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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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진부’ 활짝 열린 ‘문막’

두 예술 마을 이야기

글 / 한나리, 사진 / 길광수, ’16.5月

따사로운 볕에 산과 들, 거리마다 활기가 넘치는 어느 봄날, 두 사람이 만났다. 평창군 진부면에 미술꽃을 피우고 있는 권용택 회장(평창미술인협회)과 원주시 문막읍에 몸짓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김원호 대표(아트코어굿마을). 주민들과 함께 예술마을을 지어가는 두 사람의 다른 듯 닮은 이야기.

우리 마을은 참 별나~!

권회장 : 우리 ‘평창미술인협회’가 있는 평창군 진부면은 참 재밌는 곳이에요. 이 동네는 한약단지가 있어서 특히 당귀가 유명하고 산나물 축제, 송어 축제도 열리는, 지역상업과 농업이 혼재된 곳이죠. 진부는 평창군의 총 8개 읍면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에요. 특이하게도 군청소재지인 평창읍보다 훨씬 많다니까. 그리고 유난히 외부에서 온 예술가, 특히 화가들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죠.

김대표 : 우리 ‘아트코어굿마을’이 있는 원주시 문막읍은 강원도에서 철원 평야 다음으로 가장 넓은 평야 지대입니다. 지금은 공단이 형성되어 있어 농어민보다는 젊은 노동자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요. 그래서 다른 읍면에 비해 연령대가 굉장히 낮은 편이에요. 덕분에 어린 학생들을 키우는 젊은 학부모들이 많은데 정작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원주시내로 나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문화적 갈증이 굉장히 심한 편이에요.

권회장 : 그쪽은 젊은 층의 갈증이 있군요? 우리 마을은 아무래도 농사짓는 주민이 많다보니 문화적 갈증을 느끼는 층이 주로 노년층입니다. 물론 문막의 젊은 학부모들처럼 그 갈증이 겉으로 드러나진 않아요. 기회가 없으면 없는 대로 다들 그냥 지내는 거죠. 그런데 사실은 숨은 갈증이 있었다는 걸 미술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알게 됐어요.

김대표 : 그래요? 그럼 티가 안 나는데 처음에 어떻게 눈치 채셨나요?

권회장 : 작은 시골마을에 이름 있는 화가들이 20명 이상 들어와 있으니 자연스럽게 미술단체가 형성되고 ‘우리의 재능을 지역에 환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이게 됐죠. 그래서 마을에 전시회를 열었는데, 주민들이 처음엔 이런 기회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더라고요. 개막식 때에만 잠깐 들를 뿐 그 이후로는 전시장 문턱을 넘는 것조차 어색해했어요. 그때 ‘아! 이분들의 문화 향유 습관을 바꿔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지인들을 한두 분씩 전시장에 직접 데려가서 설명도 해드리고 안내해드렸더니 비로소 솔직한 속내가 나오더라고요. ‘나도 옛날에 그림 참 좋아했는데…’, ‘나도 어렸을 때 그림만 그렸다 하면 항상 교실 뒤에 걸리곤 했어.’라면서요. 그때 주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눈치 챘어요. 전시도 전시지만, 교육을 통해 숨은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켜드려야겠다! 실제로 귀촌하신 분들이나 은퇴한 70대 주민들의 경우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의욕이 굉장히 강합니다.

김대표 : 다들 겉으로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안에선 열망이 꿈틀꿈틀대고 있었군요? 반면 이쪽은 주민들은 젊어서 그런지 대놓고 아쉽다는 티를 내요. 우리 문막은 원주시의 변두리 정도로만 인식되어서 소외감이 심합니다. 사실 복잡한 시내에 비해 유휴공간도 넓고 수영장이나 주민자치센터의 복지시설 등 하드웨어적인 조건은 참 좋아요. 그런데 젊은 학부모층의 교육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한 거죠. ‘읍이라는 이유로 우리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다’는 그 갈증을 해소해주기 위해 문막에서의 예술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고,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학부모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 엄마는 예술쌤’이라는 엄마들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어요. 학부모를 교육하면 자연스럽게 자녀까지 교육시키게 되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거든요.

