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생각과 마음을 잇다 | 생각을 잇다

청소년은 판타지를 꿈꾼다

여세진 / 문화놀이터 액션가면 대표, ’18.5月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자의식의 경험은 판타지에서 현실로 시각의 초점을 바꾸고 상황을 정확히 바라보는 계기가 되며, 판타지를 현실세계로 끌어와 표현의 희열을 불사르는 대리만족의 장이 될 수 있다.

어린 어른 청소년(靑少年)

청소년(靑少年)! 어른으로 단숨에 변신할 수 있는 탈의실이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어린이라 하기엔 이미 건너와 버린 강이 저만치고 어른으로 가는 길 위에 한 발을 올려놓고 주춤할 수 밖에 없는 시기. 뒤로 후진할 수도 없고 앞으로 달려가기에도 정체모를 두려움이 있다. 그것은 꽃길이든 고난의 길이든 보이지 않는 미지의 것을 받아들이며 한 발 한 발 건너 가야하는 길이다. 청소년은 불안을 안고 이제 막 어른의 길을 들어선 어린 어른이다.

우리 어른들은 어떠한가?
불안 없이 잘 살아가는가? 어른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사회의 통념과 기존질서의 톱니바퀴 맞물리듯 스스로를 끼워 맞춰 살아낸다. 잘 적응하다가도 순간 엉망진창이 된 나를, 다 내려놓고 싶다고 부르짖는 나를, 우리는 얼마나 여러 번 만나게 되는가. 나는 여전히 불안을 안고 살아가며, 온전한 어른이 되기엔 갈 길이 멀었다는 자조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온다.

어른들 안에도 뒷걸음질치고 싶은 어린이가 공존한다. 청소년이나 어른이나 매한가지다. 하지만 처음 겪는 청소년들에겐 심리적으로 더 아픈 현실일 것이다.
우리는 경로를 이탈하기도 하고, 궤도로 다시 돌아와서 우쭐대기도 한다. 인생의 좌표에 성장과 추락의 흔적들이 쌓이며 굴곡의 그래프를 만들어 간다. 인생의 좌표에서 청소년은 단지 초심자이다. 먼저 경험한 사람, 선배, 어른들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꼰대역할을 맡아왔다. 꼰대들의 내비게이션(navigation)은 “내가 경험해봤는데 말이야..” “너희 땐 다 그래..” 라며 언제나 자기 경험을 근거로 정해진 답을 강요한다. “그건 나의 답이 아니야!” 라고 외치고 싶은 청소년들은 영화나 웹툰보다도 레벨이 떨어지는 이 내비게이션을 부수고 싶을 수밖에.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어른들과는 다른 어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난다. 현재의 어른들 세계를 뛰어넘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판타지. 이들이 꾸는 꿈은 판타지다!

청소년(靑少年) 욕망의 은유, 판타지를 꿈꾼다.

어린 어른 청소년은 집과 학교 등 현실을 벗어나는 판타지를 꿈꾼다.
프로이트는 현실과 갈등관계로서의 판타지를 정의했고 라캉은 현실에 대항하는 방어물이자 동시에 현실을 위해 불가피한 지지물로 판타지를 정의한 바 있다. 현실의 기존질서인 사회적인 통제와 규범으로부터 욕구를 억압당한 청소년은 불안하고 위축되고 혼란스럽다. 이들에게 억압은 금지의 명령으로 인식되고 결국 자기 결핍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그 결핍을 근거로 새로운 욕망이 생산된다. 이 욕망은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분출되어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시대를 살리한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결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경험, 물질적 빈곤과 문화적 결핍에 대한 기억에 기초해 지금의 아이들을 배부른 존재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한다. 오류의 정도가 더해질수록 청소년들은 판타지 안에 은거하며 자신만의 일탈에 대한 꿈에 기댄다.
폼나게 SNS를 장식하는 성과주의와 무한 생존경쟁의 현실 속 오락 프로그램이 남발하는 이 시대, 이러한 문화적 토양 속에서 세계관을 형성해 나가는 우리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만든 판타지의 세계가 안식처일까? 불가피한 도피처일까?

