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사람과 현장이 있다 | 현장이 있다

백두대간, 산업 동력 구간에서 문화 에너지 발전소로

최삼경 / 자유기고가, ’18.5月

결론은 언제나 나, 혹은 내안의 문제로 귀결될 터이다. 또한 누가 뭐래도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온다. 이처럼 자연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뿐이다. 그러하니 우리, 힘들어도 내 자신의 걸음으로 타박타박 걸어가자. 너무 행복해지려 애쓰지 말고, 또 너무 잘 하려고 용쓰지 말고, 지켜보며 살아가자. 그러다 힘들면 저 백두대간의 우듬지를 보고 바람을 맞자. 저 백두대간의 깊은 곳에서 완성된 그림과 이야기로 눈과 귀를 씻자. 그것이, 지금 우리 앞에 상큼하게 펼쳐져 있는 여름이 우리에게 권유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잠깐이라도 지금, 당장, 담뿍, 저 대간의 산기슭에라도 들어 크게 숨을 들이쉬어보자. 바로 그곳에 ‘생생’한 문화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은 그 말만으로도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무언가 한곳에 정체돼 있지 않고, 우람한 기세로 저 북만주의 대륙과 잇대어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분단은 근래 잠깐의 일이었지만, 분단의 현실은 너무나 명백하고 힘이 세어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은 몇 겁의 쇠뭉치처럼 요지부동이었다. 그 쇠뭉치는 오래도록 남과 북의 사람들에게 깊은 적대와 침묵을 강요해 왔다. 그리하여 백두에서 한라까지! 라는 말도 얼마 전까지는 막연한 추상명사였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로는 손에 잡힐 듯, 이제 곧 이루어질 듯한 동사로 변화하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봄을 벗고 여름으로 치닫는 영월과 정선, 태백의 산과 들은 작약하듯 분망하고도 웅혼한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강원도 땅은 우리나라의 중간지대에 있지만 북한의 함경남도보다 더한 산악지로 꼽힌다. 100m 이하의 저지대가 강원도 총 면적의 5.6%에 불과하여 함경남도의 9.6%보다 적고, 100m에서 500m까지 저산야 지대가 43.1%, 500m에서 1,000m까지의 중산야 지대가 43.4%로 남한에서 가장 그 비율이 높으며, 1,000m 이상의 고산지대가 7.7%로 형성돼 있다고 한다. 그만큼 산이 많고 숲이 우거졌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앙고속도로로 내려가다가 제천에서 태백으로 빠지는 국도로 들어서자 연두와 녹음의 향연이 본격화되는 느낌이다.

여름은 우리에게는 더위와 휴가, 등목과 천렵의 계절이지만 식물들에게는 뜨거운 태양의 시기, 고난의 시간이기도 하다. 한낮의 매미 울음소리는 분무하듯 울려 퍼지고 모든 풀과 나무들이 혀를 빼어 물고 쓰러지듯 겨우겨우 견딘다. 창살 같은 햇빛에 아무런 저항도 반발도 할 수 없다. 이는 납작하게, 상처 입은 짐승이 다만 누워 견디는 풍경과 비슷하다. 곧 숨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엄살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음울하거나 살풍경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활력과 생동의 몸짓을 가만히 억제하는 기세다. 하늘에서 내리 쪼이는 빛살을 몸 한곳에 모으는 일이다. 아낌없이 쏟아지는 우주의 자양분을 오롯이 제 몸 안으로 받는 제의의 몸짓이요, 숭고한 생명의 모습이다. 이것은 밤이 되면 명백해진다. 밤은 한낮의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달의 기운이 부풀어 이슬을 머금는다. 낮 동안의 강렬한 에너지는 줄기와 뿌리, 이제 막 터져 오르는 열매에게로 모아진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과 한밤의 고요와 달빛, 서늘함 속에 열매는 단단해진다. 하여 여름의 낮과 밤은 결실의 가을로 가기위한 지난한 노동의 시간이다. 이런 비밀한 여름의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광은 그저 명랑하고 코끝으로 스치는 바람은 향그럽기만 하다.
길은 바삐 재촉되어서 어느 덧 영월로 접어든다. 영월은 동강, 서강, 김삿갓, 단종, 청령포 등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때는 정선, 태백과 더불어 이 땅의 근대화를 가능케 했던 에너지를 생산한 땅이기도 하다. 청령포로 빠지기 전에 있는 연당 출구, 이곳으로 나가면 머잖아 백중기 화백의 작업실로 통한다. 백중기 화백은 교편생활도 접고 벌써 30년 넘게 이곳에 눌러 앉아 강원의 산과 강, 나무와 땅을 그린다. ‘용연당’이라는 당호를 짓고 수행자가 심신을 삼가며 도를 닦듯 그림을 그린다. 하여 그의 그림에는 백두대간의 산맥과 나무와 집들이 우악스럽지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갸날프지도 않게 그려진다. 멀리 바다와 하늘이 푸르게도 검게도 또 붉게도 그려진다. 그려지는데 그 손맛이라는 것인지 눈맛이라는 것인지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남기는데 그것은 머리에 남지 않고 꼭 가슴의 저쪽 한편에 어슴하게 모여진다. 모이는데 어떤 것도 의도하거나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아 자연스럽다.

