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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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여행하는 ‘도토리학교’ 기차

다가서기와 접근을 허하기, 지역문화예술교육의 경험학교

김지나 / 촉각예술센터 소장, ’17.6月

도토리학교는 강원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강원의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을 만나다’, ‘공간을 느끼다’, ‘새로움을 보다’, ‘함께 나누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의 청년들이 강원의 문화예술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현장과 사람이 만나는 교육프로그램이다.

“감각의 시대, 청년들은 지역을 느끼고 있을까?”

온 사람들이 제 각각의 오감에만 집중되어 있던 시대는 해체되고 있다. 오감에서 더 나아가 마음에도 감각이 깃들어 언어 또한 달라지고 있다. 누군가는 몸과 마음이 통합되는 모양을 일컬어 ‘뫔’이라고도 부른다. 지역을 문화 자원으로 보는 관점에서 삶으로 느끼는 감각이 생겨나는 시대이다. 이 시대에 강원도의 문화는 어떤 사람들로 인해 새롭게 감각되고 있을지 궁금했다.
마침, 지역의 청년 기획자들이 더 어린 청년들을 불러 모아 도토리학교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을 만나러 간 날은 강릉에서 산불이 난 지 이틀째였다. 원주로 향하는 동안, 뉴스에서는 ‘꺼지지 않아 애가 타는 강릉의 산불’ 소식과 ‘미세먼지 매우 나쁨’의 경고가 반복되었다. 마른 바람이 부는 공기는 오랜 가뭄으로 건조했고, 산불에 애가 탈 사람들 때문에 덩달아 자꾸 입이 말랐다. 유난히도 더운 오후였다. 온 산을 태우는 거대한 불길로 공기도 더워졌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원주에 도착했다.

도토리학교에서 두 번째 과정을 마친 청년들을 만났다. 1박2일의 경험은 이제 막 삼킨 음식처럼 아직 소화되지 않았을 시간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온 곳으로 돌아서는 발걸음들’을 붙잡아 궁금함을 푼다.

“도토리학교요? 지역 문화예술 현장 팸투어에요.”

<도토리키크기 - 도토리학교>는, 강원문화재단(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과 문화인력양성소 '판'이 문화예술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 관심을 가진 지역 청년들을 초대하여 만들어졌다. 참여한 청년들은 4월부터 6월동안 총 네 번의 여행을 통해 춘천에서 원주, 강릉, 평창을 경로 삼아 지역의 문화예술 판을 횡단하는 중이었다.
여행은 회차별로 ‘청년을 만나다(춘천편)’, ‘공간을 느끼다(원주편)’, ‘새로움을 보다(강릉|평창편)’, ‘함께 나누다(다시, 춘천편)’ 라는 각각의 주제를 가졌다. 만나고 느끼고 보고 나누는 감각적 여행이 반가웠다.
“도토리 키재기 하지 말고 함께 성장하자는 취지로 ‘도토리 키크기’라고 이름 지었어요.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청년들과 지역의 현장 선배들을 연결해서 소통하고 교류하는 장을 열어주면, 실질적인 지역 문화예술인으로 성장하는 교류와 경험이 촉발될 듯 싶었죠. 기획자를 양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성장하는 과정이에요” 정인금 팀장(강원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란다. 청년들이 상상하는 현장을 느슨하게 가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가본 자와 가보지 않은 자는 다른 것이니까. 열권의 책을 읽기보다 한번 만나라는 취지다. 배움은 있지만, 가르침은 없다는 교육철학, 예술은 “자기 주도성과 당사자성이 중시된 환경에서의 관계와 소통을 통한 경험 자체”라고 믿는 지역문화예술의 철학이 없다면 시도될 리 만무한 일이다.

이 ‘용감무식감각’한 여행의 내용을 채운 것은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청년들을 위해 길을 내는 일’을 업으로 하는 문화인력양성소 판(협동조합)이다. 문화예술영역은 전공자들도 전공으로서 취업이 어렵고, 낮은 임금과 부족한 복지, 불안정한 수입 등으로 청년 진입이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문화인력양성소 판은 이러한 청년들을 현장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도토리학교를 통해 꿈에서 현실로 길을 내는 과정을 설계했다. 강연장에 모이는 것을 현장 연결이라 부르지 않고, 현장에서의 경험을 뭉뚱그려 설명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목격하게 하고자 관심 있는 청년들을 모아 슬쩍 판을 깔았다고 한다.

판의 오석조 대표는 사회 변화를 위해 문화예술에서 판 만들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판은 직원협동조합의 형태로, 회사의 권리를 함께 소유하고 함께 일구는 농사와 유사한 업의 형태를 담고 있다. 사회 변화를 꿈꾸던 사학과 전공생은 문화예술로의 길을 낸 선배가 되었다. 그 길 위에서 또 새로운 길을 내는 후배 원미정(조합의 막내)씨도 그런가 물었다. “엉?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지, 사회변화라니 그런 거대함은 생각해 본적도 없다.”며 산들바람처럼 웃는다.

“문 두드리니까 열어주고, 열렸으니 들어가고, 들어갔으니 만나고, 만났으니 대화하고, 이 경험으로 막연했던 생각이 명료해지고 새로워지고 구체화되기 시작해요.”