권회장 : 그거 참 좋은 발상이네요.

여태껏 이런 끼를 어떻게 참고 살았대?!

김대표 : 진부의 미술수업은 어떻게 진행하십니까? 지역 특성을 살린 특별한 커리큘럼이 따로 있나요?

권회장 : 다양하게 진행합니다. 소묘, 먹그림, 꽃그림 그리기, 우리 고장의 명승지 그리기…. 그리고 화가가 많은 지역이니 직접 전문가의 작업실을 답사하기도 하고, 평창의 풍경을 그린 김홍도의 그림 속 명소를 탐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익힌 재능으로 지역에 기여할 수 있도록 벽화제작에도 참여합니다.
사실 처음엔 전문가들의 시선으로 기능 교육 위주의 수업을 했어요. 그런데 수강생들과 대화가 잘 안 되고 농사일 때문에 꾸준히 수업을 듣지 못하고 빠지는 사람도 생기고, 아무튼 수업 진행이 수월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기능보다는 즐거움을 위한 수업을 합니다. 우선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교감이 되고 가까워져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울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1시간 정도는 붓을 놓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해요. 그랬더니 출석률도 좋아지고 다들 재밌어합니다. 문막에선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어떤 수업을 진행하고 계시나요?

김대표 : 저희는 몸짓 예술 위주로 수업합니다. 모듬북, 그룹다이내믹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움직임놀이, 한국형 오이리트미 등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돼있죠. 거리낌 없이 맘껏 내 안의 에너지를 표출하는 겁니다. 물론 맨 처음엔 어색함을 깨고 몸을 움직이게 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첫 수업 때의 엄마들은 마치 유리잔 같았죠. 다들 위축돼 있고 ‘00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지도 오래됐고…. 그런 사람들 앞에서 곧이곧대로 ‘여러분이 가족들의 예술적 소양을 이끌어가는 코디가 돼야 한다’고 얘기더니 수강생이 떨어져 나가더라고요. ‘아차!’싶었죠. 그래서 코디 역할은 유보하고 일단 ‘못 놀아본 한을 풀어주는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어요. 큰 소리가 나는 북을 마구 두드리고 몸을 맘대로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치고…. 그랬더니 엄마들이 해방구를 찾은 것처럼 굉장히 즐거워하더라고요. 수강생끼리 허물없이 표현하며 깔깔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녀들이었습니다. 이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캠프를 진행했을 때 많은 엄마들이 눈물을 보였어요. 처음으로 아이들로부터 ‘우리 엄마 멋지다’라는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죠. 이젠 지역 축제 등 공연 무대에 서는 걸 굉장히 즐기게 됐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따로 모여서 열성적으로 연습하기도 해요.

권회장 : 공감합니다. 스스로 무언가 해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성취감은 상당히 큰 행복인 것 같아요. 우리 진부의 수강생들도 수업을 통해 완성한 작품, 제작에 참여한 벽화 등을 가족들에게 선보이면 손주들이 SNS에 올려서 ‘우리 할아버지 작품’이라고 자랑한대요. 미술활동을 계기로 가족들과 소통이 활발해지고, 또 주변에서 인정받으니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겠어요?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제가 수강생들에게 크로키북을 하나씩 나눠준 적이 있어요. 수업시간만이 아니라 언제든 그리고자 할 땐 장소, 시간 불문 꺼내서 그려보시라고. 하루는 한 할머니께서 서울에 갔을 때 지하철에서 문득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크로키북을 꺼내 앞사람을 그렸대요. 이게 얼마나 이색적인 풍경입니까? 나이 많은 할머니가 지하철에서 갑자기 크로키를 한다는 게. 사람들이 다들 신기한 표정으로 자기만 쳐다보더래요. 그때 어깨가 묘하게 으쓱해지더랍니다. 이 즐거움이 소문이 나니까 요즘은 수업 정원이 꽉 찼는데도 계속 수강신청이 들어와요. 다른 지역 노인회관의 부러움도 사고, 평창읍에서 수업 요청도 들어온다니까요.

