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사람과 현장이 있다 | 사람이 있다

잠시 멈추고 삶을 돌아보는 방법

유재균, ’17.8月

상업영화와 비상업영화의 이분법은 희미해져가고 있고, 누구에게는 히어로 무비가 인생을 바꾸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다양한 가치관과 판단기준은 존중받아야 한다.

학창시절에는 컴퓨터가 좋았다. 공부로는 어정쩡했고 대회 수상이나 자격증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다는 게 뿌듯했나보다. 과정이 순탄하진 못했지만 고등학교도 정보올림피아드 실적이 좋다는 타지 사이버정보통신과에 진학했다. 컴퓨터 공부‘만’ 하면서 2학년이 된 나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가?’
공부를 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분야가 뭐였나, 생각해보니 그래픽 작업이었다. 미술학원도 잠깐 다녀봤는데 동그라미도 제대로 못 그리는 것이 영 소질이 없었다. 실기 없이 진학 가능한, 그래픽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들을 찾다가 모교를 알게 되었다. 담임선생님도 어렵다고 하시는데 고집을 부리더니 벼락치기로 준비한 수능은 운이 따라주었다. 그렇게 진학한 대학, 담임교수님의 첫 수업에서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나게 된다.
‘세상에나, 이런 영화도 있구나!’
체코 애니메이터 ‘얀 슈반크마이어’의 기괴한 작품들, 말을 하지 않는(?) 고전 무성영화들. 나와 예술영화의 첫 만남이었다.
구구절절 과거사를 읊은 것은 내가 예술영화를 만나기 전과 후의 극명한 대비 때문이다. 컴퓨터 공부에 매진하겠다고 울고 불며 떠난 유학 생활은 집을 떠났다는 해방감과 학창시절의 반항심으로 그리 이상적이진 못했다.

그나마 놓지 않았던 컴퓨터 공부의 끈도 생각과는 다른 환경에 실망감이 더 컸다. 내가 선택한 길임에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피해의식도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만난 영화들은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줄 뿐더러 내가 다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주었다.
솔직해지자면, 재미없는 작품도 많다. 너무나 졸린 영화도 많고, 아직도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그럼에도 ‘글’로 배우는 방식과 달리 ‘이미지’를 읽는 영화보기는 나의 유일무이한 취미이자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교육이다.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무조건적 예찬론은 아니다. 누구보다 빨리 멀티플렉스로 달려가 개봉영화를 챙겨보는 나다. 상업영화와 비상업영화의 이분법은 희미해져가고 있고, 누구에게는 히어로 무비가 인생을 바꾸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다양한 가치관과 판단기준은 존중받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상업영화를 보며 대중들이 유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다만, 이러한 문제제기는 하고 싶다. 영화를 보러 가는 우리 자신은 영화를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영화에 노출된 것일까. 대중이 원하는 코드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느냐와 작가의 생각이 또렷이 나타났느냐 하는 평가의 문제가 아니다. 여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관객이 오롯이 판단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냐는 것이다. 주체적 감상, 주체적 사유를 하기에 앞서 주체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불균등. 이 문제를 해결 해보자, 나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2016년 5월, 일시정지시네마가 첫 관객을 맞이했다. 모자란 부분이 많은 대안 공간이지만 많은 분들이 공간의 필요성과 의미에 공감해주었다. 앞으로도 멀티플렉스 극장에 비할 바 안 되는 적은 관객이겠지만, 한 명 한 명이 영화로 사유하고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일시정지시네마에서 주로 상영되는 영화는 단편영화이다. 대학 시절 여러 단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던 터라 짧고 굵은 단편영화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함이다. 보통 독립/예술영화라는 큰 분류 안에서 러닝타임을 기준으로 단편영화를 규정한다. 시간이 짧은 이유는 장편영화와 달리 삶의 찰나를 포착하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표출하기 위함이다. 허나 현실적으로는 장편영화를 찍을 물리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며 많은 단편영화 감독들이 장편영화 작업을 궁극적 목표로 삼기도 한다.

어찌됐든 간에 단편영화 중에서도 충분히 마음을 움직이는 수작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영화’하면 떠오르는 기승전결, 혹은 다양한 영화적 장치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멀티플렉스에서 만나는 영화들에 비하면 만듦새가 영 어색할 것이다. 허나 진정성 있게 기록된 내 주변 보편적 삶의 모습, 혹은 소외 받는 사람들의 삶 속 단면을 여과 없이, 혹은 극화하여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삶들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고 사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만날 수 있진 않을까 기대되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 나와는 다른 삶을 만나는 것, 그것은 즐겁다가도 한편으로는 괴로운 일이다. 주인공의 이로운 행동을 보면 속이 시원하다가도 내가 그러지 못함에 자책감도 든다. 자책감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나도 이로운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도덕적 책임감이 스며들기도 한다. 반대로 다른 삶이라는 것이 이롭기만 할까. 절대 악을 만나면 함께 분노하고 울분을 토하지만, ‘나는 뭐가 그리 다를까’하는 생각에 순간 닭살이 돋기도 한다. 더욱 선해지자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캐릭터 뿐 아니라 영화 안에는 다양한 사건과 관계 충돌, 화면 구성 등 다양한 생각과 담론들을 재생산해낼 수 있는 훌륭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있다. 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타인과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이해하고 싶다면 때로는 스크린에 투영된(스크린을 방패삼아) 지루하고 텁텁한 현실을 직시해 보자. 낭만적인 영화를 보며 그와 같은 삶을 꿈꾸는 것도 좋다. 영화를 통해 생각하는 즐거움, 나쁘지 않다.

일시정지시네마는

‘영상문화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단편영화, 독립예술영화를 볼 수 있고 때가 잘 맞으면 영화 감독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또한 주인장이 작업한 미디어아트 전시도 이따금 볼 수 있다. 영화에 대해 잘 모른다고 두려워할 필요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요일 저녁에는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영화를 감상하는지, 생각을 나눌 수 있다.

8~9월에는 지역에서 만날 수 없었던 더욱 다양한 독립예술영화, 단편영화 상영이 예정되고 있고 연말에는 단편영화 잡지 제작, 영화와 함께하는 여행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보다 폭 넓게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일시정지시네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미난 일들은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통해 더욱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 일시정지시네마 홈페이지
* 일시정지시네마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