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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서점의 달콤 쌉싸름한 이야기

이효순 / 상상놀이터, ’17.6月

책을 고르는 것은 일종의 ‘체험’이다. 그 책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전, 책의 일부를 체험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용이 흥미로운지,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이야기가 있는지부터 종이의 재질은 어떠한지, 글자 크기는 적당한지와 같은 사소한 것까지.

얼마 전 블로그에서 서울의 유명한 모 서점에 관해 남긴 후기가 SNS를 통해 여기저기 공유된 적이 있다.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두루뭉술한 기대를 품고 제법 이름이 알려진 서울의 한 서점에 방문하게 된 남자가 있다. 하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진 못했다. 까닭인즉슨 책을 몇 권 남짓 골라 의자에 앉아 읽으려고 하던 찰나, 서점 운영자가 그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책을 구입하셔야 여기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 후 그는 자의 반 타의 반 몇 차례 더 그곳을 방문했으나 처음에 느꼈던 불쾌함을 계속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한마디로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책을 사려고 마음먹고 간 것임에도, 어딘가 편안하게 책을 고를 수가 없고 자꾸만 운영자의 눈치를 보게 된다. 글 속에서 그는 불쾌한 감정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오프라인 서점의 존재 이유에 관해서도 묻는다. '서점이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책을 파는 곳임을 이해’하면서도, 고객들로 하여금 책을 고르는 재미를 느끼게 하려면 책을 만져보고 읽어보는 이른바 ‘고르는’ 행위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더욱이 그저 예정에 있던 책을 사서 나오는 게 전부라면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나은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 서점이란 도대체 어떤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책방이 있다. 속초에 위치한 김영건씨와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동아서점이다. 동아서점은 고개만 돌려도 길목 어딘가에 있던 흔한 ‘종합서점’이다. 요리책도 있고 수험서도 있는, 소설책과 철학책과 과학책이 한데 뒤섞인 그런 곳이다. 그러나 동아서점은 다른 곳에선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동아서점만의 독특한 ‘편집’이 그것이다. 책을 찾다보면 어디에 꽂혀있을지 바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책들이 있곤 한다. <연필깎기의 정석>, <쾌락도구사전>처럼 이 분류라고 저 분류라고 하기엔 애매한 책들이 있는가 하면, <히틀러의 비밀서재>, <쓰기의 말들>처럼 이 분류에도 한 발, 저 분류에도 한발씩 걸치고 있는 책들도 부지기수다. 또한 ‘빅 히스토리(Big history)’에 관한 책들은 과학인지 역사인지 모호하고, 자기계발과 에세이는 역시 어느 분야에서 찾아야 할지 헷갈린다. 그래서 김영건대표는 기존 범주가 아닌 새로운 테두리를 생성하고 편집(분류)하기 시작했다.
‘퇴사의 이유’, ‘쓰잘데없이 고귀한 기술들의 목록’ 같은 자유분방한 카테고리에서부터, ‘아나키즘’, ‘기본소득’ 등 현실세계에서의 중요도가 서가 분류로 미처 반영되지 못한 카테고리까지 다양하다. 동아서점만의 다소 실험적이고 독특한 카테고리들이 생성된 것이다.

이처럼 카테고리의 신선도를 유지시키고자 애쓰면서 특정한 주제나 맥락을 음미할 수 있는 진열 공간을 꾸미고 있다. 이것을 ‘기획전’이라고 부른다. 문고본의 출간 경향을 반영한 ‘문고의 시대’라는 코너와 속초 출신의 작가들과 속초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놓기도 하고 작지만 단단한 출판사들을 계절별로 소개하는 공간을 만들어둠으로써 출판시장에서 소외되는 좋은 책들을 끄집어내려는 시도들이 그것이다..

그렇게 발굴한 책들은 간혹 동아서점만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여, 동아서점하면 떠오르는 일종의 상징이 되었단다. 특히 지난겨울 출간된 프랑스 소설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속초에서의 겨울>이라는 소설은 출간 직후 몇 달간 동아서점만의 베스트셀러 1위였고, 작가가 감사의 의미로 동아서점을 방문하기도 했단다. 그렇게 <속초에서의 겨울>은 현재까지도 여행객들이 종종 찾는 스테디셀러가 되었으니 김영건대표의 참신한 시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우리에게 책방, 서점은 어떤 의미인가? 단순히 책을 구입하는 곳, 아니면, 책을 고르는 곳? 책방, 서점은 우리가 책을 고르기 위해 직접 가야하는 곳일 것이다.

그럼 책을 고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책을 고르는 것은 일종의 ‘체험’이다. 그 책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전, 책의 일부를 체험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용이 흥미로운지,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이야기가 있는지부터 종이의 재질은 어떠한지, 글자 크기는 적당한지와 같은 사소한 것까지. 책을 ‘만져보고 읽어보는’ 것을 거쳐야 비로소 만족스러운 책 구입이 된다. 이것은 책방, 서점의 강점이자 가장 큰 존재이유다.

우리는 서점에서 책을 체험하고 ‘나의 책’을 고른다. 그 책은 나와 정반대의 삶과 일상일 수도, 같은 상황과 경험을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반성, 혹은 치유를 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서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다양한 삶과 인생이 오마주 되거나 오버랩 된다. 책은 삶을 함께하는 동네 친구이자 옆집 형이며 스승이다. 그리고 서점은 나의 동네이고 학교이다. 이 작은 학교에서 우리는 삶을 배우고 느끼면 성장하게 된다.
나를 돌아보고 나아가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동아서점과 문화예술교육은 닮아 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딱히 어떤 것을 배우려 하지 않아도, 내면의 나를 바라보며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는 곳, 도란도란 사람들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곳, 그런 곳이 동아서점이다.

나는 오늘도 동아서점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