내가 못살아~

김대표 : 수강생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면 저도 행복합니다. 그런데 종종 즐거움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때는 곤혹스러워요. 우리 수강생들은 엄마들이다보니 굉장히 잘 뭉칩니다. 서로 친목이 두터워져서 수업시간 외에도 따로 만나서 식사하러 다니고 나물도 캐러 다니더라고요. 하루는 엄마들이 단체로 땡땡이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알고 보니 자기들끼리 수업 빼먹고 다리 밑에 고기 구워먹으러 몰려갔다지 뭡니까? 아이고, 아무리 친목이 좋아도 그렇지 수업은 하고 갔어야죠. 사정사정해서 30분만이라도 수업에 참여한 후 놀러가라고 붙들어 오느라 혼났어요. 이러라고 에너지 표출하는 방법을 가르친 게 아닌데…. 아, 물론 땡땡이의 긍정적 효과도 있긴 있어요. 땡땡이의 짜릿한 즐거움까지 공유하면서 더 친해졌는지, 그날 이후 저마다 한두 명씩 수강생을 더 데려왔거든요.

권회장 : 하하하. 아예 수업을 야외에서 해보는 건 어때요? 땡땡이친다면 쫓아가서 수업할 수밖에요.

김대표 :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아예 고기불판 옆에서 수업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겠군요.

권회장 : 우리 수강생들은 배우면 배울수록 표현의 즐거움을 넘어 기능적 전문성으로까지 욕심내는 통에 제가 난처해지곤 합니다. 더 잘 그리고 싶다는 열망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기능을 가르치면 전문가를 키우는 미술학원과 다를 바가 없지요. 사람들은 흔히 피사체와 닮게 그려야만 잘 그린 그림이라는 편견이 있어요. 우리 수업에선 그 편견을 깨고 어떻게 표현해도 상관없다는 걸 알려주고자 해요. 미술학원에서 입시생들에게 아그리파를 그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오랫동안 배워온 수강생은 더더욱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하고, 그 수준에 발맞춰줬다간 새내기 수강생들이 미술의 즐거움을 놓치게 되고 말죠. 미술교육의 목적은 자기 욕구 실현인데 그 욕구가 예술 기능의 정점에 설 것이냐 아니면 나의 만족을 추구할 것이냐에서 갈라져요. 물론 둘 다 조화를 이뤄야 하겠죠. 그래서 요즘은 3년차 수강생들의 경우 지역의 미술인 소그룹을 형성해 그쪽 회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어요. 전문성을 추구하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거죠.

시골 마을? 우리 동네는 예술마을!

김대표 : 저는 우리 문막이 원주의 변두리, 공단 지역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예술적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길 꿈꿉니다. ‘문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캐릭터도 없어요. 화훼단지 이미지를 이용한 캐릭터 개발 얘기가 나오고 있다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예술’을 특화시킨 캐릭터가 탄생한다면 꽃보다 더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문막엔 젊은 학부모들, 특히 엄마들이 많고, 그 엄마들이 모두 예술적 소양을 지닌 각 가정의 ‘예술쌤’이 된다면, 문막은 예술의 고장이 되는 거니까요.

권회장 : 우리 진부도 누가 계획적으로 추진한 게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미술 작가들이 모여들어 작업실과 갤러리가 밀집된 지역이 형성되었어요. 그래서 읍,면단위 관광 안내 브로슈어를 보면 ‘가볼만한 곳’으로 우리 지역이 소개되고 있죠. 예술가들이 스스로 꾸린 미술인 마을, 그리고 주민들이 모두 그림을 그리는 예술 마을로서 진부가 사람들에게 인지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