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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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좋고 봐도 봐도 좋은 것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문화공간 예술텃밭

글 / 권지애, 사진 / 황만석, ’16.5月

가도 가도 좋고 봐도 봐도 좋은 것은 자연뿐이라고 했던가. 화천은 딱 그랬다. 물 맑고 공기 좋고 더할 나위 없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 하지만 중학교 4개, 고등학교 4개, 영화관 1개... 아이들은 즐길거리가 없었고 문화시설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랬던 화천에 6년 전부터 예술의 에너지가 솟아났다. 연극과 더불어 삶과 예술을 구분치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곳, 화천으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자연 속으로 녹아든 공연창작집단 ‘뛰다’

‘뛰다’는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한 8명의 젊은이들이 창단한 극단이다.
이후 창작과 공연의 열정에 파묻혀 쉴 새 없이 달려왔다.
그리고 10년, 화천 동지화 마을의 작은 폐교로 14명의 단원, 그리고 그 가족들이 모두 함께 이주해 ‘문화공간 예술텃밭’을 만들었다. 이곳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들다. 말하자면, 예술가들이 창작에 전념하고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창작공간이자 도심을 벗어나 몸과 마음을 휴식하고 싶은 손님들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문화공간이자 지역주민들과 삶을 나누는 공동체 공간이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놀이교육을 하는 토요문화학교를 운영한다. 대학로를 휩쓸던 연극배우에서 시골마을의 청소년 지도교사가 되기까지 대체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감 소통, 그리고 치유의 텃밭 토요문화학교

한 시간인 줄 알고 참석했던 연극놀이 교육이 3시간이나 진행됐다. 난감했다.
인터뷰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만 같아 속이 바짝바짝 탔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 놀이교육에 빠져들었다.
강당 안의 싸한 공기는 수업 시작과 동시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열기로 가득 찼다. 9명의 아이들과 3명의 강사는 쉴 새 없이 웃고 뛰고 땀 흘렸다.
강사들은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놀았다.
막간의 간식타임을 이용해 나는 수업시간 내내 선한 미소를 잃지 않던 황혜란 강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내내 응어리진 궁금증을 풀기 위해 대뜸 물었다.

예술 텃밭에 물을 주는 사람들, 김수아 최재영 황혜란 강사

▷“대체 왜 화천이죠?”

황혜란 : (웃음) 굳이 화천일 필요는 없었어요. 그저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면 됐어요. 우리는 지방공연을 주로 많이 다니니까 굳이 서울에 적을 둘 필요는 없었어요. 서울이 참 비싸기도 하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모든 단원들이 의견을 모아 ‘옮기자! 자연 속으로!’ 했어요. 결정은 내렸는데 또 막막하더라고요.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는데 3년이 걸렸으니... 화천도 수많은 지역 중 하나였고요. 그저 둘러보러 화천에 왔는데 거짓말같이 반나절만에 모든 일이 풀렸어요. 군청에 입구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을 붙잡고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다..또 공간을 찾고 있다’ 얘기했는데 그분이 마침 문화예술 조성지원 업무의 담당자였고 동지화 마을에 버려진 폐교가 있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바로 갔죠. 자그마한 폐교를 보는 순간 ‘여기구나!’싶었어요. 뒤로도 일이 술술 풀렸죠. 운명이었던 거예요, 3년을 찾아 헤매었는데 반나절만에 모든 일이 풀리다니...

▷“‘뛰다’의 모든 단원이 화천으로 이주한 건가요? 그럼 가족들은요?”

황혜란 : 모두는 아니고요. 아무래도 가족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웠죠. 그래서 나간 친구들도 있고... 또 화천으로 옮긴다는 소식을 듣고 새로 들어온 친구들도 있고... 우여곡절이 좀 있었죠. 처음 와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집구하기였어요. 서울처럼 돈만 있다고 집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워낙 물량이 없으니... 그래서 처음 한 달간은 우리 단원들, 그리고 가족들까지 모두 마을회관에서 합동 숙식했어요. 웃기죠? (웃음) 남편도 원래는 다른 일을 했었는데 지금은 저와 같은 일을 하고 있고요. 감사하죠. 불편한 점은 글쎄요.. 마트? 딱히 없어요. 시장에 가도 다 있으니까요.

