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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진짜 가족’을 만나다

아르페다고지 춘천

글 / 권지애, 사진 / 김희경, ’16.8月

아트페다고지 춘천 : 지역 내 트래킹 코스를 교육현장으로 활용, 가족 구성원 간의 원활한 소통과 유대감 복원을 목표로 ‘가족 트래킹-길 가운데 이야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 이하의 자녀를 둔 가족이라면 누구나 참여해 매주 토요일 함께 여행할 수 있다.

오늘은 13주간 매주 토요일 계속됐던 ‘가족 트래킹-길 가운데 이야기’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간의 추억들을 틈틈이 영상으로 기록한 가족상영회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불이 꺼지고 가족들이 자리에 앉자 영상이 시작됐다. 가족들은 하나 둘 13주간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리 아빠는 청소를 못하고 수영을 잘 해요! 엄마는 요리를 잘하구요. 그런데 똑같은 요리만 반복하는 건 비밀이에요!” -6월 화천 파로호 한뼘길 트래킹 ‘가족프레젠테이션’- 中에서


“으하하하!”
“민용 오빠 진짜 웃겨!”

영상 속 민용이의 재치에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민용 엄마는 연신 휴지로 얼굴을 닦아냈다. 척 봐도 민용이는 여섯 가족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하지만 13주 간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오늘은 참석하지 못했다. 태권도 품 심사가 있는 날이라고 했다. 그래도 민용이의 엄마 아빠는 참석해 자리를 지켰다. 영상이 끝나고 민용 엄마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길 가운데 이야기’는 사춘기 아이들을 달래고 어르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범, 현석이네 가족

“부모는 아이의 인생 선배죠. 친구 같은 엄마 아빠가 되고 싶어요”


현범이네는 말썽꾸러기 두 아들만 있는 집이다. 좀처럼 가만있질 못하는, 보기만 해도 심란한, 딱 그 나이 때 남자아이 둘!

현석 엄마 : 남편한테 애들 미뤄놓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어요. (웃음) 주부들은 밖에 나갈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토요일마다 좋은 데 나가서 흙 밟고 풀 냄새 맡는 게 힐링이 됐어요.
현석 아빠 : 부부사이에도 개선된 점이 있는 거 같아요. 애들하고 친해지니까 이상하게 아내한테 할 말이 늘어요 (웃음) 또, 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애들이 가끔 와서 팔짱을 낀다거나 손을 잡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솔직히 감동해요. 애들이 나한테 맘을 터줬구나하는 생각에...
현석 엄마 : 되고 싶은 부모요? 그건 욕심이 아닐까요? 격이 없는 사이, 친구 같은 엄마면 됐어요.

소연이네 가족

“우린 주말부부예요. 소연이가 엄마바라기라 걱정을 많이 했죠”


외동인 소연이가 아빠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길 가운데 이야기’를 시작한 소연 엄마.

소연 엄마 : 처음엔 13주를 다 지켜야한다는 시간의 압박이 굉장했어요. 토요일 하루를 통째로 포기해야 했으니까. 일단 부딪혀보자 하고 신청했죠. 별 수 없음 빠지지, 하는 생각으로.
소연 아빠 : 그런데 한 번도 안 빠졌어요. 나중에는 ‘길 가운데 이야기’가 가장 우선순위가 됐다니까요. 이전에는 딸애가 너무 예쁘니까 애정표현을 막 했거든요? 근데 그걸 싫어할 나이가 된 거예요. 되게 서운했는데 지금은 이해해요. 이제 다르게 표현하는 법을 찾아야죠.
소연 엄마 : 대화의 힘이 참 커요. 대화하다보면 우리 세 식구, 더 친해지겠죠?

“현석이는 엄마 아빠랑 얼마나 친해졌어?”
“그냥 그래요”

“현석이네 가족은 왜 좋을까?”
“안 좋은 점은 알아요. 아빠가 술 먹는 거!”

“엄마 아빠는 뭘 좋아하실까?”
“그냥 형이랑 놀래요”

“소연아, 아빠 이제 안 무서워?”
“아빠 원래 안 무서웠는데요?”
“....”

변갑성, 김미영강사 부부

“대화하기에 길 위보다 좋은 장소가 있나요?”
“저녁 밥상 시간은 꼭 지켜야 해요”


알고 보니 변갑성, 김미영 강사는 부부였다.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생각했는데 아이가 셋이란다. 프로그램 ‘길 가운데 이야기’ 의 전반적인 교육과정을 듣고자 했는데, 급히 전략을 바꿨다.

▷가정에서 어떤 엄마 아빠세요?
변갑성(이하 변) : 친구 같은 아빠요! 애가 셋인데 큰 딸이 절 닮아서 싸가지가 없어요. (웃음) 걔한테 특히 얘기를 많이 해요. 저 어릴 적 얘기, 창피 당했던 얘기, 공부하던 얘기, 사소한 것들도 다. 하다보면 듣더라고요. 듣다보면 어느새 걔도 자기 얘기를 해요. 그럼 대화가 시작되는 거예요.
김미영(이하 김) : 우린 가족 간에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온 가족이 다 모이는 시간이 저녁 밥상 시간이잖아요. 그 시간만큼은 꼭 지키려고 해요. 돈 많고 집 크고 다 무슨 소용이에요? 따끈한 저녁밥상, 그리고 오순도순 둘러앉아 하는 얘기들이 가장 소중하단 걸 알아야죠.

▷정작 중요한 건, ‘길 가운데 이야기’에 참여한 아이들이 변화가 없다구요!
변 : 애들은 그냥 애들이죠, 특별한 데 없고 모난 데 없는 (웃음) 그래도 제 눈엔 변화가 보여요. 민용이라는 애가 있어요. 걔가 아빠를 되게 무서워했어요. 오죽하면 ‘너 아빠랑 얼마나 친해?’ 물어봤을 때 ‘죽지 못해 20%’ 라고 했던 애예요.
김 : 그런데 프로그램이 거의 끝날 때 쯤 다시 물어봤을 땐 ‘50% 상승!’ 이라고 하더라고요. 엄청난 변화죠. 여긴 큰 불화가 있는 가족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오는 곳이 아니에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 친해지려는 의지가 있는 가족들이 오는 곳이죠.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깨인 부모’들이 많아요.

▷교육 현장을 굳이 ‘길 위’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변 : 결정적으로 기획자들이 걷는 걸 좋아해요! (웃음) 길을 걷다보면 옆에 사람과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요. 휴대폰 같은 장애물도 사라지고. 자연을 느끼고 내 옆의 사람과 소통하기에 길 위보다 좋은 장소가 또 있을까요?
김 : 정상을 목표로 하는 게 등산이라면 트래킹은 마실이에요. 흙냄새를 맡고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안정을 찾으면 주위를 둘러보게 돼요. 내 옆에 누가 있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자연스레 알게 되죠.

13주간의 길이 끝나고...

과연 그들은 길 위에서 ‘진짜 가족’을 찾았을까? 아마도 그 험난한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싶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 그 지점은 아이들이 또 다른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되어있을 때쯤일 테니까.

“소연이는 엄마아빠한테 하고 싶었던 말 있어? 속닥속닥 얘기해볼까?”
“...평소에 엄마한테 만날 물어봐요. 아빠 언제오냐구. 근데 막상 오면 짜증만내요.”
“왜에?”
“몰라요. 근데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