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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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교육과 지역의 연결고리

좌장·정리: 빅터조 / 참석: 공재영, 이지홍, ’18.7月

강원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 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앉았다. 편안하게 주고받는 이야기들 속에서 나름의 공통분모를 찾아보고자 함이지만 이미 주제 자체가 쉬운 듯 쉽지만은 않다. 두 청년과 나눈 주제는 예술과 교육, 지역이라는 경계가 뚜렷한 세 가지 화두다. 강원도라는 지역적 특수성은 어떻게든 예술과 교육,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필연적 상관관계를 청년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나는 춘천에서 10년간 조각 작업에 매진했다. 어려운 길이었지만 지역의 특성상 예술가를 지원해주는 시스템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어서 많은 혜택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고 지금은 춘천과 서울을 넘나들며 많은 전시들과 작업으로 바쁜 나날들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 늦깎이로 진학해 공부도 하고 있다. 두 청년은 지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을까.

“어릴 때부터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교육자가 되고 싶었다. 서울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경기도에서 기간제 교사를 하다가 속초로 이주해 공방을 차렸다. 최근에는 개인 작업을 이어가며 다운증후군 아이들과 청각장애우들에게 도예를 가르치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고 보람이 있다.”(공재영)

“화천의 <공연창작집단 뛰다>와 연이 닿아 그곳에서 연극을 배우며 인형 제작, 민요 등을 접하였다. 공연 작업을 지역의 어르신들, 군인들, 청소년들과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애향심이 생겨났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전공은 아니지만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며 좀 더 다양한 판을 경험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고향 화천에 내려와 <문화공간 예술텃밭>에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기획자로 인턴 생활을 지냈다.”(이지홍)

영월 ‘한반도면’에서 나고 자라며 어릴 적부터 흙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조각가’라는 직업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기에 그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왕자와 공주같은 비현실적인 존재였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조각을 전공한 미술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나의 장래희망은 조각가가 되었다. 하지만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다. 그냥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늘 오그라져있는 촌뜨기의 마음은 미술학원에 다니는 도시 친구들의 아우라를 넘어서지 못했다.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미대입시를 시작한 후에도 조각을 배울 곳이 없어서 늘 고심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홍대 앞에서 조소전문학원을 운영하고 계시던 고향 선생님과 연이 닿아 극적으로 조각을 전공하게 되었다. 대학교 때부터 살고 있는 춘천은 지리적·행정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기에 참 적합한 지역이다. 일단 환경이 좋고, 서울과 인접하여 트렌드를 놓치지 않을 수 있고, 타 지역에 비해 신진 예술가들이 얻을 수 있는 자원들이 풍부하다. 이처럼 한 사람에게 지역이 주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듯, 그들에게 ‘지역’이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아버지께서 군인이셨던 탓에 정말 많은 지역으로 이사를 다녔다. 강릉, 대전, 청주, 김해 등…. 김해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고3 때 갑자기 미대에 가고 싶어서 6개월 동안 미대입시를 준비했다. 그 때 만났던 한 강사 선생님이 그동안의 강사들과 다른 테크닉을 선보였다. 대부분 학생들은 몸에 밴 습관 때문에 그의 데생법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나는 오히려 미술을 늦게 시작한 터라 백지상태에서 온전히 받아들였고, 그것이 약이 되어 대학을 서울로 진학할 수 있었다.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단아가 되었지만.
속초에서 예술 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부모님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전역하시면서 속초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공기도 좋고 모든 것이 좋았다. 속초는 아직 예술가가 많지 않지만 도자기를 하는 동생을 비롯해 뜻이 맞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예술촌을 만드는 것이 지금의 꿈이다.”(공재영)

“화천의 ‘비수구미’라는 시골에서 살았다. 워낙 시골이라 그곳에선 우리 삼남매가 유일한 어린이들이었다. 학교 진학 때문에 화천읍내로 나오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공연창작집단 뛰다>라는 극단이 화천으로 이주하면서 처음 연극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선배들과 함께 작업을 했는데 사실 선배들은 연극을 가르쳐주면서도 농담반 진담반으로 (직업으로서)연극 하는 것은 말렸다.(웃음)
화천의 유일한 극단이기 때문에 지역 축제 등과 맞물려 많은 지원과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공연을 접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스스로 갈증이 있었다. 늘 화천보다 더 큰 지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였고, 서울에서 다양한 공연을 선택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세계였다.”(이지홍)

