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사람과 현장이 있다 | 사람이 있다

노래를 가르친다는 건, 즐거움을 나눈다는 것

한승모 / 남산초등학교 교사, ’18.5月

사소한 것이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잘하려 하지 않고 초점을 가지고 즐겁게 하면 잘하게 된다. 노래는 틀려도 되는 것이고, 틀리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어른들이 “잘 한다! 잘 한다!” 하니 좋아서 사람들 앞에 나서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고 1,000원씩 받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내가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노래 대회가 있었다. “모래성이 차~례로” 노래를 부르는데 뒷부분의 고음이 올라가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히 1등은 못했고, 겨우 겨우 3등을 했다.
중학교 때는 교내 합창단에서 노래를 했다. 큰 대회에도 참여해보고, 연습시간에도 빠지지 않고 즐겁게 노래하러 갔다. 선생님은 무서웠지만 내가 화음을 낸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승모가 음을 잘 잡으니 알토를 해주지 않을래?”
“네?”
당황스러웠다. 내가 음을 잘 잡는다니…. 지금에서야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내 목소리가 곱지 않으니 알토를 하라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며칠 동안 잠을 설칠 만큼 설렜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나는 음감이 좋다고 생각하며 화음 내기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일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중창단에서 아카펠라를 시작한 동기가 되었고, 성당에서 각종 아카펠라 미사곡을 연주 할 수 있게 한 모티브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참 열심히 노래했다. 점심시간에는 노래 연습을 한곡이라도 더하기 위해 쉬는 시간 10분 만에 점심을 후다닥 해결해 버리곤 했다. 물론 정규교과 시간이 끝난 방과 후에도 몇 시간씩 노래를 불렀다. 선배들과 함께 전통 중창·합창곡도 부르고, 미사에 쓸 성가곡도 연습했다. 물론 여학생에게 잘 보이기 위한 [Boyz II Men]의 아카펠라 곡도 연습곡에 들어 있었다. 별밤 뽐내기에 나갈 수 있을까 하며 기타 치며 노래도 불러보았다. 우리가 제법 잘한다 생각이 드니 그냥 넘어 갈 수가 없어서 대회나 공연의 자리를 찾아 다녔다. 1995년! 우리는 우리만의 아카펠라 음반을 만든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입시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 더 중요했다. 친구의 여자친구에게까지 돈을 빌렸다. 당시만 해도 스튜디오를 빌린다는 것은 고등학생이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스튜디오에서 하루 종일 녹음을 하고 충무로 인쇄단지를 돌아다니며 인쇄물을 만들고, 테이프를 복사해서 수제로 아카펠라 테이프를 만든 것이다! 처음으로. 대학을 진학한 후에도 노래는 계속 불렀다, 한국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에 가야 했다. 노래를 쉰 것 그때뿐인 것 같다. 군대에 다녀와서는 바로 복학하지 않고 1년간 돈을 벌어야 했다. 아카펠라가 너무 그리워 짬을 내 노래 부르러 다니면서 동시에 후배들을 가르치러 다녔다. 이때가 공식적인 누군가를 가르치는 기회의 시작이었다. 내가 가르친 후배들이 아카펠라 실력이 쑥쑥 느는 것을 보면서 몇 가지 이유를 찾게 되었다.
“계이름으로 노래하자니까~”
“계이름이요?”
“그래! 도레미~ 이런거”
“아…. 그냥 외웠었는데….”
후배들 연습을 봐주러 가면 늘 하는 이야기였다. 계이름으로 노래하고, 천천히 불러보고, 쉬운 부분부터 하고, 틀려도 혼나지 않아야 하고…. 이런 사소한 것들이 후배들의 노래실력을 좋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것이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잘하려 하지 않고 초점을 가지고 즐겁게 하면 잘하게 된다. 노래는 틀려도 되는 것이고 틀리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라는 걸 이때부터 조금씩 알게 되었다.

