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무기력한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몇 달 전 히치하이킹을 처음으로 성공했을 때, 타인의 호의로 얻은 햄버거로 배를 채웠을 때, 세상 모든 것을 다가진 것처럼 행복해 하던 그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목표인 뮤직비디오를 완성한다고 해서 삶이 한순간에 행복해지고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것 같다. 고된 1년의 과정을 견디고 마지막 목표인 영화를 만들고 난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삶은 계획한 하나의 성공으로 한순간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하나 더 만들기로 한 호재의 요구가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현학, 하비, 휘는 논의 끝에 호재의 결정을 지지하고 함께 한다. 이들은 계획한 목표를 모두 이루기만 하면 끝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1년의 과정을 통해 계획한 것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동료가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영화는 계획한 모든 목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끝이 난다. 젊은이들의 무모한 도전은 결국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끝나는 행복한 영화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얻은 건 영화 한 편만은 아니다. “마침내 우리의 긴 여정이 끝이 났다. 이제 우리에겐 돌아갈 학교도, 남아 있는 돈도, 우리의 프로젝트도,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한 번의 도전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멈추진 않을 것이다.” 1년 동안의 유럽 여행에서 두 편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완성하면서 영화는 끝이 났지만, 주인공들이 삶은 끝이 아니다. 지금 그들은 영화보다 더 큰 우여곡절을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인연과 사건을 마주하며 나아간다. 영화 마지막 대사처럼 좌절하지 않고 견디며 즐겁게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어쩌면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건 참견과 잔소리가 아니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받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은 나에게 있음을, 또한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과 선택들이 있음을 인정하길 바란다. 모든 결정과 책임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