문화예술이 거의 전무한 지역에서 만나는 예술 활동은 아무리 작아도 힘이 세다. 나도 지역에서 경험했던 작은 파문이 지금까지 예술 작업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지역의 예술교육에 대한 사명감도 생겼다.
10년 전 첫 개인전 때다. 나를 처음 미술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서 전시장을 찾아주셨다. 제자의 첫 개인전이 자랑스럽기도 하셨겠지만 웬일인지 선생님은 나를 꼭 안아주시며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이유인 즉, 다른 일 했으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었을 제자를 어렵고 험난한 미술판으로 이끌었던 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는 것이다. 미술을 할 수 있어 늘 감사한 마음뿐인 제자와 그 은혜가 오히려 죄스러운 은사님의 아이러니 한 기류는 제자가 소위 말하는 작가로서의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는 계속되리라. “남자가 무슨 미술이니?”, “미술은 춥고 배고프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사회에서 보통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보니 교육자의 입장에서도 선뜻 권하지 못하는 천한 기술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미술을 포함한 예술교육은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철학이 담긴 유산과 같다. 혹자는 “예술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예술교육은 그 어떤 학문보다 필요하고 중요하다. 두 청년도 예술교육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일까?

“가르침을 주는 사람보다 공감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그런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디자인 회사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 정말 좋아했다. 예술을 많이 보고 직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표현력을 길러 주는 요인이 된다. 예술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예술을 통해 소통하고 공유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갔었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준다. 수업 속에서 통합교육, 자유학기제 등이 제시되었고 이미 교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교과와 장르가 다양하게 융합되어 새로운 것이 된다.
속초는 서울과 5년의 시간차가 있다고들 이야기 한다. 세련되고 트렌디한 예술을 하는 것도 좋지만 소박하고 유행에 뒤쳐진다고 해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좋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산과 바다 등 속초의 수려한 자연 환경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런 요인들은 돈을 버는 것을 떠나 삶의 만족감을 높여준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지만 현재에 만족하면서 내 삶의 방향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현재 생활에 대한 만족감은 100점이다. 남의 시선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율의지를 가지고 내 선택에 따라 결정하는 것,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 삶의 만족감을 높이는 주요 지점이다.“(공재영)

“그간 <공연창작집단 뛰다>와 함께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이 예술교육이다. 전공자가 아니기에 많이 부족하지만 아이들의 경험이 확장되고 감각이 확대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최대한 많은 화두를 던져 주려고 노력했다.
지역의 아이들을 대할 때, 내가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서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다. 지역 후배들에 대한 구체적인 애정이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과 나이 차이가 적어서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좁은 지역 안에서 초, 중, 고를 함께 다닌 아이들이기 때문에 자극될 만한 일이 없다. 막연하게나마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채워 주고 싶었다.
구체적인 것을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한 몽상을 깰 수 있을 때 쾌감이 느껴졌다. 뜬구름 같았던 연극과 예술에 대한 고민이 실제 연극인과 배우들을 만나고, 연극을 만들어 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겪으면서 현실이 되었고 그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직도 예술교육에서 예술을 도구적 측면으로만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연극은 기술 외에도 많은 경험들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고, 자기 삶이나 경험에 대해 되뇌어보고 객관화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다. 혹자는 “예술은 인문학적인 경험을 하게 하는 것” 이라고 했다.”(이지홍)

현재 한국은 많은 예술 활동과 예술 시장이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있다. 그래서인지 예술교육도 마찬가지다. 지역에서는 예술 활동을 하는 것 뿐 만 아니라 그것을 배우며 성장하기에도 문턱이 살짝 높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박한 지역 환경에서 열정과 의지로 활동을 이어가고 각자의 분야에서 예술교육에 힘쓰는 청년들이 있다. 이런 청년들의 활동과 지역 감수성이 결합된다면 분명 ‘강원도’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예술교육에 정답은 없으니까. 유행을 쫓기보다는 진정성 있게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지역 안에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본 기사는 재단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