부모나 교사들은 입을 모아 “현실 좀 제대로 봐라!”, “네 상태를 제대로 알고 행동하라!” 며 청소년들에게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다그친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자의식이 부족하다고 걱정한다. 자의식은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자각(自覺)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다.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고 바라보는 것, 그렇게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와 그러한 자의식을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 속에 놓여 있는지를 먼저 주목해야 한다.

예술은 ‘나를 비춰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다. 예술을 통해 내가 어떤 상태인지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자문하고 돌아보며 탐색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관조다. 관조를 통한 자기인식은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본연의 자기모습이다. 관조는 예술과 참으로 닮아있다. 관조를 통한 자기발견과 자기반영은 예술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관조의 사전적인 의미는 '주관을 떠나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것', ‘사색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 외에도 '미(美)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일', '사물의 참모습과 변하지 않는 진리를 지혜를 통해 비추어 봄' 이라는 의미가 있다.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과 사물들을 지긋이 바라보며 나와의 관계를 조망하는 과정이 문화예술교육이다. 이러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경험은 ‘욕망의 부딪힘’의 원인을 찾아나갈 힘을 키워준다.

여기서 문화예술교육자는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 홀로 서 있는 청소년들에게 그들 내면을 자극하고 연결하는 시냅스 역할을 하여 청소년들이 스스로 현재를 뛰어 넘고 전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준다. 또한 문화예술교육자는 적절한 예술을 매개로 청소년들에게 건강하게 불적절한 욕망을 분출한 통로를 열어 준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은 작지만 자기성공의 경험을 축적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신념인 ‘자아효능감(self-efficacy)’을 높인다. 자의식의 성장판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자, 이 얼마나 의미 있는가.

판타지와 현실 사이의 조력자, 문화예술교육자

문화예술교육자는 청소년들의 판타지와 현실 사이에서 창작의 매개자 이전에 갈등의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청소년의 판타지의 실현의 과제는 ‘문화놀이터 액션가면’이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왔던 지점이다. 청소년들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그들이 욕망하는 판타지를 마음껏 펼쳐 내는 스토리텔링 과정을 연극, 퍼포먼스, 뮤지컬의 창작 작업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 되어 직조되는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공감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의 이야기를 말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의 경험을 반복하면서 청소년들은 '나에 대한 자각'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의 자각이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공감으로 이어지고 '우리의 현실'로 확장되면서 관찰자 시점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내 속에 함몰된 나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현실감을 갖게 되는 순간이자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고 스스로 자기 인생의 좌표에 점 하나를 찍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문화예술교육이 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자는 청소년들 스스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듣게 할 것이지 ‘자각의 환경' 을 매개할 수 있는 통찰력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또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자각의 환경 안에서 추락과 상승을 반복하며 자기발견과 자기성장 중인 어린 어른 청소년을 지그시 바라봐주고 응원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개성을 건드리지 말 것, 각 개인의 개성을 존중할 것, 청소년은 교육자보다 신세대이며 교육자가 경험할 수 없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니 존중하고 존중할 것! 삶의 ‘의미’를 찾아가려는 어린 어른 청소년의 이제 막 뗀 첫 발걸음을 응원하고 그 개성 있는 발자취를 축하해줘야 한다. 정해진 답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정답이 없는, 모든 것이 정답인 문화예술교육의 사유 방식이 청소년의 개성 있는 판타지의 구현에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문화예술교육자들은 청소년의 판타지, 즉 욕망의 부딪힘을 구현할 수 있는 둥지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 둥지 안에서 청소년은 관조의 눈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타인에게 눈을 돌리게 된다. 나아가 관찰자적 시점으로 시선을 전환하며 현실감을 인식하는 변화가 시작된다. 이러한 시작점에 청소년들의 ‘조력자’, 문화예술교육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