그렇게 모인 청년들이 지역 곳곳의 문화예술판을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린다. 그러면 다양한 문화예술 현장의 선배들이 문을 열어준다. 청년들은 선배들의 ‘용감하게 열린 문’으로 들어가 화장기 없는 현장의 민낯을 마주한다. 이렇게 연결된 첫 만남은 깊지 않다. 선배들의 총체적인 이야기를 다 소화할 수도 없다. 어쩌면 지금으로서는 엿보고 엿듣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만남으로 관계는 성장하고 확장된다.

앞선 두 번의 도토리학교에 모두 참여했다는 권소연씨는 문화예술과 자신이 전공하는 광고홍보는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춘천의 공간들을 찾아가서 직접 만나본 선배들의 공간에 깃든 일상은 생생했다. 자주 가보던 곳도 있었지만 만나서 선후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처음이었다. 밖에서 바라볼 때와는 아주 많이 달랐다.

스스로를 ‘관심은 많지만 경험은 없는 현재’로 설명하는 권소연씨는 구체적인 경험의 상과 고민이 시작된 자리였다고 말한다. 선배들이 경험을 전해줄 때, 경험이 없는 자로서 그것이 다 체감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로를 결정하기 전 고민이 많은 시기에서 구체적인 계획의 필요성과 단서를 발견했고, 한편으로는 왜 원하는지와 같은 자기 점검의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다는 참가자 박신욱씨는, 청년을 대상화하며 고민하던 시기에 ‘청년들이 움직여야 청년들이 모인다.’는 강승진 실장님(원주문화재단)의 이야기가 강렬했다고 강조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임에도 청년이 아닌 활동가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관점에서 벗어나 나도 청년이라는 깨달음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동안 많은 느낌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어, 발표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이 여행이 문화예술교육이었어요? 배움보다 더욱 의미 있는 ‘경험’했어요”

여행의 소감은 대단히 명쾌했다. “재미있었어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진정으로 느끼려면, 청년의 감각과 감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해석하자면 이렇다. 재미는 곧, 관심이라는 동기가 흥미라는 적극적인 참여로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고, 그것을 만족스럽게 채웠다는 충족감을 표현한 언어이다. 온 몸으로 스며든 경험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탄성이다.

현장의 선배들을 만난 소회에서, ‘꾸미지 않은 순수한 모습을 보았다’고 말하는 청년들은 속 깊게도 그래서 만남이 좋았고, 또 그래서 내가 꾸며주고 싶은 마음과 상상도 들었다고 했다.

한편으론, 이 만남에서 마음의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쓴 사람들은 다가서는 청년이 아니라, 자신으로 향하는 문을 기꺼이 열어 들어섬을 허용해 준 선배였을 것이다. 다가섬은 무심하기 쉽다. 하지만, 접근을 허용하고 내게로 들어서는 문을 열어주기란 예민한 문제이다. 자신을 열어주는 선배들에 대한 깊은 예우가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이 우리가 말하는 관계와 소통이라면,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와 감각방식을 이해하는 기초적인 존중과 태도부터 준비해야 한다. ‘다가섬’과 ‘접근을 허함’의 경계에 공유지대를 만드는 사람들은 만나는 양쪽 모두 만남을 위한 자기 준비의 과정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 강원도에 청년 있수다.”

문을 두드리는 후배와 기꺼이 자신의 문을 열어 준 선배가 나눈 만남은 마치 갓 만든 요리처럼 뜨거운 김과 냄새를 풍기지만, 요리를 기다리는 식탁과 불 위에서 조리 중인 요리처럼 아직은 프로그램이 종료된 상태에서도 여전히 따로 존재한다. 경험이 내재화되는 ‘익힘’의 시간에 들어있다. 각자에게 어떤 맛이 나는 요리로 음미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상태를 문화예술교육이 일어난 현상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관계자는 도토리학교도 성장할 거라 말한다.
“좀 더 고민과 관심이 심화된 사람들을 위한 심층적인 2차 활동도 준비할 계획입니다.”
청년들을 창업으로 몰고 가는 시대 기류에 편승해서 협동조합으로 스타트업한 판의 오석조 대표가 마음을 내비친다. “청년 스타트업 지원에서 결핍되어 있는 스타트업 이후 중간 단계까지 ‘끌어올려줌’의 과정이 필요해요.”
그렇다. 경험은 끊임없이 자기 속에서 재생산되며 숙성될 것이다. 경험씨앗들이 발아하는 심화작용이 일어난다면 심층적인 과정의 도토리학교가 다시 청년들을 소환할 것이다. 그럼 한층 진화된 관계들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선후배들이 호흡을 맞추며 일구는 첫 농사가 시작되었다. 시대문화를 가장 치열하게 겪어내는 세대인 청년들이 지역을 감각하고, 자신들의 삶을 그 안에서 관계 맺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교육은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과 존중의 문화를 지향하여 생성되었다. 이질적이면 제거 대상이 되는 난폭하고 일방적인 문화와, 그로 인해 신격화되거나 차별받는 예술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 사유된다. 우리의 삶은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금기를 깨고, 개인과 삶을 자유롭게 하는, 거대하지만 느슨하고 유연하고 포용적인 공동체 문화는 이미 변화를 시작했다. 배움이 아닌 경험으로, 지식이 아닌 감각으로, 예술을 넘어 삶으로 끌어오는 줄다리기의 한편에 선 지역의 선후배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이 짧은 대화를 뒤로 하고 일어서는데, 강릉에서 잔불을 남기고 거의 진화했다는 새로운 뉴스가 나왔다. 삼척으로 번진 불길을 잡으러 다시 지친 헬리콥터들이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자리를 일어서는 청년들이 푸르른 웃음으로 서로를 배웅하고 있었다.