▷“토요문화학교에서 아이들은 뭘 배우는 건가요? 그냥 노는 것 같던데...”

황혜란 : 놀이교육이니까요. 사실 저는 창작팀에 배우로 소속되어 있어서 전면으로 나가 아이들에게 교육하지는 않아요. 보조강사죠. 그런데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무엇을 배워갔으면 좋겠냐고 물으신다면, ‘나를 표현하는 것’이에요. 비슷해 보이지만 나이도 성격도 집안 환경도 모두 다른 아이들이거든요. 그런데 모두 공통된 목표가 있어요. 연극 한편을 만드는 것이에요. 그리고 연말에 무대에 올라가죠. 지금은 그 연극을 만들기 위한 준비단계고요. 연극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가 필요하죠. 함께 협력하고 소통하고 배려해야해요. 나와 전혀 다른 타인, 전혀 다른 환경의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려면 우선 나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를 정확히 표현할 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오해 없이 소통할 수 있으니까. 또 ‘내가 지금 어디가 아프다, 기분이 어떻다, 이건 좋고 저건 싫다’ 표현하는 것 자체가 치유라고 생각해요. 사실 여기에 불우한 가정환경, 아픈 마음의 아이들도 있어요. 그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변화하고 치유되는 것을 바라보는 게 강사로서 가장 뿌듯해요. 올해의 계획은 일본 돗토리 현의 아이들과 한일교류연극캠프를 진행하는 거예요. 일본 아이들이 화천으로 올 거고, 또 우리 아이들도 일본으로 캠프를 갈 거예요. 전혀 다른 환경, 심지어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봐야 해요. 그리고 느껴야죠. 소통하는 법을요. 왕도는 없어요. 나를 잘 표현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코 끝 찡해지는 감동의 순간이 있었다면요?”

황혜란 : 글쎄요. 매해 여름에 한번, 겨울에 한번 아이들이 무대에 서요. 정기공연이죠. 올해는 한일연극캠프로 11월에 한번만 공연할 계획이지만. 그 정기공연을 볼 때마다 굉장히 뿌듯해요. 내가 공연하는 것과는 다른 기쁨이에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그저 따라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그런데 꾸준히 연습을 통해 무대에 서면, 진짜 배우가 되고 자기만의 연기를 펼쳐요. 그런 것들을 볼 때 참 벅차죠. 그리고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화천에서 보낸 나의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랄까요. 아이들을 통해서 보답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좋아서 이곳에 있지만 사실 포기하고 온 것들도 많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의 공연을 보면 ‘내가 여기서 보낸 시간이 이런 것들을 만들었구나, 이걸 위해 내가 여기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보람차요.

황혜란 강사와의 짧은 인터뷰는 강렬했다. 선하고 여린 인상의 그녀는 역시나 내공 두둑한 프로였다.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가슴을 울리는 진심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남은 놀이 수업이 곧 계속됐다. 본격적인 ‘나를 표현하기’수업이 진행됐다. 아이들은 몸으로 무엇이든 표현했고 부끄러운 기색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 두세 명을 잡아 이야기를 시도했다.

▷“어떻게 3시간을 노니? 보고 있는 나도 지치더라”

“아니요.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모둠 만들어서 장소를 몸으로 표현하는 게 제일 재밌어요”
“저는 무대서는 게 제일 재밌어요. 꿈도 배우로 바뀌었는걸요!”
“처음에 낯 가렸는데 이젠 안 부끄러워요.” “또 다른 나...?”

시골아이들 특유의 순수함일까. 말하는 것에 스스럼없으면서도 예의가 있었다. 한 여자아이는 토요문화학교를 또 다른 나라고 표현했다. 이곳에 와서 진짜 나를 찾았다는 얘기다. 얼른 이 이야기를 강사님들께 전해주고 싶었다.

▷“나연이가 이곳을 ‘또 다른 나’라고 표현했어요. 여기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대요.”