이것이 아마도 자연이라는 것일 게다. 꼭 자연이어야 한다는 당위조차 버린 자연…. 그의 그림에는 종종 작고 외지고 힘없는 풍경들이 등장하지만, 그럴수록 차분해지고 종내에는 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게 만드는 요소를 갖고 있다. 그것은 ‘정서적 발전소’라고 이름 지을만한데 이것은 또한 태백에서 오래도록 광산과 관련된 그림을 그려 온 황재형 화가에게서 받는 느낌이기도 하다. 어떻든 연탄으로 우리의 구들과 공장을 뜨겁게 덥혔던 왕년의 에너지 생산지가 이제는 이렇게 문화적 심리적 발전소로 새로이 자리매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며 길은 정선으로 접어든다. 정선 사북으로 들기 전에 정암사를 지나 ‘삼탄아트마인’으로 접어든다. 함백산 자락에 깃든 이곳은 예전에는 삼척탄좌 정암광업소라 불렸다. 왜 삼탄아트마인인가 했더니 삼척탄좌를 줄인 삼탄에 아트와 광산, 캐는 것을 뜻하는 마인이 합친 것이라 한다. 지난 1962년부터 2001년까지 40년간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풀무질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레일바이뮤지엄, 삼탄아트센터, 기억의 정원, 원시미술박물관 등 멋진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2017열린관광지’ 2015년 한국관광공사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00선’, 2013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을 받은 명소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지상 53m로 우뚝 솟은 권양기 시설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한때는 직경 6m, 깊이 600m의 원통형 수직 갱도로 산업용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며 연간 50만톤의 탄을 캐내던 곳으로 국내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지간히 손을 대고 디자인을 새로 했음에도 건물 곳곳에는 검고 억센 탄광의 느낌을 주고 있다. 동선을 따라 삼탄아트센타의 전시장을 둘러본다. 한중일 삼국 작가들의 작품이 기획전시전으로 진행중이며, 와이너리도 있고, 최근에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 이곳을 만든 이는 故 김민석 씨로 소더비에서 구매담당을 했었던 국내 최고의 콜렉터로 꼽힌다. 그가 지금까지 모은 세계 곳곳의 수집품은 10만 여점이 넘는데 전시를 위해 지금도 분류중이라고 하니 엄청난 규모다. 점심으로 옛 광부들이 갱 속에서 꿀맛처럼 먹었을 광부도시락 먹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89년) 이후 급격한 인구감소와 위축된 지역경제 등을 극복하고 폐광지역의 활성화를 위한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95년)’을 제정했고, 태백과 삼척, 정선, 영월, 경북 문경 등등의 지역이 폐광지 진흥지구(‘96년)로 정해졌는데 그 중 이곳은 훌륭한 재생 사례로 꼽히며 이제는 해외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찾고 있다.

