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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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인쇄박물관

전은실, ’17.11月

활자들이 한자 한자 모여서 문장이 되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들이 모인 책이 우리 사는 세상의 이야기 입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전시물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인생이란 책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있는 곳.

2년 전 김유정 문학마을에 개관한 책과인쇄박물관은 오래된 책과 책 만드는 기계와 도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오랜 세월의 먼지가 쌓인 활자들을 고운 붓으로 하나씩 털어내었다. 차곡차곡 활자상자에 쌓여있는 활자와 조판물들은 조금만 손이 잘못 닿으면 쏟아지고 무너지기 쉬워 매우 세심하게 다뤄야 했다. 전시를 위해 시간을 머금은 활자들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벽에 채워나갔고, 빼곡히 들어선 수백만 자의 활자들이 책과인쇄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을 처음으로 맞아준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활자 벽 앞에서 사람들은 말하기 어려운 저마다의 느낌으로 활자가 주는 에너지를 받곤 한다. 박물관 내 가장 인상 깊게 꼽는 유명한 포토 스팟이 된 이 공간은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독서하는 사람은 반드시 손을 모으고 꿇어앉아 공경스런 자세로 책을 대해야 한다.’ 책과인쇄박물관 고서 전시실 한켠에 적혀있는 율곡이이 선생의 말이다.
우리는 이제 책을 쉽게 고르고 살 수 있는 시대에 살며 대부분 상당한 권수의 책을 소유하고 있다. 책은 언제나 머리맡에 있는 친한 친구라고는 생각했지만, 책을 그토록 소중하게 대한 적이 있었던가….
150여 년전 프랑스에서 제본까지 마친 책이 단단히 굳도록 고정시켜주던 책 누름기, 130여년전 벨기에에서 청년이 힘차게 페달을 구르며 한장씩 인쇄해 생계를 이어갔을 페달형 레터프레스 머신, 100여년전 서민들이 밥 한끼 먹을 만 한 돈으로 사서 읽을 수 있어 책 읽기의 대중화 바람을 불게 한 딱지본 소설, 40년 전 여성들에게 사무직 일자리를 창출해 주었던 청타기, 활발하게 움직이며 많은 책을 찍어내던 활판인쇄기 등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전시물, 그리고 그에 얽힌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며 관람객들과 소통한다. 또,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해 책 한권이 탄생하기 까지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땀방울을 지닌 여러 공정이 있음을 알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아끼고 사랑할 것을 당부하기에 관람이 끝난 후 박물관을 나설 때에는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짐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보는 것 에서 그치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글을 한 자 한 자 만지고 만들어 담아가고 싶다면 활자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박물관의 체험프로그램을 이용 할 수 있다. 그 동안 박물관의 체험교육을 진행하며 많은 참가자들과 수많은 명문장들과 사연을 담은 이야기들의 탄생현장을 함께 했다. 원고를 쓰고 문선(원고에 맞게 활자를 뽑아내는 작업), 조판(문선한 활자를 배열하여 심는 작업), 인쇄까지 마치고 나면 조판물을 해판하는 것이 맞으나 이야기를 간직하며 탄생한 문장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해서 해판을 미루고 미루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여운이 많이 남는 문장들은 박물관 곳곳에 전시하고 있다. 참가자들의 원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은 ‘지금’, ‘시간’, ‘가족’, ‘사랑’, ‘힘내’, ‘행복’ 등이다. 짧은 글을 긴 시간 동안 집중해 만들어내는 이 따스한 마음이 깃든 문장들과 함께 일 때, 이곳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아날로그적인 공간임을 실감한다.

활자가 남아 있는 곳은 드물고, 예전에 활자를 다루셨던 분들을 뵙기도 쉽지 않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흔적을 찾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궁금증을 풀어가고 있다. 한국의 많은 박물관들과 함께 소장유물 대여를 비롯한 전시협조 업무를 통해 교류하며, 국내뿐 아니라 외국의 유럽과 일본의 인쇄박물관을 방문하며 서로 조언을 구하고 배우고 있다. 시간을 잇고, 동서(東西)를 잇고, 세대를 잇는 소중한 박물관이 되기 위해 멈추어 있고 싶지 않다.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늘 새롭고 싶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는 보이는 그것이 있다면, 남들보다 더 설레게 하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소명이라고 한다. 책과인쇄박물관은 사물과 책. 그 안에 있는 사람과 그의 이야기에 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그 이야기를 전하는 그 길을 천천히, 지치지 않고 걸어가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왜 춘천인가, 왜 여기에 박물관이 있느냐고 묻지만, 낭만과 젊음, 기차와 문학이 있는 춘천.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은 또 어디가 있을까…. 박물관 내의 전시는 물론이고, 건축, MI 모두 ‘책’을 영감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방문하시는 분들이 전시뿐 아니라 건축이 만들어낸 공간, 분위기, 낭만의 춘천이 선사하는 자연, 빛, 그리고 책…. 그 중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고 책과인쇄박물관을 만끽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