김수아 : 감동이네요. 강사로서 그럴 때가 가장 뜻 깊어요. 아이들의 태도가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마냥 눈치보고 주눅 들어 있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 애를 보면 ‘얘가 계속 나올까?’ 걱정이 돼요. 그런데 그런 애가 매주 나와요. 나와서 가만히 앉아있는데 다음 주에 또 나와요. (웃음) 그러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거예요. 어눌하지만 자기 얘기도 시작하고, 카톡으로도 얘기를 보내온다니까요.

최재영 : 그 아이가 작년 공연에 참석을 못했어요. 내내 연습한 건데 막상 공연 일주일 전부터 집안에 일이 생겨서 무대에 못 선거죠. 그래도 공연 당일에는 관객으로 참석을 했더라고요. 공연이 끝나고 엉엉 울더라고요. 아쉬움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시기도 나고 뭐 복합적인 눈물이었겠죠. 저도 같이 찡하더라고요. 전 애들한테 많은 거 안 바래요. 여기 와서 신나게 웃고 떠들고, 스트레스만 풀어 가도 어디예요! 그저 연극이 아이들에게 격한 취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연극을 전업으로 삼겠다는 아이들을 보면 덜컥 겁이나요. 결코 쉬운 길이 아닌 걸 너무 잘 아니까...

김수아 : 작년에 두 명이 연극영화과를 지원했어요. 화천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래요. 한명은 붙고 한명은 떨어졌지만... 화천에 나름 장족의 발전이 생긴 것 같아 좋지만 부담스러울 때가 많죠. 영향력을 끼친다는 게 조금은 무서워요.

최재영 : 그런 게 있어요. 연극하는 피! 연극하는 사람들은 다 알거든요. 그냥 딱 보면 느껴져요. 가끔 그 피가 보이는 애들이 있어요. 그때 굉장히 희열이 느껴져요. 그러면서도 좀 부담스럽고 (웃음) 작가님도 아시잖아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그 때부턴 그 일이 싫어지는 거. 뭐든 취미일 때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도 하겠다는 피가 있으면 말리진 않을 거예요.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도와야죠.

▷“토요문화학교가 언제 가장 보람되게 느껴지시나요?”

김수아 : 1년에 한두 번 정기공연을 하거든요. 아이들이 사실 굉장히 바빠요. 학교다니랴 학원다니랴. 그러면서도 정말 열심히 고생고생해서 무대를 준비해요. 무대에 오른 그 모습도 너무 자랑스럽고 벅찬데요.. 무대를 끝내고 내려와서 아이들이 ‘선생님, 다음 해에는 이렇게 해요, 저렇게 꾸며 봐요.’라고 얘기하는 걸 보면... 참 뭉클해요. 다신 안 할 것처럼 그 고생을 하고 또 내년을 준비하려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고 값지죠.

최재영 : 정말 쑥스러움이 많은 여학생이 있었어요. 현서라는 아인데.. 쭈뼛쭈뼛 말도 못하고 해서 ‘쟤가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했죠. 그래서 저랑 약속을 했어요. 그때 공연 주제가 독백이어서 학생들이 혼자 무대에서 자기 이야기를 독백하는 거였거든요.. ‘정 떨리면 무대에 올라서 소리 내지 않아도 돼. 마음속으로 대사를 읊어’ 했는데 정말로 그 애가 무대에 올랐어요. 그리고 3분 동안 정적이 흘렀죠. 관객들은 다들 뭐야? 황당했을 거예요. (웃음) 저랑 그 아이만 아는 그 감동은, 말로 표현 못해요. 약속을 지켰어요. 아이들이 그렇게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기뻐요.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선생님들도 변화하는 게 느껴지시나요?”

최재영 : 애들이 눈에 밟혀요. 안보면 생각 안 났는데, 이제는 봐도 안 봐도 생각나요.
김수아 : 저도 똑같아요. 옛날에는 안보면 아웃오브안중이었는데 (웃음) 이제는 안 보이면 지금 애들은 뭘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보고 싶네요.

아이들이 궁금해진단다. 안보이면 눈에 밟힌다는 김수아, 최재영 강사. 아마 당분간 이들이 화천을 떠날 일은 없을 것 같다. 궁금해진다는 건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