시간이 없어 바로 일어나야 하는 아쉬움을 다음에 찬찬히 살펴보는 것으로 달래며 두문동재를 넘어 태백으로 향한다. 태백은 태백산을 품고 있어서인지 지날 때마다 왠지 영험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태백 황지를 지나 조금 외진 동네로 가면 광부화가로 불리는 또 하나의 문제적 작가, 황재형 화가의 작업실이 있다. 대학시절 수배를 피해 찾은 태백이 그의 삶과 그림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태백으로 들어 온 그날부터 태백지기를 자처하며 탄광에서 수년간 광부 생활을 하며 광부의 그림을 그렸다. 억센 백두대간을 닮은 사내의 고달픈 생을 그렸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우리 사회 전체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 ‘막장~’ 이라는 말에 대한 회화적 표현이 되었다. 인생 끝에 몰려 탄가루가 날린 차가운 점심을 먹는 삶에 대해 환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작업들은 시범적인 일회성이 아니었다. 그는 고향과는 천리만리 먼 곳에 거처를 정하고 아이들도 낳고 어느새 할아버지 화백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십만개의 머리카락’전을 열어 다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작년 중순 쯤 화실에서 머리카락을 소재로 한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는 조금 섬찟하고 낯설었지만 그 누구도 주목한 적이 없는 머리카락이라는 새로운 소재로 멋진 작품을 형상해놨으니 과연 대가의 그릇이 넉넉하다.

그는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화가들과 함께 ‘산과 함께’라는 그림운동을 하고 있다. 앞서 백중기 화가도 이곳에서 활동 중이다. 강원도의 산과 강, 땅의 기운을 제대로 도모하자는 취지로 지금까지 수회에 걸쳐 전시회도 개최했다. 이렇게 백두대간의 산과 강은 많은 이야기와 눈물과 한을 품고 있다. 민족의 기상이 서린 등줄기라지만, 중간이 잘리고, 또 개발의 미명하에 포크레인 삽날과 시멘트에 신음했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 전체가 이리저리 채이고 시련을 겪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이제 우리에게 대운이 트이는지 남녘, 북녘의 오랜 침묵을 깨고 격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절로 백두대간의 녹색기운이 풍성해지는 이유이다. 지금껏 인류가 문명을 일구어 달려왔지만 기실 먹고, 자고, 병들고 죽는 것 외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재질이나 양식의 변화는 있었는지 몰라도 기본적인 생활의 조건들에는 변화가 없지 않은가. 짐승들이 병이 들면 산으로 들어가듯 여전히 우리는 생명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다. 좋은 자연의 기운이 사람들을 이롭게 하듯, 이제 그 산과 강, 들의 중심에서 쏟아져 나오는 문화의 향기가 우리들에게 힘을 주고, 또 연대를 줄 것이다. 백두대간이 한라에서 백두까지 이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하여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상처와 한숨과 웃음과 신명까지가 다 녹아들고 배어 나와야 비로소 하나의 문화라는 것의 요체가 이룩될 것이다.

여기에 지금은 가상계, 인터넷이라는 의식체계가 IT 등의 발전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가상계는 분명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존재한다. 자연의 나무와 바위가 아니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명징한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고양되고 확장된 정신의 테마파크는 게임과 도락과 몰두의 세계로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열광하게 한다. 정신의 테마파크는 육체가 삶의 전부가 아님을, 마음이 물리적 현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을 확산한다. 그러나 지금의 가상계, 인터넷이라는 의식체계는 '자아'와 '비자아'라는 상수마저 기준을 잃어버리고 완전하다고 믿었던 신념체계도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더욱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체성이 더 강조된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욕망을 다스리고 여하히 행복을 향유하는가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싫든 좋든 삶의 과정에서 맞게 되는 이 수많은 변화와 혼란 속에 가상계까지 더하여 네비게이터(navigator), 대행서비스, 아바타(avatar) 등의 도우미들이 대거 등장, 북새통을 이루고 있지만, 결론은 언제나 나, 혹은 내안의 문제로 귀결될 터이다. 또한 누가 뭐래도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온다. 이처럼 자연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뿐이다. 그러하니 우리, 힘들어도 내 자신의 걸음으로 타박타박 걸어가자. 너무 행복해지려 애쓰지 말고, 또 너무 잘 하려고 용쓰지 말고, 지켜보며 살아가자. 그러다 힘들면 저 백두대간의 우듬지를 보고 바람을 맞자. 저 백두대간의 깊은 곳에서 완성된 그림과 이야기로 눈과 귀를 씻자. 그것이, 지금 우리 앞에 상큼하게 펼쳐져 있는 여름이 우리에게 권유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잠깐이라도 지금, 당장, 담뿍, 저 대간의 산기슭에라도 들어 크게 숨을 들이쉬어보자. 바로 그곳에 ‘생생’한 문화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