교사가 되어 우리 반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것 외에 축구부, 육상부 지도도 하고, 과학상자를 가르쳐 대회도 내보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밖에서라도 계속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주말이면 서울로 노래하러 다니고, 평일 밤과 새벽에는 매일 노래를 만들고 편곡을 했다. 막상 합창단을 가르치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은 아카펠라인데….’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해서 아이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장선생님이 부르셨다.
“한 선생~ 이번에 중창대회가 있는데 아이들 지도해서 한 번 나가봐요.”
“네? 아…. 제가 중창 지도 경험이 없어서….”
경험도 없고, 잘 모르는 분야라, 또 주말에는 아카펠라 하러 서울을 가야 하는데 시간 빼는 게 싫어서 망설였다.
“아냐. 한 선생. 잘할거야. 그리고 애들이 아주 좋아할거야. 경험한다 생각하고 한번 나가봐요”
교장선생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카펠라로 참여해도 되는지를 대회 주최 측에 물어보고 아카펠라로 아이들과 참여했다. 당연히 결과는 참가상을 받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대회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와서 당연히 더 이상 모이지 않으려 했던 나에게 아이들이 왜 안모이냐고 묻는 것이다.
“잉? 너네 힘들지 않았어?”
“아뇨~ 그래도 재미있어요. 선생님 또 해요~”
아! 깜짝 놀랐다.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던 아카펠라를 아이들이 또 하자고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안 좋은 결과 때문에 당연히 그만하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아닌 것이다. 그냥 나만 하고 싶었던 내 욕심이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15년 동안 아이들과 가족들과 친구들과 동료들과 아카펠라를 부르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외국인들과 함께 노래하고, 외국의 우리 교민 2~3세들과도 아카펠라를 부른다. 모두가 우리의 목소리만으로 이렇게 화음을 만들고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며 새로운 경험이라고 고맙다고 한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이 쓰이는 곳이 많아지고, 나도 떠드는 자리들이 생겨났다. 그때마다 나의 아카펠라 교육의 경험을 떠올린다. 문화예술교육에서 말하는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소한 것이 사소한 것이 아니었고, 잘하려 하지 않고 초점을 가지고 즐겁게 하면 잘하게 되었고, 활동들은 틀려도 되는 것이고, 틀리는 것이 잘하게 되는 좋은 길인 것이다. 반면, 예술 강사들이 살아온 삶은 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회와 같은 중요한 것들이 워낙 많았다. 학교 선생님들도 대부분 제법 좋은 길로만 잘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러니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음악, 미술 교과 수업과 예술 강사들의 교육 대부분은 잘해야 하고, 틀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한 10년 문화예술교육사업들이 잘 이뤄지고, 학교에서도 다양한 생각들이 열리고 허용되면서 점점 과정과 나눔과 성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예술교육이 활발해지고 있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강사들도 모두 이 환경에 적응하고 있어 보인다. 이제는 새로운 가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예술이 왜 중요한지, 이 과정이 왜 중요한지, 이 과정 이후에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바라며 살 것인지…. 계속 고민하고 새로 계획하여 투입하여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시대에 살아갈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교육과 유산을 전할 것인지 잘 생각해보자. 공감이 필요한 시대, 창의력이 필요한 시대, 함께하는 무엇인가를 잘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이다. 문화예술교육만한 것이 어디 있는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던지 문화예술은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이뤄져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터전으로부터 전 세계로 퍼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즐기고 참여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올해는 학교에 가지 않고 정리하고, 글을 쓰는 일을 내내 하고 있다. 매달 몇 편의 글을 쓰고 있고, 새로운 책도 몇 권이 나와야 한다. 창작하고 정리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시간이 필요하고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난 오늘도 노래를 부르러 간다. 홍천 선생님들과 노래하고 오랜 벗인 ‘별의별’ 멤버들과도 노래를 부를 것이다. 또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고민해서 선생님들에게 전하고 나눌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학생들과도 아카펠라를 할 것이다. 틀려도 된다고 격려 할 것이고, 과정이 행복할 수 있게 모든 기회가 기쁠 수 있게 도울 것이다. 우리가 작게 부르는 이 노래가 사소한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