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사람과 현장이 있다 | 현장이 있다

꿈꾸는 <문화파출소>입니다

정지은 / (사)연극놀이터 해마루 이사, ’17.6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문화체육관광부, 경찰청과 함께 치안센터를 문화예술교육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문화파출소>를 순차적으로 전국 9개 지역에 개소한다. <문화파출소>는 단순히 치안센터 공간을 재단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운영까지 지원하는 사업으로, >치안을 담당하는 치안센터장과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문화보안관이 상주하여 지역주민과 소통하게 된다. - ‘서울디지털신문, 2016.12.29’

보도에 따르면 <문화파출소>는 장르별 문화예술교육과 주민자율프로그램, 범죄피해자와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치유프로그램까지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내 심리상담사, 예술치료사들의 네트워크와 경찰청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더불어 문화보안관의 역할이 지역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전 방위 활동으로 확대되어야 하며, 문화예술프로그램도 일 년 동안 30여 가지를 진행해야 하니 그 풍요로움이 호화롭기까지 하다.

기대와 걱정을 안고 현장인 춘천 동면에 도착했다. <문화파출소>는 가산초등학교와 200여 미터 거리를 둔 삼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위에는 넓은 논밭이 있고, 소양감 댐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마을의 대로가 되는 한적한 농촌이다.
예쁘게 꾸며진 <문화파출소>는 예닐곱 명 되는 사람들이 나무 자르는 기계 주위에서 주의 깊게 설명을 듣는 모습과 잘 어울린다. 그곳에서 문화보안관의 역할을 탄탄히 하실 ‘통통 창의력 발전소’ 대표님과 치안센터장님(옛 파출소 소장)을 함께 만났다. 나는 <문화파출소>가 문화센터나 주민자치센터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특별한 파출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리라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가득 듣게 되었다.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 주지 않는 경직된 행정지침. 프로그램 운영의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 지역의 여건과 맞지 않는 행정 일정으로 초등학교 무료 방과 후 프로그램과의 파행적 관계 형성. 4시 학교 방과 후가 끝난 뒤 6시 파출소 문 닫는 시간 까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 지역 내 다른 장소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제약 등 진행 당사자의 걱정이었다.

즉 ‘파출소 앞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여기는 사람이 안다니고 차만 다니는 곳이다’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이다. 농촌지역의 중심가에서 떨어져 삼거리에 홀로 서 있는 파출소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진행자의 자율 권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문화파출소> 센터장께 “파출소는 마을에서 어떤 곳입니까?” 하고 물었다. 너무나 기본적인 질문이어서 그런지 즉답이 나오지 않아 다시 물었다.
“어떤 <문화파출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꿈을 꾸신다면?”
“허허허,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이고 사람 사는 곳이 되면 좋지요”
‘통통 창의력 발전소’ 대표님께도 물었다.
“파출소 앞 느티나무 아래에서 공연도 하고, 저 삼거리 차들을 멈추게 하여 공연도 보게 하고 아, 꿈은 많지요.”

<문화파출소>는 기존 파출소의 해체이며 새로운 공간을 생성시키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새로운 공간 만들기엔 마을에는 이미 빈 공간이 너무나 많다. 외부에서 가져 온 프로그램을 즐기기에는 문화센터와 차별성도 없다. 초등학교 무료 방과 후 수업과의 차별성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그전에 없었던 파출소의 새로운 역할들을 주민들이 스스로 창출해 낸다면 그것이야말로 멋진 일이 될 것이다. 브라질의 예술가 ‘아우구스또 보알’은 시 광장에서 토론연극을 통해 법 개정을 했다. 무한도전 프로그램에서 ‘국민의원’을 만들어 실제 우리의 이야기를 TV에서 주장할 수 있게 했던 것처럼, 문화의 방식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재구성하는 주요 동력이 된다면 파출소가 <문화파출소>로 재탄생하지 않을까?
얼마 전 페이스 북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내용은 어떤 소년이 파출소에 뛰어 들어와 ‘가정폭력을 당했다!’고 소리 질렀고 놀란 파출소 경관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 얼굴은 빨간 매직으로 낙서가 되어 있었는데, 낮잠을 자던 아이에게 형이 낙서를 한 것이었다. 잠에서 깨고 그것을 발견한 아이는 형이 폭력을 행사했다며 파출소로 달려 온 일이었다. 이처럼 엄마 아빤 일하러 가시고, 나는 답답해 죽겠는데 나의 시시비비를 가려줄 곳이 있다면. 혹은 부모가 다투시면, 나이 드신 분들이 새로운 세상의 정보에 대해 물어 보고 싶다면. 잘 모르겠지만 어떤 법적 조항이 있을 것 같은지 알고 싶다면. 소음을 내는 이웃에게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을 때 <문화파출소>에서 소통하게 된다면 참으로 멋진 일일 것 같다.
물어볼 사람이 없을 때에는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며, 동네에서 생긴 인권문제나 권리의 충돌을 주제로 토론과 연극을 하면서 소통, 담론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동네의 자랑을 노래로 만들 수도 있고, 부끄러운 이야기는 수다로 털어 버리기도 한다. 문화예술로 소통의 방식들을 알아가고, 직접 의사소통의 토론연극은 문제를 다루어 낼 수 있다. 재미난 일이다.

<문화파출소>가 공동체 안에서 소통하고,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이해하며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곳이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화를 창출하고 재생산할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면 <문화파출소>는 지역에서의 삶을 재구성하는 주요 동력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럴 때 꿈꾸고 있는 <문화파출소>가 비로소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춘천 동면 <문화파출소>의 연착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